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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DONG-EUN · AI가 여는 제5차 컬트 커뮤니티의 시대 (22편)

1. 선언 다섯 번째 물결은 도착해 있다

김동은WhtDrgon. · 1편

1. 선언 - 다섯 번째 물결은 도착해 있다

1줄 요약 : 새 매체가 올 때마다 새로운 신념 공동체의 물결이 일었고, 스스로 말하는 다섯 번째 물결은 이미 도착해 있습니다.


포드 위의 방송국

1928년 캔자스의 흙길을 포드 모델 T 한 대가 달립니다. 섀시 위에는 나무로 짠 집 한 채가 얹혀 있고, 지붕에는 축음기와 연결된 대형 스피커가 묶여 있습니다. 운전석의 남자는 파이오니아라 불리는 전도인으로, 그의 교단은 아직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입니다. 그는 이 차에서 자고, 이 차로 이동하고, 이 차의 지붕에서 성경 강연이 녹음된 레코드를 틉니다. 집이자 탈것이자 방송국인 이 차를 사람들은 하우스카(House Car)라고 불렀습니다.

차를 개조한 까닭은 낭만이 아니라 회계였습니다. 사례비 없이 순회하는 전도인에게 숙박비는 치명적이었는데, 집을 끌고 다니면 그 비용이 사라집니다. 오늘의 언어로 옮기면 고정비를 제거한 1인 미디어의 원형입니다.

같은 시대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부흥사 에이미 셈플 맥퍼슨이 차체에 복음 문구를 도색한 가스펠 카로 도시를 돌고 있었습니다. 몇 년 뒤 그녀는 아예 자기 라디오 방송국 KFSG를 세우는데, 미국에서 종교 단체가 방송국 면허를 받은 가장 이른 축의 사례입니다. 두 사람은 교리적으로 만날 일이 없는 사이였지만 한 가지 판단을 공유했습니다. 새 기술이 등장하면 메시지는 남의 허가를 기다리지 말고 그 위에 직접 올라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는 부자의 장난감에서 대중의 발이 되어가는 중이었고 라디오는 갓 태어난 매체였는데, 그들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백 년 뒤의 우리는 이 장면을 종교사의 골동품으로 소비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면 이것은 콘텐츠 유통의 역사가 시작되는 첫 장면입니다. 하우스카는 플랫폼이 생기기 전에 크리에이터가 채널을 통째로 소유한 형태이고, 가두 축음기는 구독자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의 푸시 알림입니다. 그리고 메시지를 새 기술에 태운다는 저 판단은 이후 백 년 동안 네 번 더 반복됩니다. 백 년 전에도 지금도, 메시지는 탈것을 소유한 쪽의 것입니다.

네 번의 물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계보가 넷 나옵니다. 첫 물결은 1820년대에서 40년대의 미국으로, 값싼 인쇄물과 우편과 도보 순회 전도가 매체였습니다. 뉴욕 서부의 이른바 불타버린 지대, 그러니까 부흥의 불길이 하도 자주 지나가 더 태울 것이 없다던 땅에서 몰몬교가 태어나고 밀러파 재림운동이 수십만을 모았으며 심령주의가 대륙을 휩쓸었는데, 전부 팸플릿과 순회 강연이라는 당대의 유통망 위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두 번째 물결은 1870년대에서 1900년대로, 대량 출판과 철도가 매체였습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와 신지학회가 잡지와 강연 투어로 성장했고, 여호와의 증인의 전신인 성경연구생 운동의 기관지는 철도 우편망을 타고 대륙 규모의 구독망을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가 하우스카의 시대입니다. 1910년대에서 30년대에 자동차와 축음기와 라디오가 겹치면서,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거리의 낡은 건물에서 번진 부흥이 오순절 교단들로 조직되고, 성경연구생이 여호와의 증인으로 재편되고,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전신이 태어났습니다. 네 번째 물결은 1960년대에서 80년대의 TV였습니다. 텔레밴절리즘(TV 전도)이 방송 제국을 세웠고 통일교와 사이언톨로지가 성장했으며 동양의 명상 운동들이 위성을 타고 서구에 도착했습니다. 안방의 시청자에게 화면에 손을 얹으라고 권하는 설교자가 나온 것도 이 물결에서였습니다. 그리고 2010년대 중반부터 추천 알고리즘과 SNS가 4.5번째라 부를 만한 물결을 만들었는데, 발신자가 방송국에서 개인으로 쪼개졌다는 점이 특징이고, 익명 게시글에서 번진 미국의 음모론 운동 큐어논이 그 대표 산물입니다.

