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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DONG-EUN · AI가 여는 제5차 컬트 커뮤니티의 시대 (22편)

3. 세계관화 설정집이 아니라 프롬프트다

김동은WhtDrgon. · 3편

3. 세계관화 - 설정집이 아니라 프롬프트다

1줄 요약 : 콘텐츠의 진짜 상품은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관 프롬프트입니다.


게임 이야기는 없었다

금요일 저녁 고깃집의 부서 회식 2차라면 어디서든 들을 법한 대화가 있습니다. 안건은 늘 사람입니다. 옆 부서의 그 인간이 또 어그로를 끌었다는 이야기가 먼저 나오고, 그걸 김 대리가 혼자 탱킹하다 번아웃 직전까지 갔다는 이야기가 뒤따릅니다. 새로 온 본부장에 대해서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다르다는 호평과 그 바닥 고인물들은 결국 답이 없다는 냉소가 엇갈리고, 신입 교육 이야기가 나오면 아직 튜토리얼 중인 애를 필드에 던져 놨다는 진단이 붙습니다. 박 부장의 잔소리를 두고는 그래도 내공이 있다는 변호와 그냥 고문관이라는 반박이 소주잔 사이를 오갑니다.

흔한 저녁입니다. 그런데 어휘의 원산지를 확인해 보면 이 테이블은 흔하지 않습니다. 어그로와 탱킹과 고인물과 튜토리얼은 온라인 게임에서 왔습니다. 몬스터의 주의를 끌고, 파티의 공격을 대신 맞아 주고, 한 판에 오래 고여 있고, 본판 전에 조작을 배우던 말들입니다. 짬과 고문관은 군대에서 왔고, 내공은 무협지의 단전에서 왔습니다. 정작 이 테이블에서 게임 이야기를 한 사람은 없고, 무협지를 읽는 사람도 군대 이야기를 꺼낸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녁의 인물평은 뼈대가 전부 그 세계들의 어휘로 짜입니다.

콘텐츠가 대화의 화제, 그러니까 무엇에 대해 말하는가의 위치에서 벗어나, 무엇으로 말하는가라는 문법의 위치로 옮겨 간 상태입니다. 외국어에 비유하면 화제 단계의 콘텐츠는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떠드는 외국 소식이고, 문법 단계의 콘텐츠는 사람들이 그것으로 떠드는 언어입니다. 세상의 콘텐츠는 여기서 두 종류로 갈라집니다. 다 보고 나면 끝나는 콘텐츠가 있고, 다 본 뒤에도 어휘로 남아 사람들의 입에 상주하는 콘텐츠가 있습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가가 이번 장의 주제입니다.

동기화 엔진

지난 장의 끝에 질문 하나를 걸어 두었습니다. 성당의 잔향은 왜 예닐곱 초여야 하고, 애플의 목재는 왜 그 수종이어야 하는가. 값을 고르는 기준, 값들에게 근거를 주는 상위의 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분위기 공학에는 동기화 원칙이 있습니다. 여덟 레이어의 값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켜야 분위기가 성립하고, 근거 없이 얹힌 안개는 분위기가 아니라 장식이라는 원칙입니다. 안개 농도 0.7이라는 값이 정당해지려면 그 안개가 그 세계에 있어야 할 이유가 필요합니다. 성당의 값들이 흩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 모든 값의 뒤에 하나의 세계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는 신의 질서 아래 있고 인간은 그 질서의 방문자라는 상입니다. 그 상이 서 있으면 잔향의 길이도 시선의 각도도 향의 연기도 전부 파생값으로 계산됩니다. 애플의 목재가 그 수종이어야 하는 근거도 같은 곳에서 나옵니다. 기술은 단순하고 따뜻해야 한다는 세계상이 서 있으면, 차가운 금속 대신 결이 보이는 나무가 계산 결과로 나오는 식입니다.

