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DONG-EUN · AI가 여는 제5차 컬트 커뮤니티의 시대 (22편)
2. 사상은 렌더링된다 문맹의 순례자가 성당에서 읽은 것
2. 사상은 렌더링된다 - 문맹의 순례자가 성당에서 읽은 것
1줄 요약 : 사상은 진술되는 것이 아니라, 렌더링되는 것입니다.
문맹의 독서
1225년 여름, 파리 남서쪽의 곡창 지대인 보스 평원의 밀밭 사이로 난 길을 한 남자가 걷고 있습니다. 수확이 끝난 뒤 영주의 허락을 얻어 나선 걸음이 사흘째인데, 지평선 위로 첨탑 두 개가 밀 이삭보다 먼저 솟아오릅니다. 평지 한가운데라 샤르트르의 성당은 건물이 아니라 산처럼 다가옵니다. 그가 사흘을 걸어온 이유는 이 성당이 성모의 튜닉을 모시고 있다는 소문 때문입니다. 한 세대 전 큰불이 도시를 태웠을 때도 그 천만은 무사했다는 이야기가 평원의 마을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글을 모릅니다. 라틴어는 물론이고 제 이름자도 쓰지 못합니다.
서쪽 문을 지나는 순간 여름이 끊깁니다. 돌의 냉기가 땀을 식히고, 눈은 한동안 어둠에 잠겼다가 서서히 색을 찾아냅니다. 높은 창들이 파랗고 붉은 빛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공기에는 마을에서 맡아 본 적 없는 향의 연기가 떠 있습니다. 어디선가 성가가 들리는데 소리의 꼬리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서, 사람의 노래가 아니라 건물이 우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천장을 보려면 목을 완전히 꺾어야 합니다. 마을 종탑의 몇 배는 되는 궁륭 아래에서 그는 자기 몸의 크기를 새로 배우고, 배운 대로 무릎을 꿇습니다.
제단의 사제가 하는 말을 그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설교는 라틴어이고 그가 아는 말은 시골 방언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돌아가는 길에 확신 하나를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자기 마을보다 높은 질서가 있고, 신은 크고 인간은 작으며, 자기는 그 큰 것의 그늘에 잠시 들어갔다 나왔다는 확신입니다. 훗날 사람들은 이런 성당을 가난한 자의 성경이라 부르게 됩니다. 그는 한 글자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무엇인가를 읽고 돌아갔습니다. 그날 그가 읽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형용사와 파라미터
답을 서두르기 전에 도구 하나를 가져오겠습니다. 저는 이 책의 자매편인 분위기 공학 연재에서 분위기가 형용사가 아니라 파라미터라는 명제를 세 편에 걸쳐 다뤘습니다. 그 연재를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이 책에 필요한 만큼만 요약합니다.
작법서에는 불길한 분위기를 만들라는 조언이 흔하지만, 키보드에는 불길함 키가 없습니다. 불길함은 독자가 다 읽고 난 뒤에 내리는 감상, 그러니까 출력값이고, 작가가 실제로 만질 수 있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안개의 밀도, 빛의 방향, 색의 채도, 소리의 잔향 같은 구체 값들입니다. 게임 엔진을 열어 본 사람은 이 사정을 이미 압니다. 개발자가 입력하는 것은 안개 농도 0.7이지 불길함이 아닌데, 관객석에서는 그 수치가 불길함으로 도착합니다. 분위기 공학에서는 이 값들을 여덟 개의 레이어로 정리합니다. 피사체와 감상자 사이를 채우는 공기, 방향과 색온도를 가진 빛, 채도와 배색으로 말하는 색, 질감과 무게의 물질, 자세와 상태로 말하는 몸, 어디에서 바라보는가의 시선, 잔향과 침묵의 소리, 그리고 속도와 반복의 시간입니다. 각 레이어에는 돌릴 수 있는 다이얼이 몇 개씩 달려 있습니다.
형용사로 사고하는 제작자는 자기가 아는 형용사의 개수만큼의 분위기만 만들 수 있습니다. 형용사는 낱개 단어라서 불길함과 쓸쓸함 사이의 중간 상태를 부를 이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이얼은 연속값이라 두 상태 사이의 모든 지점을 지정할 수 있고, 그래서 아직 이름이 붙지 않은 분위기도 만들 수 있습니다. 요컨대 형용사는 감상자의 언어이고, 제작자가 손에 쥐는 것은 여덟 레이어의 입력값입니다.