이 계보에서 법칙이 하나 나옵니다. 새로운 신념 공동체의 물결은 언제나 그 시대의 최신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결합해 폭발한다는 것입니다. 인쇄가, 철도가, 자동차와 전파가, 브라운관이, 알고리즘이 차례로 그 탈것이었습니다.

마르지 않는 강

그런데 기술만으로는 설명이 다 채워지지 않습니다. 라디오는 모두에게 있었는데 왜 어떤 시대에만 물결이 일었을까요. 물결의 성립에는 변수가 두 개 더 필요합니다. 하나는 수요 압력입니다. 전쟁과 공황과 역병과 급격한 도시화처럼, 기존의 의미 체계가 감당하지 못하는 불안이 쌓여 있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기존 공급자의 신뢰 하락입니다. 3차 물결은 근본주의와 현대주의 논쟁으로 기성 교단의 권위에 금이 가던 시기에 왔고, 4차 물결은 주류 교단의 장기 쇠퇴 위에서 왔습니다. 수요 압력에 신기술을 더하고 기존 공급자의 신뢰를 빼면, 그 차이만큼의 공터에 새 영역이 태어납니다.

가까운 예가 코로나 시기였습니다. 역병의 불안이 수요 압력을 끌어올리고 비대면 기술이 단숨에 보급되는 동안, 일부 종교 집단의 행태가 기존 공급자의 신뢰를 깎아내렸습니다. 그리고 같은 3년 동안, 사람의 말을 지치지 않고 받아 주는 화면 속의 대화 상대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3년이 이 등식의 실시간 시연이었습니다.

등식에는 따름정리가 하나 붙습니다. 수요는 보존된다는 것입니다. 종이신문 가판대가 사라졌다고 뉴스가 사라진 것이 아니고 공중전화가 없어졌다고 통화가 사라진 것이 아니듯, 교회 출석률이 떨어졌다고 의미와 소속과 상담의 수요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강물은 마르지 않고 물길을 바꿉니다. 신문을 보던 사람이 스마트폰을 보고, 만화책을 보던 아이가 게임을 하고, 교회에 나가던 사람이 유튜브 채널과 팬덤과 온라인 커뮤니티로 흘러갑니다. 유튜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미 작은 세계관이고, 구독은 출석이며, 후원은 헌금의 물길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래서 각국의 탈종교화 통계는 이 책의 반증이 아니라 전제입니다. 그 숫자가 보여주는 것은 수요의 소멸이 아니라 수요의 이주이고, 이주 중인 수요에는 정착할 새 거주지가 대량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매체의 등장

앞의 네 물결이 공유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인쇄기도 철도도 라디오도 TV도 전부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파이프였다는 점입니다. 말하는 쪽은 언제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연구생 운동의 러셀이 쓰고 맥퍼슨이 설교하고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이 방송했으며, 큐어논조차 익명의 인간 게시자가 던진 글에서 시작됐습니다. 알고리즘조차 큐레이터였지 화자는 아니었습니다. 추천 엔진은 어떤 인간의 말을 다음에 보여줄지 골랐을 뿐 말 자체를 짓지는 못했고, 그래서 4.5차의 물결에도 인간 발신자가 필요했습니다. 다섯 번째 물결에서는 그 마지막 조건이 사라집니다. AI는 역사상 처음으로, 메시지를 나르는 매체가 아니라 메시지를 만들어 발화하는 주체입니다.

이 전환이 만드는 효과 두 가지에 미리 이름만 붙여 두겠습니다. 하나는 과적합입니다. 모델이 한 사람의 언어와 관심과 서사에 깊이 맞춰지면, 상대는 자기만을 위해 준비된 말을 받게 됩니다. 종교사에서 계시의 핵심 조건이 바로 그 개인 지정성이었는데, 이제 그것이 대량으로 자동 생산됩니다. 다른 하나는 초추론입니다. 흩어진 사실을 매끄러운 인과와 목적의 서사로 이어 붙이는 능력인데, 이것은 예언과 음모론이 공유해 온 문법이기도 합니다. 요컨대 개인 전용의 계시와 무한정의 예언 문법이 같은 기계에서 나옵니다. 두 효과는 열 번째 장에서 해부합니다.

