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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DONG-EUN · AI가 여는 제5차 컬트 커뮤니티의 시대 (22편)

4. DOM 시청자는 어떻게 거주자가 되는가

김동은WhtDrgon. · 4편

4. DOM - 시청자는 어떻게 거주자가 되는가

1줄 요약 : DOM은 콘텐츠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콘텐츠에 사는 사람입니다.


심야 상영의 쌀

토요일 자정의 극장입니다. 스크린에 결혼식 장면이 뜨자 객석에서 쌀이 날아오릅니다. 비 내리는 장면에서는 수백 명이 약속한 듯 신문지를 펼쳐 머리에 얹고, 어디선가 물총 물줄기가 지나갑니다. 스크린 앞 무대에는 영화 속 인물과 똑같이 분장한 사람들이 서서 배우의 동작을 그림자처럼 따라 하고, 객석은 대사가 나올 때마다 준비된 응수를 합창으로 되돌려줍니다. 건배라는 대사에는 식빵이 날아오르고, 어둠 속에서 노래가 시작되면 수백 개의 라이터와 휴대폰 불빛이 일제히 켜집니다. 분장한 이들의 극단에는 섀도 캐스트라는 이름이, 스크린을 향한 응수에는 콜백이라는 이름이 따로 있습니다. 처음 온 관객은 상영 전에 무대로 불려 나가 신고식을 치릅니다. 이 극장에서 처음이라는 사실에는 버진이라는 호칭이 따로 붙어 있습니다.

영화는 1975년 개봉작 록키 호러 픽처 쇼입니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 실패작이었는데, 이듬해 뉴욕의 한 극장 심야 상영에서 관객들이 스크린을 향해 말대꾸를 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것이 됐습니다. 쌀도 신문지도 분장도 합창도 제작사가 시킨 일이 아닙니다. 콜백의 대본은 공식 문서가 아니라 구전이어서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와 런던의 응수가 조금씩 다른데, 반세기를 구르는 동안 방언까지 생긴 셈입니다. 배급 매뉴얼에 없는 이 절차 전부를 관객이 지어 올렸고, 선배 관객이 후배 관객에게 반세기째 전수하고 있으며, 그 결과 이 영화는 역사상 가장 오래 극장에 걸려 있는 작품이 됐습니다. 1장에서 심야 상영에 분장을 하고 와 대사를 합창하는 관객이라고 스치듯 언급했던 장면의 실물이 이것입니다.

여기서 셈이 하나 안 맞는 것이, 저 객석에는 이 영화를 쉰 번 넘게 본 사람이 즐비하다는 점입니다. 줄거리를 외우는 사람은 영화를 보러 올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옵니다. 영화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무엇을 하러 오는 것일까요.

팬의 나라, DOM

답을 찾기 위해 먼저 단어 하나를 분해하겠습니다. 팬덤(fandom)은 팬(fan)에 접미사 덤(-dom)이 붙은 말입니다. 이 덤은 킹덤(kingdom)과 프리덤(freedom)의 그 덤으로, 고대 영어에서 영역과 지배권과 상태를 뜻하던 접미사입니다. 왕국이 왕의 나라이듯 팬덤은 어원부터 팬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 단어를 수십 년 쓰면서도 그 안의 영토 은유를 잘 읽지 않았습니다. 팬덤 가입이 아니라 팬덤 입국이라 불러야 어원에 맞는 셈입니다.

1장에서 캤던 어원이 여기서 다시 등장합니다. 컬트의 뿌리인 콜레레는 경작하다, 거주하다, 공경하다의 세 가지 뜻을 한 몸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중 두 번째가 이번 장의 몫입니다. 컬트의 어원 안에 거주가 있었고, 팬덤의 어원 안에 나라가 있습니다. 두 단어가 가리키는 곳이 같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 나라의 거주자를 DOM이라 부르기로 합니다. 기존 단어로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시청자는 화면 밖에 서 있는 사람이고, 구독자는 결제 관계의 이름이며, 팬은 애호의 강도를 말할 뿐입니다. 어떤 세계 안에 산다는 상태를 지시하는 단어가 시장에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정도를 묻는 질문과 어디 사는지를 묻는 질문이 서로 다른 질문이듯, 팬심을 재는 온도계와 거주를 증명하는 주민등록은 서로 다른 도구입니다. 덧붙여 웹 개발자에게 DOM은 문서를 구조 트리로 읽는 모델의 약자인데, 우연치고는 잘 맞습니다. 웹페이지의 보이는 화면 아래에 문서의 구조 트리가 놓여 있듯이, 이 책의 DOM도 콘텐츠를 낱개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로 읽고 그 구조 안에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DOM은 콘텐츠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콘텐츠에 사는 사람입니다.