이 구분 하나면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제 이 도구를 들고 순례자의 그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성당의 여덟 레이어
그가 통과한 것을 레이어 순서대로 다시 따라가 보겠습니다. 공기부터입니다. 유향의 연기는 냄새이기 전에 매질이어서, 높은 창으로 들어온 빛을 산란시켜 빛줄기를 눈에 보이게 만들고, 마을의 공기와 성당의 공기가 서로 다른 물질임을 냄새로 알려 줍니다. 빛은 방향이 조작되어 있습니다. 사람 눈높이의 창을 없애고 빛이 높은 곳에서만 내려오게 만들면, 밝음은 언제나 위에서 오는 것이 됩니다. 색은 스테인드글라스가 맡습니다. 중세 농민의 시각 환경에 코발트빛 파랑은 존재하지 않는 색이어서, 샤르트르의 파랑은 그 자체로 일상 바깥의 증거가 됩니다.
물질은 석재와 황금입니다. 사람 손으로 쌓을 수 없어 보이는 무게의 돌과 평생 만져 볼 일 없는 금속이 한 공간에 모여 있어서, 순례자는 이곳이 인간 척도의 바깥임을 손끝으로 압니다. 몸의 값도 설계되어 있습니다. 사흘을 걸어온 피로와 공복은 수용 감도를 올리는 전처리이고, 무릎 꿇기는 신 앞에서 인간이 낮다는 명제를 몸의 자세로 익히게 만듭니다. 시선은 수직으로 강제됩니다. 인간은 올려다보는 대상을 높은 것으로, 높은 것을 위대한 것으로 번역하는 동물이라서, 목이 꺾이는 각도가 곧 경외의 각도가 됩니다.
소리에서는 잔향이 핵심입니다. 돌로 지은 큰 공간에서는 소리의 꼬리가 예닐곱 초씩 이어지는데, 말끝이 사라지지 않는 노래를 인간은 이 세상 소리가 아닌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레고리오 성가가 느린 이유의 절반은 신학이 아니라 음향입니다. 마지막이 시간입니다. 종소리가 하루를 자르고 전례력이 한 해를 자릅니다. 파종과 수확의 달력 위에 대림과 사순의 달력을 겹쳐 놓으면 시간의 소유권이 교회로 넘어갑니다.
여덟 레이어가 전부 같은 명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신은 높고 인간은 작다는 명제입니다. 순례자가 가져간 경외는 출력값이고, 석공과 유리공과 사제가 몇 세대에 걸쳐 조작한 것은 입력값이었습니다.
기어츠의 다섯 항
여기서 불편해지는 독자가 있을 겁니다. 성당을 연출 장치로, 전례를 파라미터 조작으로 읽는 것은 신앙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하는 불편입니다. 그 불편에는 준비된 답이 있습니다. 이 독법은 제 발명이 아니라 종교학의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는 1966년에 종교를 다섯 개의 항으로 정의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종교는 상징들의 체계로서, 사람들에게 강력하고 오래 지속되는 기분과 동기를 확립하고, 존재의 일반 질서에 관한 개념들을 정식화하며, 그 개념들에 사실성의 분위기를 입혀서, 그렇게 만들어진 기분과 동기가 유일하게 현실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반세기 넘게 종교학 개론의 첫머리 근처에 놓여 온 정의입니다.
다섯 항을 이 책의 언어로 번역하면 대응이 정확합니다. 상징들의 체계는 콘텐츠입니다. 기분의 확립은 방금 성당에서 본 여덟 레이어의 출력입니다. 존재의 질서에 관한 개념은 세계관이고, 사실성의 분위기는 창작 이론이 핍진성이라 부르는 그것이며, 유일한 현실감은 이 책이 거주라 부르게 될 상태입니다. 표준 정의의 한복판에 기분, 그러니까 무드라는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종교학은 처음부터 종교를 분위기 생성 장치로 기술해 온 것입니다.
