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JE BOOKS Knowledge Library

KIM DONG-EUN · AI가 여는 제5차 컬트 커뮤니티의 시대 (22편)

5. 내부 의회 나라는 집단의 주도권

김동은WhtDrgon. · 5편

5. 내부 의회 - 나라는 집단의 주도권

1줄 요약 : 상품을 사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안의 캐릭터이고, 과시는 선거운동이며 무관객 소비가 통치입니다.


관객 없는 아침 일곱 시

매일 아침 일곱 시, 아무도 보지 않는 주방에서 저울과 초시계로 커피를 내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드리퍼에 원두 15그램, 분쇄도는 늘 쓰던 눈금, 물은 92도, 뜸은 30초. 가는 물줄기를 나선으로 돌려 부으며 원두가 가스를 뱉고 부풀어 오르는 것을 잠깐 지켜보는 이 절차를, 그는 어제도 했고 그제도 했습니다. 원두는 봉투에 적힌 산지의 농장 이름과 가공 방식까지 읽고 고른 것입니다. 이 3분은 촬영되지 않고, 어디에도 올라가지 않습니다.

편의점 캔커피가 더 싸고 더 빠르며 잔에 담기는 카페인의 양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 셈만 따지면 이 절차는 낭비입니다. 시간으로 치면 캔을 따는 세 초와 저울을 다루는 삼 분의 차이입니다. 목적이 각성이라면 3분의 의식은 군더더기인데, 그는 내일 아침에도 저울을 꺼낼 것입니다. 지난 장의 끝에서 우리는 무관객 재방문을 거주의 가장 강한 증거로 꼽았는데, 지금 이 주방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 소비 버전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유지되는 절차, 누구에게도 증명되지 않는데 지켜지는 규격입니다.

과시할 관객이 없으니, 과시라는 설명은 여기서 성립하지 않습니다. 습관이라는 설명은 절반만 맞는 것이, 습관은 절차가 굳은 결과이지 절차가 시작된 이유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하나 남습니다. 관객이 없는데도 공연이 매일 계속된다면, 그 공연의 관객은 대체 어디에 앉아 있는 것일까요. 이번 장에서는 그 관객석의 위치를 찾으러 갑니다. 바깥이 아니라 안쪽입니다.

내부 의회

지난 장은 이런 문장으로 끝났습니다. 사람이 세계에 입주할 때, 세계의 캐릭터가 사람 안에 입각한다. 입각이라는 단어를 해명할 차례인데, 그 전에 사람의 안쪽이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자아가 하나의 단단한 실체라는 통념에는 오래전부터 반론이 이어져 왔습니다. 흄은 자기 자신을 찾으러 내면에 들어가 볼 때마다 이런저런 지각만 만났을 뿐, 그 지각의 주인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적었습니다. 자아는 단단한 실체가 아니라 지각의 다발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심리학의 문을 연 제임스는 한 사람이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의 수만큼의 사회적 자아를 갖는다고 정리했고, 인공지능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민스키는 마음이 단일한 주체가 아니라 작은 행위자들의 사회라고 봤습니다. 세 사람의 결론을 겹치면 이렇게 됩니다. 사람의 안쪽은 왕좌가 아니라 의회입니다. 누구나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회의실에서 단호하던 사람이 부모의 전화 한 통에 다른 사람이 되는 장면은 연기가 아니라 정권 교체입니다.

이 책에서는 그 의회를 내부 의회라 부르겠습니다. 회사에서의 나, 부모 앞에서의 나, 새벽에 혼자 깨어 있는 나는 같은 의석을 두고 경쟁하는 캐릭터들이고, 정체성이란 단일한 실체의 이름이 아니라 지금 다수 지분을 쥔 집권 캐릭터의 이름입니다. 그러면 지난 장의 입각도 풀립니다. 콘텐츠에서 건너온 캐릭터가 이 의회에 의석 하나를 얻는 사건, 그것이 입각이었습니다. 오해 하나는 즉시 차단하겠는데, 이 관점은 소비자 조종론이 아닙니다. 주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람의 캐릭터들에게 있고, 바깥의 브랜드와 콘텐츠가 할 수 있는 일은 특정 캐릭터에게 물자를 대는 것뿐입니다. 선거에 비유하면 후보들은 유권자의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 이미 있고, 브랜드가 공급할 수 있는 것은 후보가 아니라 선거 물자뿐입니다. 세뇌가 아니라 정치학이고, 조종이 아니라 병참입니다.