사회학의 선행 발견

이 구분은 감상적인 수사가 아니라, 학계가 먼저 해 둔 발견입니다. 1985년, 종교사회학자 스타크와 베인브리지는 컬트를 조직의 강도에 따라 세 단계로 나눴습니다. 첫째가 청중 컬트입니다. 강연을 듣고 잡지를 사 볼 뿐 조직도 소속도 없는 상태로, 점성술 칼럼의 독자층이 대표입니다. 둘째가 고객 컬트입니다. 상담과 세션을 사고파는 서비스 관계가 성립한 상태입니다. 별자리 운세를 재미로 읽는 사람이 청중이라면, 사주 상담을 정기적으로 받으면서도 어느 교단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 고객입니다. 셋째가 컬트 운동으로, 구성원에게 정체성을 주는 완전한 조직입니다.

이 40년 전의 사다리를 콘텐츠 산업의 언어로 하나씩 번역해 보면 소름이 돋을 만큼 정확하게 들어맞습니다. 청중 컬트는 시청자입니다. 조회수의 세계, 알고리즘이 흘려보내면 소비하고 흘러가는 층입니다. 고객 컬트는 구독자로, 결제와 멤버십의 세계에서 서비스가 좋으면 남고 나빠지면 미련 없이 떠나는 층입니다. 그리고 컬트 운동이 DOM입니다. 정체성의 세계, 그 이름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층입니다. 종교사회학이 콘텐츠 산업의 퍼널을 반세기 전에 먼저 그려 놓은 셈입니다.

1장의 참여의 사다리와 혼동하지 않도록 경계를 그어 두겠습니다. 그것은 만드는 쪽의 계단으로, 무소속에서 세입자와 전도사를 거쳐 건축가로 오르는 공급자의 사다리였습니다. 오늘 소개한 사다리는 받는 쪽의 계단이어서, 시청자에서 구독자를 거쳐 DOM으로 깊어지는 수용자의 사다리입니다. 이 두 계단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커뮤니티가 성립합니다. 사다리는 위로 갈수록 인원이 줄지만, 줄어든 만큼 단단해집니다. 조회수와 구독과 거주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종의 차이입니다.

불임 정리

수용자 사다리에는 모두가 부딪히는 문턱이 하나 있는데, 구독자까지는 올라오는데 DOM이 생기지 않는 문턱입니다. 구독자 수가 비슷한 두 채널을 나란히 놓아 보면 문턱의 위치가 보입니다. 한쪽은 실무 팁을 알려주는 하우투 채널이고 다른 한쪽은 자기 세계가 뚜렷한 채널인데, 조회수는 대개 앞쪽이 우세합니다. 검색이 손님을 실어 나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커뮤니티는 뒤쪽에만 생깁니다.

정보와 분위기는 물성이 다릅니다. 정보는 전달되는 순간 소진됩니다. 답을 얻으면 볼일이 끝나고, 정보의 가치라는 것은 내가 그것을 아직 몰랐던 동안에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보 콘텐츠의 방문자는 구조적으로 정거장의 승객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오고 풀리면 떠납니다. 엑셀 함수 채널의 댓글창이 감사 인사로 가득해도 그 감사는 재방문의 약속이 아니고, 환승역의 유동 인구가 아무리 많아도 역에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분위기의 물성은 정반대입니다. 분위기는 요약이 안 되고 전달이 안 되며, 그 안에 들어가 봐야만 체험됩니다. 록키 호러의 자정 상영을 글로 읽는 것과 그 객석에 앉아 쌀을 맞는 것 사이의 거리가 그 물성입니다. 요약을 읽은 사람과 현장에 있던 사람의 간극은 정보량이 아니라 체류량의 간극입니다. 체험으로만 전해지는 것에는 재방문이 구조적으로 따라붙습니다.

그래서 법칙 하나가 성립하고, 이 책에서는 이것을 불임 정리라 부르겠습니다. 내재된 분위기가 없는 콘텐츠는 커뮤니티를 만들 수 없습니다. 조회수 수백만의 하우투 채널이 가진 것은 거주가 아니라 트래픽인데, 트래픽은 광고비로 살 수 있지만 거주는 지어야만 생깁니다.

반례 심문

여기서 반례가 손을 듭니다. 개발자 포럼은 어떤가, 위키는 어떤가, 정보로 뭉친 커뮤니티가 멀쩡히 있지 않은가 하는 반론입니다. 반례를 정면으로 심문해 보겠습니다.