이 작업에 이름을 붙이겠습니다. 세계관화입니다. 낱개의 값들 위에, 모든 값에 근거를 무한히 공급하는 해석 체계를 세우는 일입니다. 여기서 흔한 오해와 갈라서야 하는데, 세계관 마케팅이라는 이미 흔한 말이 대개는 설정집 차원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멤버들에게 배역을 주고 뮤직비디오를 하나의 가상 서사로 잇는 작업입니다. 그것은 세계관의 겉면입니다. 본체는 엔진 차원, 그러니까 받는 사람이 그 어휘로 자기 현실을 해석하기 시작할 때 작동하는 층입니다. 설정집은 만드는 쪽의 문서이고, 엔진은 받는 쪽의 머릿속에서 돕니다. 세계관은 설정의 묶음이 아니라, 모든 값에 근거를 공급하는 동기화 엔진입니다.

렌즈의 족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은 없다는 명제에는 유서 깊은 족보가 있습니다. 칸트는 인간이 사물 그 자체를 볼 수 없고 인식의 형식을 거친 현상만 본다고 정리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안경은 벗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도 칸트였습니다. 니체는 한 걸음 더 나가서 순수한 사실은 없고 해석만 있다고 선언했고, 딜타이는 그 단어를 학문으로 끌어올려 사람들이 세계를 해석하는 틀의 유형학을 세웠습니다. 세계관이 오늘의 뜻을 얻은 곳이 거기입니다. 쿤은 과학마저 예외가 아님을 보였습니다. 패러다임이 바뀌면 같은 관측 데이터가 다른 세계가 됩니다. 철학사 바깥에서도 같은 일은 매일 벌어져서, 같은 소나기를 농부는 작황으로 보고 기상 캐스터는 강수 확률로 보고 시인은 계절의 문장으로 봅니다. 비 자체를 본 사람은 셋 중에 없습니다.

여기는 철학책이 아니므로 근거만 확인하고 지나가는데, 요점은 하나입니다. 인간에게 무관점의 시야는 없습니다. 렌즈 없이 보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고, 어떤 렌즈로 보는가라는 선택지만 존재합니다. 같은 박 부장을 두고 누군가는 내공을 보고 누군가는 고문관을 보며, 부장 본인은 버티는 가장을 봅니다. 셋 다 각자의 렌즈를 낀 채입니다.

이 사실이 콘텐츠 제작자에게 뜻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어차피 렌즈를 갈아 끼우며 산다면, 기회는 그 렌즈의 공급자가 되는 쪽에 있습니다. 안경점은 시력을 발명하지 않았고, 어차피 써야 하는 물건의 도수와 디자인을 공급했을 뿐입니다. 렌즈 공급업의 역사도 이미 깁니다. 신화가 했고 종교가 했고 이데올로기가 했으며, 지금은 콘텐츠 산업이 그 계보를 통째로 물려받는 중입니다. 인간은 렌즈를 벗을 수 없고, 갈아 끼울 수 있을 뿐입니다.

1개라는 눈금

렌즈의 족보를 여기서 한 층 더 파 내려가 보겠습니다. 사람의 눈은 가시광선만 받아들입니다. 그 너머의 전파와 자외선과 적외선도 엄연히 세계를 이루고 있지만, 우리의 세계상에는 처음부터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감각보다 더 깊은 곳에 더 오래된 한계가 있습니다. 사과 1개라고 말할 때의 그 1개입니다. 자연에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지 않습니다. 어디까지가 사과 하나이고 어디부터가 공기인지, 그 선을 긋는 것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아무리 작은 단위로 내려가도 사정은 같아서, 1개는 세계의 단위가 아니라 인간의 눈금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결국 관념으로 정리됩니다. 우리는 최소한 과학이라는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고, 과학이 답하지 않는 곳부터는 종교와 신화와 철학의 세계관으로 마저 봅니다.