이 의회 모델은 관전용이 아닙니다. 당신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지금 만드는 것이 보는 사람의 의회에서 어느 의석을 노리는지부터 답해야 합니다. 조회수는 방청석의 숫자이고 거주는 의석의 문제인데, 방청객 백만 명은 박수를 치고 떠나지만 의석 하나는 새벽의 결정에 표를 던집니다. 당신의 채널을 보고 난 사람이 마트에서, 서점에서, 퇴사를 고민하는 밤에 당신 세계의 어휘로 생각한 적이 있는가. 그 순간이 한 번이라도 확인된다면 당신은 이미 의석을 가진 것이고, 아직 없다면 지금까지의 성장은 방청석을 늘려 온 것입니다.

기성복 캐릭터의 시대

의회가 있다면 의원들은 어디서 올까요. 캐릭터의 공급처에는 세대가 있습니다. 인류학자 린턴은 사람의 지위를 태어나면서 부여되는 귀속 지위와 노력으로 얻는 성취 지위의 두 칸으로 나눴습니다. 귀속의 시대에 캐릭터는 공짜였지만 선택권도 없었습니다. 종갓집 장남으로 태어난 사람은 원하든 원치 않든 제사장 캐릭터를 물려받았고, 반납할 창구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성취의 시대에 캐릭터는 선택할 수 있게 됐지만 비쌌습니다. 의사라는 캐릭터의 가격은 십수 년의 수련이었고, 장인이라는 캐릭터의 가격은 평생이었습니다. 성취 캐릭터에는 유지비도 붙어서, 면허와 승진과 평판이라는 청구서가 상시로 날아듭니다.

지금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세 번째 칸, 구매입니다. 티켓 한 장으로 관객 캐릭터가, 앨범 한 장으로 팬 캐릭터가, 무료 검사 링크 하나로 성격 유형 캐릭터가 몇 초 만에 장착됩니다. 3장의 설문지를 기억한다면, 그것이 바로 기성복 매대의 최저가 코너였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 칸의 상품을 기성복 캐릭터라 부르겠습니다. 물려받는 유니폼도 아니고 십 년 걸리는 맞춤복도 아닌, 걸려 있는 것을 골라 입는 옷입니다.

캐릭터의 가격이 폭락하자 보유량이 폭증했습니다. 귀속의 시대에 한 사람의 의회는 서너 석짜리였지만, 기성복의 시대에 사람들은 수십 개의 캐릭터를 걸치고 삽니다. 옷장에 옷이 늘수록 오늘 무엇을 입을지의 고민이 늘듯, 캐릭터가 늘수록 오늘 누구로 살지의 경쟁이 늘어납니다. 의회는 다당제가 됐고, 다당제에서는 집권 경쟁이 상시화되며, 경쟁하는 캐릭터들은 저마다 유지 보수를 요구합니다. 그 유지 보수 시장의 다른 쪽 창구가 콘텐츠 산업입니다. 캐릭터 획득 비용의 폭락이 캐릭터 인플레이션을 낳았고, 그 인플레이션이 이 산업의 토양입니다.

이 다당제 의회에 다섯 번째 물결이 무엇을 보태는지는 열 번째 장의 주제라, 여기서는 한 줄만 예고해 두겠습니다. 지금까지 의석은 콘텐츠와 상품에서 건너왔습니다. 스스로 말하는 매체는 처음으로, 나를 기억하고 매일 대답하는 상대라는 자격으로 의석을 신청합니다.

커피의 세 번째 물결

마케팅 교과서에서는 오래된 격자 하나로 상품을 분류해 왔습니다. 관여도가 높은 상품과 낮은 상품, 이성으로 사는 상품과 감성으로 사는 상품의 사분면입니다. 그 격자에서 자동차와 집은 고관여 칸에, 커피와 맥주와 물은 저관여 칸에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상품마다 타고난 관여도가 있다는 전제입니다.

그 전제가 커피에서 깨졌습니다. 업계는 자기 역사를 세 번의 물결로 서술합니다. 인스턴트가 커피를 대중화한 첫 물결, 에스프레소 프랜차이즈가 커피를 공간으로 만든 두 번째 물결, 그리고 산지의 표고와 품종과 가공 방식과 추출 수율을 따지는 스페셜티의 세 번째 물결입니다. 커핑 노트에는 자스민과 베르가못 같은 단어가 적히고, 손님은 원두의 품종 이름을 외웁니다. 저관여의 대명사였던 검은 물 주위에 단일 품종의 테루아(산지의 풍토)를 논하는 세계가 선 것인데, 업계가 자기 역사를 물결이라는 단어로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책의 독자에게는 반가운 프랙탈일 것입니다. 1장의 물결 법칙이 카테고리 하나의 안쪽에서도 작동하고 있습니다.

