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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JE PROCESS · MEJE 스토리텔링 100

01 제1장

MEJE Works · Chapter 1

제1장. Vault 이후의 빈 문서 - 일상단면 시나리오가 세계관을 완성하는 역할

독자에게 한 가지 풍경을 떠올려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한 IP를 몇 달 또는 몇 년 동안 운영해 온 제작자의 화면입니다.

왼쪽 창에는 옵시디안이 떠 있습니다. 옵시디안(Obsidian)은 로컬 환경에서 실행되는 마크다운 기반 노트 앱으로, 파일 간 wikilink(문서와 문서를 [[문서명]] 형식으로 연결하는 내부 링크)와 그 연결을 그래프로 시각화하는 기능 덕분에 IP 세계관 관리 도구로 즐겨 쓰입니다. 표제어가 1,200개 쌓여 있습니다. 인물·지명·제도·소품·사건·집단이 카테고리로 정리되어 있고, 각 표제어 페이지에는 정의와 상세 서술과 wikilink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프 뷰를 열면 1,200개의 점과 그 점들 사이를 잇는 4,000개 가까운 선이 뜹니다. 이 IP의 세계관이 어디에 빽빽하고 어디에 듬성한지가 한눈에 보입니다.

오른쪽 창에는 100인의 캐릭터 시트가 들어 있는 폴더가 열려 있습니다. 각 인물 파일에는 페르소나·피지컬·트라우마·직업·관계망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100인이 각자의 위치에서 완전히 정의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가운데 창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새 파일을 열어 두었습니다. 커서가 깜박이고 있습니다.

자료가 이만큼 갖춰졌는데도 첫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자료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 풍경에서 출발하겠습니다. 본 강연고의 14회 동안 저희는 이 커서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100편의 일상단면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지점까지를 한 단계씩 따라가게 됩니다. 첫 회인 오늘은 그 출발점을 잡아 두는 회입니다. 이 작업이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만드는 작업인지, 왜 Vault와 캐릭터 시트가 있어야만 시작되는지를 함께 짚습니다.

Vault가 있어도 시작되지 않는 것

〈라이브러링〉 강연고에서 저희는 흩어진 IP 자료를 한 권의 옵시디안 Vault로 짓는 작업을 14회에 걸쳐 다루었습니다. 1차 추출, 2차 통합, 3차 골격 빌드, 4차 서술 집필의 네 단계로 1,500개의 표제어가 쌓이는 과정이었습니다. 아직 그 강연고를 읽지 않으셨다면 잠깐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라이브러링이란 한 IP의 인물·지명·사물·집단·제도·메카닉·사건을 9가지 분류에 따라 추출하고, 동의어를 한 표제어로 묶고, 각 표제어에 산문으로 된 서술을 입혀, 옵시디안 .md 파일 형태의 클라우드 위키를 짓는 작업입니다. 그 결과물을 저희는 Vault라고 부릅니다. 한 IP의 단일 진실 공급원입니다.

Vault가 완성되면 제작자에게 한 가지 능력이 생깁니다. 이 IP의 어떤 부분에서도 어떤 인물의 이름이든, 어떤 장소의 정의든, 어떤 제도의 규칙이든 한 번에 찾아볼 수 있게 됩니다. 정합성이 보장됩니다. 1,200개의 표제어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한 인물의 트라우마가 어떤 제도와 얽혀 있는지, 어떤 장소가 어떤 사건의 무대였는지를 wikilink 몇 번으로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능력이 자동으로 이야기를 낳지는 않습니다.

Vault는 사전입니다. 사전이 소설이 아니듯 Vault는 시나리오가 아닙니다. 사전이 아무리 두껍고 정확해도, 사전으로부터 소설은 저절로 나오지 않습니다. 같은 원리로, Vault가 아무리 충실해도, Vault로부터 시나리오는 저절로 나오지 않습니다. 누군가 Vault를 무기로 들고, 그 무기를 사용하는 손이 되어야 합니다.

그 손이 움직이는 방식을 본 강연고가 다룹니다. 본 강연고는 Vault와 캐릭터 시트를 재료로 삼아 100편의 일상단면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절차를 14회에 걸쳐 안내합니다. 〈라이브러링〉이 사전을 짓는 작업이었다면, 〈스토리텔링100〉은 그 사전을 이야기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일상단면 시나리오라는 발상

저희가 이 작업의 산출물에 붙인 이름은 일상단면 시나리오입니다. 단어 하나씩 짚겠습니다.

일상이라는 단어가 먼저 옵니다. 일상은 거대하지 않습니다. 세계를 구하는 갈등도 아니고, 역사를 바꾸는 사건도 아닙니다. 한 인물이 자기 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가 아침에 어떤 도구를 집어 드는지, 어떤 동료와 어떤 말을 나누는지, 어떤 결정 앞에서 잠시 멈추는지. 이런 것들이 일상입니다.

단면이라는 단어가 그 옆에 옵니다. 단면은 전체가 아닙니다. 하나의 단편 시나리오는 한 인물의 삶 전체를 담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 삶의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교차점을 잘라 보여 줍니다. 바깥으로 내민 얼굴이 아니라 횡단면입니다. 그 단면 안에 그 인물이 살아 있는 세계의 밀도가 녹아 있어야 합니다.

시나리오라는 단어가 뒤를 잇습니다. 시나리오는 형식이 확정된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시나리오는 넓은 뜻으로 씁니다. 산문으로 쓴 단편소설일 수도 있고, 대사와 지문으로 이루어진 만담형 다이얼로그일 수도 있고, 꽁트집의 한 스케치일 수도 있고, 4컷 만화를 위한 콘티 시나리오일 수도 있습니다. 형식은 프로젝트의 성격과 소재의 성격에 따라 선택합니다. 그 선택의 논리는 이 회의 뒤에서 한 번 더 다룹니다.