수를 셀 수 있는 곳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체스에서 가능한 경기의 수는 섀넌 수라 불리는 추산으로 10의 120제곱이고, 바둑판 위에 놓일 수 있는 배치는 2.08 곱하기 10의 170제곱이며, 두 시간짜리 풀HD 영상이 가질 수 있는 화면의 경우의 수는 지수만 6조 자리가 넘는 수입니다. 어마어마하지만 전부 유한합니다. 유한하다면 우주 전체도, 우리 인생도, 라플라스의 악마라 불리는 가상의 계산자가 다 셀 수 있는 목록처럼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인생을 그 목록의 한 점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수를 다 세고 난 뒤에도 의미는 남는 문제이고, 그 의미를 만드는 것이 세계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이 도구에 새 이름을 붙입니다. 과거 사람들이 쓰던 것은 렌즈라는 이름 그대로 둡니다. 칸트의 안경도, 안경점의 족보도, 여섯 번째 장에서 만나게 될 스코필드의 여백도 렌즈의 역사입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설계할 것은 세계관 프롬프트라 부르겠습니다. AI에게 건네는 지시문을 프롬프트라 하는데, 같은 질문을 넣어도 깔려 있는 프롬프트가 다르면 다른 답이 나옵니다. 사람도 같습니다. 같은 현실을 넣어도 깔린 세계관 프롬프트가 다르면 다른 세계가 출력됩니다. 그 프롬프트를 이루는 문장 하나하나는 코드라 부르겠습니다. 믿으면 세계가 달리 보이는 명제라는 뜻인데, 자세한 설계는 여섯 번째 장의 몫입니다. 그리고 같은 프롬프트를, 같은 키워드와 인식의 인자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우리끼리의 이웃이 됩니다. 컬트는 이 지식체계와 코드와 커뮤니티의 결합체입니다.

토미노의 렌더링

프롬프트 공급의 교본 하나를 해부하겠습니다. 1979년에 방영을 시작한 기동전사 건담은 상업적으로는 실패에 가까웠고 시청률 부진으로 예정된 이야기를 다 풀지 못한 채 조기 종영까지 당했지만, 총감독 토미노 요시유키가 그 안에 지정해 둔 값들은 반세기를 버텼습니다.

당대의 로봇물이 악의 조직과 필살기의 문법으로 돌아가던 시절에, 이 작품의 적은 조직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였습니다. 토미노의 사상은 전쟁의 참혹함과 상호 이해의 가능성이라 요약할 수 있는데, 그는 이 명제를 등장인물의 입으로 연설시키지 않았습니다. 대신 세계의 상태값을 지정했습니다. 우주세기 0079년, 개전 한 달 남짓에 인류의 절반이 죽었다는 숫자가 내레이션 한 줄로 처리됩니다. 카메라의 값도 지정되어 있습니다. 시점은 장군도 정치가도 아닌 열다섯 살 민간인 소년의 눈높이에 고정되고, 관객은 어른들의 전쟁을 소년병의 몸으로 통과합니다. 화면에서 먼저 보이는 것은 전황이 아니라 소년의 멀미와 허기와 공포입니다. 그리고 뉴타입이라는 장치가 있습니다. 우주로 나간 인류가 도달할 상호 이해의 감각이라는 희망의 개념인데, 극중에서 이 능력은 병기 적성으로 소모됩니다. 서로를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 능력으로 서로를 격추합니다. 샤아 아즈나블의 입에서는 지구의 중력에 영혼을 끌린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이라는 명제를 물리 은유 하나로 접어 넣은 값입니다.

2장의 어휘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토미노는 반전이라는 형용사를 진술하지 않고, 반전이 결론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세계의 파라미터를 지정했습니다. 그가 만든 것은 주장이 아니라, 그 주장이 스스로 계산되어 나오는 세계였습니다. 진술된 명제는 반박할 수 있지만, 지정된 세계는 체험할 수 있을 뿐입니다.