덧붙여 이 책의 스탠스도 여기서 분명히 하겠습니다. 신의 존재 여부는 이 책의 관할이 아닙니다. 신이 있다면 이 공정은 신에게 닿기 위해 인간이 지은 설비일 것이고, 없다면 이 공정이 전부일 텐데, 어느 쪽이든 설비의 도면은 같습니다. 이 태도를 종교학에서는 방법론적 불가지론이라 부르는데, 믿는 독자에게도 믿지 않는 독자에게도 같은 도면을 드리겠다는 뜻입니다. 이 책에서는 도면만 다룹니다. 그래서 이런 등식이 성립합니다. 종교는 인류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분위기 공학 프로젝트였습니다.
배우와 상두꾼의 족보
이 공정을 다루던 조직들의 족보도 확인해 두겠습니다. 배우라는 직업의 첫 소속은 극단이 아니라 신도회였습니다. 그리스 연극은 디오니소스 제전의 전례 순서였고, 무대에 서던 사람들은 티아소스라 불리는 숭배 결사, 그러니까 디오니소스의 쿨투스에 속해 있었습니다. 헬레니즘 시대가 되면 이들은 디오니소스의 기술자들이라는 직업 조합을 만드는데, 조합원인 배우와 악사는 사제의 격을 인정받아 국경을 넘는 안전 통행권과 면세의 특권을 누렸습니다. 아테네가 시민의 연극 관람에 수당까지 지급한 것도, 연극이 오락이기 전에 제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첫 형태는 컬트 조직이었습니다.
한반도의 족보도 같은 곳에 닿습니다. 신라와 고려의 향도는 함께 향을 사르고 침향을 갯벌에 묻으며 미륵의 시대를 기다리던 불교 신앙 결사였습니다. 이 결사가 조선으로 넘어오며 마을의 장례와 잔치와 노동을 도맡는 조직으로 세속화되는데, 상여를 메는 상두꾼이라는 말의 어원이 바로 향도꾼입니다. 이 결사들이 침향을 묻으며 세운 매향비는 지금도 서해와 남해의 갯가에 서 있습니다. 두레와 계로 이어지는 마을 운영의 원류에 신앙 결사가 있는 셈이어서, 한국 마을 공동체의 운영 체제는 신앙 결사에서 갈라져 나온 후속 버전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습니다.
이 족보가 중요한 이유는 이 책의 기획이 수입품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공연이 신앙에서 나왔고 마을이 결사에서 나왔다면, 콘텐츠로 공동체를 짓는 일은 낯선 발명이 아니라 원래 하나였던 것의 재결합입니다. 콘서트장의 떼창이 어느 족보의 후손인지는 여덟 번째 장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한 문장만 남겨 두겠습니다. 컬트는 수입할 개념이 아니라 복원할 개념입니다.
콘텐츠의 재정의
이제 현대의 사무실로 돌아옵니다. 어느 회사에나 미션 선언문이 있습니다. 혁신, 고객 중심, 지속 가능. 벽에 걸린 그 형용사들을 읽고 고객이 무엇인가를 느꼈다는 보고는 아직 없습니다. 형용사는 출력값이라서, 선언문에 적는 순간 그것은 설계가 아니라 희망 사항이 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사상을 다르게 다룬 회사가 있습니다. 애플의 매장 어디에도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대신 통유리로 빛의 값을, 단일한 수종의 목재 테이블로 물질의 값을, 상품보다 여백이 많은 배치로 시선의 값을, 전원이 켜진 채 만지도록 놓인 기기로 몸의 값을 지정해 두었습니다. 고객은 단순함이라는 단어를 읽는 대신 단순함의 감각값 안을 통과합니다. 성당이 문맹의 순례자에게 했던 일과 같은 일입니다.
이 공정에 이름을 붙이겠습니다. 렌더링입니다. 3D 그래픽에서 렌더링은 수치 데이터로 존재하는 모델을 눈에 보이는 화면으로 계산해 내는 공정을 뜻하는데, 이 책에서는 명제를 감각 가능한 값의 집합으로 변환하는 공정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씁니다. 번역이라는 말을 두고 굳이 이 단어를 쓰는 이유는 방향 때문입니다. 번역은 언어에서 언어로 옮겨 가지만, 렌더링은 명제에서 감각으로 내려옵니다. 사상은 진술로는 전달되지 않고 렌더링으로만 전달됩니다.