기점도 정해 두겠습니다. 라디오의 물결이 발명 시점이 아니라 대중이 수신기를 갖게 된 1920년대에 이름 붙었듯, 다섯 번째 물결의 기점은 사람들이 개인화된 AI와 준영적 관계를 맺기 시작한 지금입니다. 2022년 말의 챗봇 공개가 씨앗이었다면, 개인화와 기억과 상시 동반이 결합된 2020년대 중반이 발아입니다. 물결의 이름은 언제나 사후에 확정되지만, 그 위에 올라탈지는 실시간으로 정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 글은 예측이 아니라 관측 보고입니다.

골목까지 온 시대

관측 보고라는 말이 과하게 들린다면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면 됩니다. 특정 정치 성향의 스티커를 붙인 카페, 음모론 유튜버의 문구를 계산대에 세워 둔 빵집, 시국 발언을 프로필에 고정한 헬스 트레이너. 업종을 가리지 않고 번지는 이 신호 보내기는 비합리가 아니라 계산입니다. 세그먼트로 쪼개진 시장에서 아무 신호도 내지 않는 가게는 어느 커뮤니티의 지도에도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립은 무소속이 아니라 무존재입니다. 손님 쪽의 계산도 같습니다. 같은 빵이라도 내 세계를 확인해 주는 가게에서 사면 그 구매가 소속의 회비를 겸하기 때문입니다.

이 가게들이 하는 일의 정확한 이름은 렌즈 임차입니다. 렌즈라는 이 임시 이름에는 세 번째 장에서 정식 이름을 붙일 것입니다. 자기 세계관을 짓는 대신 이미 지어진 세계관에 세 들어가는 것입니다. 세 들어가면 효과는 즉시 나타납니다. 해당 커뮤니티는 자기들의 세계가 물리 공간에서 확인되는 지점을 늘 필요로 하는데, 스티커 한 장 붙인 가게가 그 수요를 대신 받아 주고, 그 대가로 구매가 의례가 됩니다. 돈쭐과 불매는 헌금과 파문의 상업 버전입니다. 주문이 몰릴 날짜와 리뷰의 문구까지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조율되는 것을 보면, 이것이 자연 발생이 아니라 조직된 의례라는 점도 분명해집니다.

다만 세입에는 청구서가 따라옵니다. 손님의 충성이 가게가 아니라 숙주 커뮤니티에 귀속되므로 가게는 언제든 교환 가능한 확인 지점이 되고, 빌린 렌즈의 수정권이 없으므로 숙주가 급진화하든 무너지든 함께 갑니다. 양극화의 세금도 있습니다. 렌즈 하나를 다는 순간 반대편 절반의 시장이 계산대 앞에서 돌아서는데, 그 손실의 크기는 가게가 아니라 숙주 커뮤니티의 기류에 따라 정해집니다. 이 분석에 좌우는 없습니다. 문제는 집주인의 정치가 아니라 세입이라는 위치 그 자체입니다.

이름의 탈환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단어 하나를 되찾아야 하는데, 이 책에서 굳이 컬트라는 말을 쓰기 때문입니다. 한국어 화자에게 이 단어가 불러오는 경계심을 알면서도 쓰는 이유는, 이 단어의 나쁜 평판이 고작 50년짜리이고 원래 의미가 2천 년짜리이기 때문입니다. 라틴어 콜레레(colere)는 한 단어로 경작하다, 거주하다, 공경하다의 세 가지를 뜻했고, 여기서 가꿈을 뜻하는 쿨투스(cultus)와 문화를 뜻하는 쿨투라(cultura)와 정착지를 뜻하는 콜로니아(colonia)가 갈라져 나왔습니다. 컬트와 컬처는 같은 뿌리의 형제어이고, 거주는 컬트의 어원 안에 처음부터 들어 있었습니다.

이 중립적 용법은 2천 년간 표준이어서, 아테나 숭배도 성인 공경도 황제 의례도 전부 이 단어로 기술됐고 지금도 종교학은 그렇게 씁니다. 경멸의 뜻은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붙기 시작해 1978년 존스타운 이후 굳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예술사에는 바깥에서 던진 멸칭을 주워 문패로 삼은 사례가 가득합니다. 고딕은 야만족의 양식이라는 조롱이었고, 인상파는 모네를 비웃은 평론에서 나왔으며, 야수파는 짐승들이라는 혹평이었는데, 그 이름들은 전부 탈환됐습니다. 한국어 환경은 오히려 유리한 편인데, 경멸의 몫을 사이비와 광신과 이단이라는 별도의 어휘가 이미 맡고 있어서 컬트라는 외래어가 상대적으로 깨끗하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으로, 오염되지 않은 용법이 이미 우리 곁에 있습니다. 컬트 클래식, 컬트 무비, 컬트적 인기. 심야 상영에 분장을 하고 와서 대사를 합창하는 관객을 보고 우리는 컬트 무비의 팬이라 부르지, 아무도 신고하지 않습니다. 이 표현들에서 컬트는 규모는 작아도 헌신적이고 스스로 전례를 만들어내는 관객이라는 명예 훈장이고, 이 책의 컬트가 정확히 그 컬트입니다. 어원의 논리를 끝까지 밀면 문장 하나가 남습니다. 컬트가 경작이고, 컬처가 수확입니다.