소진되지 않는 프롬프트

이 지정의 효과는 방영이 끝난 뒤에 나타났습니다. 첫 방영에서 외면받은 이 작품은 재방송과 극장판에서 뒤늦게 폭발했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새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수의 비밀을 콘텐츠의 품질에서만 찾으면 계산이 맞지 않습니다. 명작은 많지만 47년짜리 명작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비밀은 팬들의 사용 방식에 있습니다. 시청을 마친 팬들은 건담을 쓰기 시작합니다. 팬 커뮤니티의 게시판에서는 국제 정치가 우주 이민자와 지구 본국의 구도로 읽히고, 기성세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새 세대가 뉴타입론으로 읽히고, 변화를 거부하는 조직이 중력 대사로 읽힙니다. 원작이 국민 콘텐츠였던 일본에서는 이 어휘가 한 세대의 공용어까지 올라가서, 샤아에게 배우는 일하는 법 같은 처세서가 여럿 출간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작품 위에 현실을 겹쳐 보는 이 행위를 투영이라 부르겠습니다. 투영이 일어나는 순간 콘텐츠의 수명 곡선이 바뀝니다. 화제는 소비되면 줄어드는 재고지만, 프롬프트는 쓸수록 손에 익는 도구라서 재사용될 때마다 오히려 강해집니다. 쓸수록 그 어휘로 포착되는 현실의 범위가 넓어지고, 정밀해진 프롬프트는 더 자주 손에 잡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쓰던 프롬프트를 자식이 물려받는 일도 이 세계에서는 흔합니다. 뉴타입이라는 단어가 애니메이션 전문지의 제호가 되어 40년째 서점 매대에 놓여 있는 것도 같은 현상의 물증입니다.

심지어 이 세계에는 악역 진영인 지온 쪽에 서서 세계를 읽는 팬들이 따로 있습니다. 패배한 공국의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열세 번째 장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결론만 말해 두겠습니다. 콘텐츠는 소비되면 소진되지만, 프롬프트는 재사용되므로 소진되지 않습니다. 로봇의 이름은 잊혀도 세상을 읽는 문법은 남습니다. 그 문법의 연료가 무엇인지는 열한 번째 장에서 곳간째 열어 보겠습니다.

순수 배양 실험, MBTI

프롬프트 이론의 극한 검증 사례는 로봇도 아이돌도 아니라 설문지인데, MBTI에는 콘텐츠라 부를 만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문항 아흔세 개와 결과지 몇 장이 전부이고, 서사도 캐릭터도 영상도 음악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빈약한 상품의 한국어 일상 침투력은 어지간한 대작 프랜차이즈를 넘어섭니다. 걔는 완전 T야, 나 극 J라서 그건 못 참아, 그 사람 파워 E더라. 사람과 관계와 갈등을 해석하는 열여섯 개의 유형과 네 개의 축이 스몰토크의 운영 체제가 됐고, 혈액형 성격설이 수십 년 지키던 그 지위를 몇 년 만에 대체했습니다. 대유행의 시점이 2020년 언저리, 그러니까 거리두기로 관계의 불확실성이 치솟던 때였다는 점도 기록해 둘 만합니다. 1장의 방정식은 미시 시장에서도 작동합니다. 관계 해석의 수요가 급등하고 기존 공급자인 혈액형설의 신뢰가 바닥난 공터에, 검사 링크 하나로 전파되는 신기술이 들어온 것입니다.

이 사례가 실험인 이유는 변인이 통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프롬프트가 상품의 본체라는 가설이 맞다면, 콘텐츠가 0에 수렴해도 프롬프트만으로 팔려야 합니다. MBTI가 그 실험의 결과값입니다. 학계에서 재검사 신뢰도를 두고 비판이 계속되어 온 것도 사실인데, 그 비판이 침투를 조금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책의 논점을 증명합니다. 프롬프트의 침투력은 학술적 타당성이 아니라 해석 효용, 그러니까 오늘 저녁 모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가에서 나옵니다.