브랜드를 믿음 체계로 읽는 시도는 전에도 있었습니다. 창조 신화와 신조와 아이콘과 의례를 갖추라는 목록형 이론들인데, 그 목록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이 책이 거기에 더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목록의 항목들이 어떤 공정으로 감각값이 되는가, 그리고 그 공정에 말하는 기계가 들어오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목록과 공정의 차이가 이 책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콘텐츠의 정의가 바뀝니다. 콘텐츠는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사상이 렌더링된 결과물입니다.
이 공정이 어디까지 자동화됐는지는 이미지 생성 AI를 써 본 독자라면 이미 실감했을 것입니다. 프롬프트 창에 불길한 골목이라고 적으면 기계가 안개의 밀도와 빛의 방향과 색의 채도를 알아서 골라 화면을 채웁니다. 형용사를 입력하면 여덟 레이어의 값이 자동으로 지정되는 것이니, 방금 정의한 렌더링이 통째로 자동화된 셈입니다. 샤르트르에서는 석공 몇 세대가 하던 일을 지금은 문장 한 줄이 시킵니다. 그 문장 한 줄의 시대가 세계관 산업에 무엇을 불러오는지가 열 번째 장의 주제입니다.
실습, 렌더링 감사
이 장의 도구를 놓고 마치겠습니다. 이름은 렌더링 감사이고, 세 단계면 됩니다.
- 적출. 당신의 사상이 형용사로 진술된 곳을 전부 찾아 적습니다. 미션 선언문, 회사 소개 페이지, 브랜드 가이드, 채용 공고. 혁신적인, 따뜻한, 진정성 있는 같은 단어들이 목록의 재료입니다.
- 대조. 형용사 하나마다 묻습니다. 이 단어가 고객이 감각할 수 있는 값으로 번역된 지점이 어디에 있는가. 여덟 레이어 중 어느 레이어의 어떤 다이얼인가. 매장이 없다면 웹사이트의 로딩 속도와 서체와 여백도, 응대 메일의 문장 길이도 전부 레이어의 값입니다. 카페라면 조명의 색온도와 배경 음악의 잔향과 의자의 등받이 각도까지가 감사 대상입니다.
- 판정. 진술은 있는데 번역이 없는 형용사, 번역과 어긋나는 진술을 표시합니다. 혁신을 말하는 회사의 10년 된 홈페이지 템플릿이 전형입니다.
감사를 마치면 대부분의 조직에서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사상의 대부분이 형용사 상태로 벽에 걸려 있고, 렌더링된 것은 우연히 된 것뿐이라는 결과입니다. 우연 렌더링의 문제는 품질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레이어마다 제각각의 명제를 가리키고 있어서, 합쳐 놓아도 세계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감사표의 빈칸을 채우려는 순간 마주치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값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골라야 하는가. 성당의 잔향은 왜 예닐곱 초여야 하고, 애플의 목재는 왜 그 수종이어야 하는가. 값에 근거를 대 주고, 제각각 흩어진 여덟 레이어를 한 방향으로 정렬하는 상위의 층이 하나 필요해집니다. 그 층의 이름이 세계관이고, 다음 장의 주제입니다.
더 알아보기
- 샤르트르 대성당(Chartres Cathedral). 스테인드글라스와 순례의 역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자료로 추적할 수 있습니다.
-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Geertz), 『문화의 해석』(국역). 본문이 요약한 1966년의 종교 정의 「문화 체계로서의 종교」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디오니소스 기술자 조합(Technitai of Dionysou). 사제의 격을 인정받았던 고대 배우 조합의 기록입니다.
- 사천 흥사리 매향비. 서남해안 매향비들의 실물은 국가유산 자료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바우하우스(Bauhaus). 사상을 형태와 물성으로 렌더링한 20세기 디자인 운동의 표본입니다.
- 월트 디즈니 이매지니어링(Walt Disney Imagineering). 세계관을 공간으로 렌더링하는 일을 직무로 만든 부서의 실물입니다.
- 팀랩(teamLab)과 몰입형 전시 붐. 2020년대 전시 시장이 그림 대신 분위기의 입력값을 파는 쪽으로 이동한 현재형입니다(en.wikipedia.org/wiki/Team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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