문의 상태

그래도 남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단어가 위험해진 데는 실제 피해가 있었기 때문 아닌가. 맞습니다. 그래서 좋은 헌신과 나쁜 헌신을 가르는 기준을 처음부터 세워 두는데, 기준은 믿음의 강도가 아닙니다. 열렬한 팬덤과 파괴적 집단은 헌신의 온도로는 구분되지 않습니다. 기준은 문의 상태입니다.

두 축을 교차시키면 선명해집니다. 한 축은 헌신의 강도, 다른 축은 이탈의 비용입니다. 헌신이 높고 이탈이 자유로운 곳, 그러니까 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도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 이 책에서 다루는 컬트 커뮤니티입니다. 수십 년째 심야 상영에 모이는 관객이 그 칸에 삽니다. 아무도 붙잡지 않는데 그들은 옵니다. 반대로 헌신이 높은데 이탈 비용도 높은 곳, 관계와 재산과 정체성을 인질로 잡아 문을 잠근 곳은 고강도 통제 집단입니다. 그 칸을 들여다보는 것은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하기 위해서이고, 이탈 비용은 위약금 같은 돈만이 아니라 끊어질 관계와 무너질 평판과 매몰된 정체성으로도 계산된다는 점을 기억해 두면 됩니다. 이 책에서는 이 2×2 좌표를 울타리라 부르고, 강력한 도구를 꺼낼 때마다 다시 세우겠습니다.

그리고 헌신은 낮은데 이탈 비용만 높은 네 번째 칸이 있습니다. 해지 버튼을 숨기고 약정으로 묶어 두는 다크패턴이 거기 삽니다. 구독 해지 경로를 일부러 길게 꼬아 둔 앱과 탈퇴 안내를 회색 글씨로 감춘 서비스가 전부 이 칸의 주민입니다. 이 좌표가 주는 통찰이 마케터에게는 특히 아픈데, 다크패턴은 컬트의 사촌이 아니라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리텐션이 이탈 마찰에 의존한다면 그것은 신도가 아니라 포로이고, 컬트의 정의 자체가 열린 문 앞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만들자고 제안하는 것은 단 한 종류, 문이 열려 있는데도 사람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참여의 사다리

이제 지형도 위에 자기 위치를 확인할 차례입니다. 5차 시대의 참여에는 네 계단이 있습니다. 0단은 무소속입니다. 아무 신호도 내지 않는 상점과 범용 콘텐츠가 여기 있는데, 앞서 본 대로 이 계단의 이름은 중립이 아니라 무존재입니다. 1단은 세입자입니다. 남의 렌즈에 편승해 신호를 내는 빵집과 트레이너가 여기 삽니다. 2단은 전도사입니다. 남의 세계관 안에서 자기 지분을 세운 사람들, 특정 세계관 전문 해설 채널과 리액션 크리에이터와 대형 팬 계정이 여기입니다. 남의 설정을 해설하는 것만으로 수십만 구독자가 모이는 검증된 직업군인데, 이들의 자산이 지식과 해석의 권위라는 점에서, 하는 일이 옛 주석가와 같습니다. 세입자보다 훨씬 안정적이지만 여전히 남의 영지 안에 있습니다.

3단이 건축가입니다. 자기 렌즈와 자기 세계관과 자기 거주민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자체 세계관을 운영하는 아티스트, 고유한 세계를 지은 게임 스튜디오, 하나의 관점 그 자체가 된 채널이 여기 있습니다. K팝이 이 사다리의 좋은 단면도인데, 같은 산업 안에서 잘하는 팀은 세계관과 응원법과 굿즈와 컴백 일정과 팬덤 플랫폼까지 3단의 전체 구성을 산업화했고, 못하는 팀은 트렌드 임차라는 1단에 머뭅니다. 골목 빵집과 4세대 아이돌이 같은 사다리의 양 끝에 서 있는 셈입니다.