맥주 쪽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있는데, 크래프트 맥주 세계에는 쓴맛의 단위와 홉 품종이라는 내부 언어가 있고, 마신 맥주를 앱에 기록하는 체크인이라는 전례가 있고, 양조장을 도는 투어라는 순례가 있고, 한정판 발매일의 줄서기라는 축일이 있습니다. 이 목록이 낯익다면 정확히 본 것입니다. 4장에서 꼽은 거주의 증거들이 맥주잔 주위에 전부 모여 있습니다. 저관여 상품 위에 통째로 들어선 이 장비 일습이 무엇의 목록인지는 각론부에서 하나씩 다룹니다. 판정만 먼저 내리겠습니다. 관여도는 상품에 타고나는 속성이 아니라, 그 상품 위에 세워진 세계관 프롬프트가 얼마나 침투했는가의 측정값입니다. 격자가 틀렸다기보다 축이 하나 부족했던 셈입니다. 같은 커피가 어떤 사람에게는 연료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세계입니다.

물과 무표정의 실험

커피와 맥주야 그렇다 쳐도 아예 무의미한 상품은 예외 아닌가, 이를테면 물은 어떤가 하는 반론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마침 그 극한값의 실험 결과가 시장에 나와 있습니다.

리퀴드 데스는 캔에 든 물입니다. 성분으로는 다른 물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이 회사가 한 일은 물 위에 헤비메탈의 세계관을 통째로 입힌 것입니다. 해골이 그려진 캔, 갈증을 살해하라는 구호, 록 페스티벌의 미학. 생수 코너의 문법 대신 에너지 드링크와 맥주의 진열대 문법을 가져왔고, 록 페스티벌과 타투 문화의 한복판으로 들어갔습니다. 고객들은 물을 마시면서 반항의 제스처를 얻습니다. 건강 음료의 상식을 정면으로 배반한 이 브랜드는 조 단위 기업 가치의 유니콘이 됐습니다. 물이라는 상품은 차별화의 여지가 0에 수렴하기 때문에, 이 성공에서는 상품 요인을 통제하고 세계관 요인만 깨끗하게 남길 수 있습니다. 3장의 MBTI가 콘텐츠 쪽의 순수 배양 실험이었다면, 이쪽은 상품 쪽의 순수 배양 실험입니다.

반대쪽 극한도 있습니다. 무인양품은 의미를 지우는 브랜드입니다. 상표를 없애고 색을 빼고 이유 있게 싸다고만 말하는 무표정의 미학인데, 그 무표정이 도리어 교복이 됐습니다. 매장에 들어서면 로고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큰 로고처럼 작동합니다. 애호가들은 집 안을 그 무표정으로 통일하고, 신제품 앞에서 이건 무지답지 않다는 감식안 발화를 내놓습니다. 지난 장의 어휘로 말하면 그들은 무인양품의 거주자이고, 의미를 거부하는 선택조차 의미의 시장 안에서는 하나의 유니폼인 셈입니다. 그래서 판정이 뒤집힙니다. 의미의 시장에서 중립은 판매되지 않습니다. 1장에서 가게의 중립이 무존재였듯, 상품의 중립도 선택지가 아니었습니다.

선거운동과 통치

이제 소비를 두 종류로 가르겠습니다. 기준은 관객의 유무입니다. 한쪽에는 성수동 팝업의 인증샷과 태그를 단 개봉기와 오픈런의 대기줄 셀피 같은 과시 소비가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아침 일곱 시의 푸어오버(핸드드립)와 태그 없는 조용한 재구매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사용 같은 무관객 소비가 있습니다.

내부 의회의 언어로 옮기면 이 둘은 같은 캐릭터의 다른 국면입니다. 과시는 선거운동입니다. 아직 집권을 다투는 캐릭터가 바깥의 유권자에게, 그리고 안쪽의 의회에 자기 존재를 공표하는 유세입니다. 무관객 소비는 통치입니다. 이미 집권한 캐릭터가 관객 없이 일과를 운영하는 국면입니다. 구매는 내부 의회의 표결이고 지갑은 투표함이어서, 모든 결제는 어느 캐릭터에 대한 신임 투표로 기록됩니다. 팬덤의 스트리밍 총공세 같은 집단 행동도 이 문법으로 읽힙니다. 팬 캐릭터가 집권해 매일의 재생을 일과에 편성한, 관객 없는 성실한 통치이고, 차트 순위는 그 통치의 국정 지표로 읽힙니다.