커뮤니티라 부를 만한 개발자 공간의 안쪽을 실제로 열어 보면 정보만 있지 않습니다. 고유의 유머가 있습니다. 매뉴얼부터 읽으라는 오래된 핀잔, 바퀴의 재발명이라는 놀림, 사소한 결정일수록 토론이 길어진다는 자전거 창고의 법칙 같은 것들입니다. 가치의 서열도 있습니다. 동작하는 코드보다 우아한 코드가 위이고, 완벽한 계획서보다 돌아가는 데모가 위입니다. 전설적인 프로그래머들의 영웅담이 있고, 편집기 선택을 두고 벌어지는 해묵은 성전이 있고, 신입이 치르는 통과 의례가 있으며, 십수 년 전의 명문 게시물이 경전처럼 링크로 소환됩니다. 이 목록의 이름은 정보가 아닙니다. 해커 문화라는 이름의 짙은 분위기입니다.

대조군도 명확합니다. 분위기 없이 정보만 있는 공간, 그러니까 공식 문서 사이트와 검색 결과 페이지는 트래픽 서열의 최상위에 있으면서도 커뮤니티가 없습니다. 그곳 사람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이용자가 없기 때문이고, 그런 공간에 어울리는 정확한 이름은 커뮤니티가 아니라 유틸리티입니다. 위키백과조차 그렇습니다. 편집자들의 안쪽에는 토론 규범과 고참의 위계와 반달 행위(문서 훼손)를 격퇴한 무용담이라는 분위기가 있는데, 같은 정보를 통째로 복제한 미러 사이트에는 편집자 공동체가 생기지 않습니다. 정보는 복사됐지만 분위기는 복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문의 결론은 역전입니다. 정보 커뮤니티는 불임 정리의 반례가 아니라 증거이고, 커뮤니티가 선 곳에는 예외 없이 분위기가 먼저 깔려 있었습니다.

이 정리의 무게는 다섯 번째 물결에서 더 커집니다. 생성 AI가 하우투 콘텐츠를 무한정 쏟아 내기 시작하면 정보의 소진은 더 빨라집니다. 어떤 함수의 사용법이든 물어보는 즉시 답이 나오는 시대에는, 정보 전달만으로 서 있던 정거장의 지위마저 흔들립니다. 반대로 분위기는 애초에 요약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기계가 요약을 잘하게 될수록, 요약되지 않는 것의 값은 올라갑니다. 다섯 번째 물결에서 거주율이 여러 지표 중 하나가 아니라 방어선인 이유입니다.

거주의 증거들

거주는 마음의 상태지만, 다행히 바깥에서 관찰할 수 있는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증거는 세 종류입니다.

첫째가 감식안 발화입니다. 이건 ○○답지 않아라는 문장입니다. 답다를 말할 수 있으려면 그 세계의 기준선이 화자의 안에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신작이 나올 때마다 이건 진짜 건담이 아니라는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프랜차이즈의 위기가 아니라 거주의 증거입니다. 기준선 없는 사람은 애초에 그 싸움에 낄 수 없습니다. 브랜드에서도 같은 발화가 관찰되어서, 이건 그 브랜드답지 않다며 신제품을 내려놓는 고객이 바로 그 브랜드의 거주자입니다. 둘째가 내부 언어입니다. 바깥에서는 통하지 않는 어휘를 굳이 쓰는 행동인데, 이것은 소통의 효율이 아니라 식별의 신호입니다. 왜 비효율이 신호가 되는지는 열세 번째 장에서 따로 다룹니다. 셋째가 무관객 재방문입니다. 신작도 이벤트도 없는 날 아무도 보지 않는데 다시 오는 발걸음으로, 휴재 공지가 붙은 게시판에 오늘도 안부 댓글이 달리는 현상이 그것입니다. 과시가 불가능한 조건에서의 소비가 왜 가장 강한 증거인지는 다음 장의 핵심 재료가 됩니다.

이 세 증거를 확인했다면 계기판을 갈아 끼울 차례입니다. 조회수는 청중의 지표라서, 청중 컬트 단계의 성적표로는 옳지만 거주의 측정기로는 쓸모가 없습니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대체 지표의 이름은 거주율입니다. 몇 명이 스쳐 갔는가가 아니라 몇 명이 돌아오는가, 몇 명이 그 세계의 기준으로 말하는가입니다. 수익의 구조도 이 지표를 따라갑니다. 광고 단가는 조회수가 정하지만, 후원과 굿즈와 콘서트 티켓은 시청자가 아니라 거주자가 삽니다. 성공한 콘텐츠의 지표는 몇 명이 봤는가가 아니라, 몇 명이 사는가입니다.

실습, 거주율 진단

이 장의 도구는 방금의 세 증거를 숫자로 바꾸는 진단표입니다.