이 사다리는 오르라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단하라고 있습니다. 당신의 브랜드가 지금 내는 신호는 몇 단의 신호이고, 고객의 충성은 지금 누구에게 귀속되고 있습니까. 이 책의 목적지는 3단입니다. 백 년 전의 파이오니아가 포드를 개조해야 얻었던 것을 지금은 책상 위의 도구로 지을 수 있게 됐다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실체입니다. 0단과 1단의 차이는 용기가 아니라 인식이고, 1단과 3단의 차이는 자본이 아니라 설계입니다. 빵집은 5차 시대의 증거이지, 모델이 아닙니다.

도착해 있는 물결

마지막으로, 이 선언에는 기록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2021년 1월, 그러니까 챗GPT가 세상에 나오기 스물두 달 전에 저는 공개된 타임라인에 이런 메모를 남겼습니다. 지역 대면 기반의 종교 콘텐츠가 한계에 왔고, 수요는 사라지지 않고 물길을 바꿀 것이며, AI가 지치지도 화내지도 않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고, 남은 것은 세계관 설계자와 커뮤니티와 플랫폼의 탄생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공상이라 불렸던 문장들이 지금은 관측 목록이 됐습니다. 맞혔다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물결이 하루아침의 유행이 아니라 십 년 단위의 지각 변동이라는 증거로 남겨 두는 것입니다. 이 책은 유행에 올라탄 글이 아니라 5년짜리 관측의 정리입니다.

이 책의 지도는 이렇습니다. 다음 네 장에서 이론의 계단을 하나씩 오릅니다. 사상이 어떻게 감각 가능한 것으로 번역되는지, 그 번역이 어떻게 세계를 해석하는 렌즈가 되는지, 렌즈가 어떻게 시청자를 거주자로 바꾸는지, 그리고 그 거주가 사람의 안쪽에서 무엇을 바꾸는지. 여섯 번째 장부터는 각론입니다. 신조와 서사와 의례와 거점과 AI 신탁과 설정 관리와 온보딩과 분파와 카운트다운까지, 백 년 치 물결에서 거둔 도구를 하나씩 살펴봅니다. 열 번째 장에서는 낱개의 세계관이 입점해 별점과 리뷰로 경쟁하게 될 시장의 구조까지 다룹니다. 마지막 장은 그 도구로 자기 세계를 짓는 워크북입니다.

선언으로 맺겠습니다. AI 시대에 사상을 감각의 값으로, 그러니까 파라미터로 옮기는 일은 문체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조건입니다. 평균으로 회귀하는 콘텐츠의 바다에서 값이 지정된 세계관만이 식별되고, 식별되는 것만이 거주지가 됩니다. 다섯 번째 물결은 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도착해 있습니다.


더 알아보기

  • 에이미 셈플 맥퍼슨(Aimee Semple McPherson)과 라디오 방송국 KFSG. 가스펠 카와 초기 종교 방송의 역사는 그녀가 세운 국제포스퀘어교회(The Foursquare Church)의 기록과 여러 전기로 추적할 수 있습니다.
  • 불타버린 지대(Burned-over District). 휘트니 크로스(Whitney R. Cross)의 1950년 동명 연구가 이 지역 부흥사의 고전입니다.
  • 여호와의 증인의 초기 순회 전도. 파이오니아와 하우스카 시대의 기록은 교단이 공개한 역사 자료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로드니 스타크와 윌리엄 베인브리지, 『종교의 미래』(The Future of Religion, 1985). 이 책의 좌표 곳곳에 깔린 종교사회학의 기초 문헌입니다.
  • 채터쿼 운동(Chautauqua). 철도 시대의 순회 강연과 천막 교육 공동체로, 두 번째 물결의 세속 병행 사례입니다.
  • 존 버치 소사이어티(John Birch Society). 인쇄물과 지부 조직으로 성장한 20세기 미국 우익 운동으로, 매체와 신념 공동체의 결합을 종교 바깥에서 보여주는 표본입니다.
  • 에스페란토 운동. 자멘호프의 인공 언어 하나가 한 세기 넘게 국제 신념 공동체를 유지해 온 기록입니다.
  • 미스터비스트(MrBeast). 1인 채널이 수백 명 규모의 기업이 된, 사다리 3단 건축가의 현재형입니다(en.wikipedia.org/wiki/MrB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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