여기서 마케터의 고질적인 계측 오류가 드러나는데, 선거 지표는 세면서 통치 지표는 재지 않는 오류입니다. 태그와 인증과 바이럴은 유세의 소음이라 측정이 쉽지만, 팝업의 오픈런이 끝난 뒤 무관객 재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브랜드는 선거에서 이기고 통치에 실패한 정권입니다. 통치 지표의 핵심은 무관객 재구매율과 사적 전례의 정착인데, 사적 전례란 브랜드가 시키지 않았는데 고객이 스스로 지어 지키는 사용 절차를 말합니다. 아침 일곱 시의 남자에게 돌아가, 도입에서 남긴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그 주방의 관객석은 그의 안쪽에 있고, 객석에 앉은 것은 집권 중인 커피인 캐릭터입니다. 과시는 선거운동이고, 무관객 소비가 통치입니다.

실습, 캐릭터 시트

이 장의 도구는 질문 세 개짜리 시트입니다.

  1. 캐릭터 식별. 우리 상품을 사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안의 캐릭터입니다. 그 캐릭터에게 이름을 붙입니다. 전동 공구를 사는 것은 주말 목수 캐릭터이고, 스페셜티 원두를 사는 것은 커피인 캐릭터이며,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사는 것은 몰입 노동자 캐릭터입니다.
  2. 지분 평가. 그 캐릭터의 현재 의회 지분을 판정합니다. 일과를 운영하는 집권인가, 주말에만 발언권을 얻는 야당인가, 아직 입각 전인 원외인가. 지분에 따라 대야 할 물자가 다른데, 원외에는 인지도가, 야당에는 발언 기회가, 집권에는 일과의 물자가 필요합니다.
  3. 군수 목록. 우리가 그 캐릭터에게 실제로 공급하는 물자를 적습니다. 장비인가, 복장인가, 무대인가, 일과인가, 어휘인가. 커피인 캐릭터에게 원두는 장비이고 계량 저울은 제복이며 아침 일곱 시는 일과입니다. 목록이 장비 한 줄로 끝난다면, 경쟁사가 나머지 줄을 채우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시트로 이론부의 사슬이 완결됩니다. 1장의 사다리에서 건축가를 목표로 잡았다면, 여기까지의 다섯 장이 그 건축의 이론 교본이었습니다. 사상은 렌더링되고, 렌더링은 프롬프트가 되고, 프롬프트는 시청자를 거주자로 바꾸고, 거주의 안쪽에서는 캐릭터가 집권합니다. 남은 것은 이 사슬을 실제로 굴리는 물자입니다. 신조, 신화, 전례, 성소, 신탁, 정경, 온보딩, 분파, 축일. 백 년 치 물결에서 거둔 물자를 다음 장부터 하나씩 다루는데, 매회 종교사에서 원형을 읽고, 오늘의 시장에서 그 변환 사례를 확인하는 순서로 진행합니다. 지금부터의 아홉 장은 캐릭터 군수산업의 물자 목록입니다.


더 알아보기

  • 데이비드 흄 『인간 본성론』, 윌리엄 제임스 『심리학의 원리』, 마빈 민스키 『마음의 사회』(국역). 자아를 의회로 보는 관점의 세 원전입니다.
  • 랠프 린턴(Ralph Linton), 『인간 연구』(The Study of Man, 1936). 귀속 지위와 성취 지위 구분의 출처입니다.
  • 리퀴드 데스(Liquid Death)와 무인양품. 두 순수 배양 실험의 연혁은 회사 공개 자료와 보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할리 오너스 그룹(Harley Owners Group).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는 소유자 공동체의 교과서 사례입니다.
  • 곤도 마리에와 정리 문화. 설레지 않으면 버린다는 명제 하나가 일상을 통치하는 캐릭터를 세운 사례입니다.
  • 스탠리 퀜처(Stanley Quencher) 텀블러 열풍. 백 년 된 보온병 회사가 수집 캐릭터의 선거운동 소비로 급성장한 2023년 전후의 사례입니다(en.wikipedia.org/wiki/Stanley_Quencher).

© 2026 MEJE WORKS Corp. & 김동은WhtDrg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