  1. 감식안 지수. 최근 석 달의 댓글과 게시글에서 답다, 답지 않다 구문을 셉니다. 이건 아니라는 부정형 논쟁도 전부 셉니다. 부정도 기준선이 세워진 사람만 할 수 있는 발화이기 때문입니다.
  2. 내부 언어 침투도. 당신의 세계에서만 통하는 어휘의 목록을 만들고, 신규 유입자가 첫 댓글에서 그 어휘를 쓰기까지 걸리는 기간을 잽니다. 짧아지고 있다면 온보딩, 그러니까 새로 온 사람을 정착시키는 과정이 작동하는 중입니다.
  3. 무목적 재방문률. 신규 콘텐츠가 없는 날의 방문 비율입니다. 업로드가 끊긴 주간에도 들어와 서성이는 사람의 수가 거주 인구의 하한선입니다.

기준값의 감이 필요하다면, 이 분야를 가장 깊이 계측해 온 온라인 게임의 지표를 빌리는 것이 빠릅니다. 게임업계는 하루 뒤와 일주일 뒤와 한 달 뒤에 몇 명이 돌아오는지를 표준 지표로 관리해 왔는데, 커뮤니티에 옮기면 이렇게 읽힙니다. 재방문의 리듬은 콘텐츠 공급 주기에 따라 다르지만 온라인에서는 매일에서 7일이 기준선이고, 한 달을 비우는 거주자는 이탈의 조짐으로 봅니다. 늘 손에 들려 있는 모바일과 자리에 앉아야 하는 PC의 리듬이 서로 다르다는 것도 게임업계가 먼저 확인해 둔 사실입니다. 관찰 기간은 최소 100일은 잡아야 유행과 거주가 구분됩니다. 감각을 위해 실측 하나를 공개하면, 제가 MEJE WORKS에서 운영했던 팬덤 액티비티 서비스에서는 순방문자의 48퍼센트가 매일 오는 사람으로 전환됐고, 그들은 하루 평균 23회 들어와 도합 한 시간 2분을 머물렀습니다. 거주가 시작된 세계의 숫자는 이런 모양입니다.

셋 다 절대값보다 추세가 중요하고, 측정 주기는 분기면 충분합니다. 조회수 그래프 옆에 이 세 줄을 나란히 놓는 것만으로 회의실의 질문이 바뀝니다. 이번 달에 몇 명이 왔는가에서, 이번 달에 몇 명이 남았는가로. 세 지표가 전부 0인데 조회수만 크다면, 당신이 운영하는 것은 아직 나라가 아니라 방송국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음 장의 문을 두드려 두겠습니다. 거주율이 올라간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세계에 입주하는 동안, 세계 쪽에서도 무엇인가가 사람 안으로 들어옵니다. 팬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말투로 말하기 시작하고, 브랜드의 고객이 브랜드의 인격으로 물건을 고르기 시작합니다. 세계를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세계가 요구하는 사람이 되어 나오는 셈이니, 거주는 일방통행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세계에 입주할 때, 세계의 캐릭터가 사람 안에 입각합니다. 그 입각한 존재의 정체가 다음 장의 주제입니다.


더 알아보기

  • 록키 호러 픽처 쇼(The Rocky Horror Picture Show, 1975). 섀도 캐스트와 콜백 문화는 각 도시 팬 극단의 공식 기록과 다큐멘터리로 추적할 수 있습니다.
  • 스타크와 베인브리지의 청중 컬트, 고객 컬트, 컬트 운동 3분류. 『종교의 미래』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 에릭 레이먼드(Eric S. Raymond), 「성당과 시장」(The Cathedral and the Bazaar)과 자곤 파일(Jargon File). 해커 문화의 내부 언어와 규범을 내부자가 기록한 문서들입니다.
  • SCP 재단(SCP Foundation). 집단 창작 위키 위에 세워진 거주형 커뮤니티로, 정보가 아니라 분위기가 사람을 붙잡는 사례입니다.
  • 스타트렉 팬덤. 다큐멘터리 「트레키즈」(Trekkies, 1997)가 초기 거주자들의 초상을 기록했습니다.
  • 홀로라이브 프로덕션(Hololive Production). 버추얼 유튜버 팬덤의 거주 문화와 졸업이라는 이별 의례까지 갖춘, 다섯 번째 물결 직전의 거주 표본입니다(en.wikipedia.org/wiki/Hololive_Production).
  • 플레이브(PLAVE). 한국의 버추얼 아이돌이 음악방송 1위까지 오른 사례로, 화면 속 존재에 대한 거주가 국내 주류 시장에서 검증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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