걔는 완전 T야라는 문장을 발화하는 사람은 MBTI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MBTI 안에서 자기 인간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상태에 들어간 사람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가 다음 장의 주제인데, 판정은 지금 내릴 수 있습니다. 검사지는 빈약한 콘텐츠였지만 열여섯 유형은 강력한 프롬프트였고, 시장이 산 것은 검사가 아니라 어휘였습니다.

실습, 프롬프트 테스트

이 장의 도구는 질문 하나입니다. 고객이 당신 콘텐츠의 어휘로, 콘텐츠 바깥의 자기 현실을 말하기 시작했는가. 측정은 세 단계입니다.

  1. 수집. 댓글, 커뮤니티, SNS에서 당신의 고유 어휘가 들어간 문장을 모읍니다. 작품명 검색이 아니라 어휘 검색입니다. 캐릭터 이름, 진영 이름, 당신이 만든 조어가 검색어입니다.
  2. 분류. 모은 문장을 두 무더기로 나눕니다. 작품 안 이야기, 그러니까 감상과 리뷰와 다음 화 예측이 한쪽이고, 작품 밖 이야기, 그러니까 자기 회사와 연애와 가족과 정치를 그 어휘로 서술한 문장이 다른 쪽입니다.
  3. 판정. 두 번째 무더기의 크기가 프롬프트 침투의 측정값입니다. 0이면 당신의 콘텐츠는 아직 화제 단계에 있고, 커지고 있다면 문법 단계로 넘어가는 중입니다. 측정 주기는 분기면 충분하고, 절대량보다 추세가 중요합니다. 0이라고 낙담할 일도 아닌 것이, 대부분의 콘텐츠가 화제 단계에서 수명을 마치기 때문에 문법 단계는 오히려 비어 있는 시장입니다.

게임 스튜디오라면 유저 게시판에서 길드 내분을 작품 속 진영의 어휘로 서술한 글을 찾는 식입니다. 그 글의 작성자는 게임을 하는 중이 아니라 게임 안에 사는 중입니다. 브랜드도 같은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고객이 제품 후기가 아니라 자기 삶의 서술에 브랜드의 어휘를 쓰는 순간이 있는지를 찾으면 됩니다. 미니멀리즘 브랜드의 고객이 이건 좀 우리답지 않다며 물건을 내려놓는 장면 같은 것입니다.

프롬프트가 이렇게 침투하면 그 사람의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시청자가 거주자로 바뀌는 그 문턱의 정체가 다음 장의 주제이고, 그 거주자에게는 이 책에서 준비해 둔 이름이 있습니다.


더 알아보기

  •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국역). 패러다임이 바뀌면 같은 데이터가 다른 세계가 된다는 논증의 원전입니다.
  • 기동전사 건담(1979)과 총감독 토미노 요시유키. 조기 종영에서 47년 프랜차이즈까지의 역사가 공개 자료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 클로드 섀넌의 1950년 논문 「체스를 두는 컴퓨터의 프로그래밍」(Programming a Computer for Playing Chess). 섀넌 수의 출처입니다.
  •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딜타이의 세계관 유형학. 세계관이라는 단어의 족보입니다.
  •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국역). 어휘가 세계 해석을 결정한다는 프레임 이론의 대중적 입문서입니다.
  • 현대 스토아 운동(Modern Stoicism). 고대 철학이 오늘의 자기계발 프롬프트로 다시 설치된 현행 사례입니다.
  • 원영적 사고. 한 아이돌의 초긍정 해석 틀이 럭키비키라는 어휘와 함께 일상어로 번진, 프롬프트 침투의 실시간 국내 사례입니다. 나무위키 문서와 언론 보도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 걸 디너와 걸 매스(girl dinner, girl math). 틱톡에서 태어난 해석 어휘가 식사와 소비를 다시 명명한 밈의 신유형입니다(en.wikipedia.org/wiki/Girl_di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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