이 세 단어를 합치면 한 문장이 됩니다. 라이브러리에서 규정된 배경·소재·인물·사건·사물·장소의 표제에 의거하여, 그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한 인물의 일상 한 단면을 포착한 시나리오. 이것이 본 강연고가 만들려는 것입니다.

라이브러리 표제가 집필의 시작이다

일상단면 시나리오의 시작점은 빈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라이브러리의 표제입니다.

〈라이브러링〉 강연고를 함께 읽으신 분들은 이 말이 바로 닿을 겁니다. Vault 안에는 이 IP의 모든 인물·지명·제도·소품·사건·직업군이 표제어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각 표제어에는 정의와 상세 서술과 관련 표제어로 가는 wikilink가 들어 있습니다. 그 표제어들이 이 강연고에서는 집필의 출발점이 됩니다.

어떤 표제어를 꺼내느냐에 따라 어떤 시나리오를 쓸지가 결정됩니다. 특정 직업의 표제어를 꺼내면 그 직업을 가진 인물의 하루가 소재가 됩니다. 특정 장소의 표제어를 꺼내면 그 장소에서 벌어지는 한 장면이 소재가 됩니다. 특정 제도의 표제어를 꺼내면 그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등이 소재가 됩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표제어에서 시작하면 두 가지가 보장됩니다.

첫째, 이 IP의 세계관 안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작가의 기억이나 감각이 아니라, Vault가 이미 확정해 둔 이 세계의 규칙에서 출발합니다. 100편 중 한 편에서만 쓰이는 설정을 새로 발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있는 자료를 입력으로 삼아 이야기를 조립합니다.

둘째, 세계관의 빈 곳이 채워집니다. Vault 안에 표제어는 있지만 아직 어떤 시나리오에도 등장하지 않은 영역이 있습니다. 어떤 직업군은 설명은 되어 있지만 그 직업을 가진 인물의 하루를 보여 준 편이 아직 없습니다. 어떤 장소는 지명으로는 존재하지만 그 장소에서 벌어진 이야기가 아직 없습니다. 표제어를 소재로 삼아 100편을 쌓아가면, 그 빈 곳들이 하나씩 메워집니다. 100편이 완성되는 시점에는 이 IP의 세계관이 설명집이 아니라 이야기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 빈 곳을 추적하는 도구가 있습니다. **커버리지 매트릭스(Coverage Matrix)**입니다. 100인의 인물을 세로축에, 집필 완성된 편 번호를 가로축에 놓은 교차표로, 어떤 인물이 어느 편에서 주연 또는 조연으로 등장했는지를 한눈에 확인합니다. 세계관의 어떤 영역이 아직 한 번도 다루어지지 않았는지, 어떤 인물의 원고가 과도하게 몰려 있는지를 이 표가 보여 줍니다. 이 도구의 구체적인 운영 방법은 13회에서 다룹니다.

MEJE 7단계 파이프라인 안의 위치

본 강연고가 서 있는 위치를 한 번 전체 그림으로 펼쳐 두겠습니다.

MEJE Works는 아이돌 IP, 브랜드 IP, 팬덤 IP, 게임 IP, 예술 IP 등의 분야에서 세계관을 라이브러리 기반으로 절차적으로 제작하고 확장하는 B2B 회사입니다. 이 회사가 한 IP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흐름에는 7단계가 있습니다. 본 강연고는 그 7단계의 마지막 단계에 놓입니다.

순서대로 짚으면 이렇습니다.

1단계에서는 자료를 수집하고 전처리합니다. 클라이언트가 가진 기존 자료, 레퍼런스 IP, 세계관 초안 같은 것들이 입력으로 들어옵니다.

2단계에서는 〈라이브러링〉을 합니다. 1단계의 자료에서 키워드를 추출하고, 표제어로 통합하고, Vault를 짓습니다. 이 강연고를 따로 읽으셨다면 이미 아실 겁니다. Vault는 이 단계의 산출물입니다. 이 산출물이 이후 모든 단계의 공통 기반이 됩니다.

3단계에서는 세계관을 제작합니다. Vault를 기반으로 룰북·로어북·월드 설정집을 씁니다. 이 세계의 물리 법칙, 역사, 지정학이 여기서 정리됩니다.

4단계에서는 아이돌 페르소나를 설계합니다. 아이돌 IP라면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의 트롭·기믹·피지컬·세계관 안에서의 역할을 설계합니다.

5단계에서는 캐릭터를 확정합니다. 4단계의 페르소나 설계를 바탕으로 한 인물의 트라우마·결핍·직업·관계망을 구체적으로 채워 캐릭터 시트를 완성합니다. 〈신규 캐릭터 빌드〉 강연고가 이 단계를 14회에 걸쳐 안내합니다.

6단계에서는 세계관을 다국어로 스케일업합니다. 인물명·지명·제도명의 표준 표기를 정하고, 다국어 글로서리를 짓습니다.

그리고 7단계입니다. 여기가 본 강연고의 위치입니다. 2단계의 Vault와 5단계의 캐릭터 시트를 입력으로 삼아 100편의 일상단면 시나리오를 완성합니다.

이 7단계의 구조에서 한 가지를 확인해 두겠습니다. 2·3·5단계의 산출물(Vault·세계관 설정집·캐릭터 시트)이 없으면 7단계는 시작할 수 없습니다. 표제어가 없으면 집필의 소재가 없고, 캐릭터 시트가 없으면 주인공이 없고, 설정집이 없으면 세계관의 제약 조건을 확인할 곳이 없습니다. 입력 자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7단계를 시작하면, 매 편마다 세계관을 처음부터 발명해야 합니다. 그 비용이 얼마나 큰지는 겪어 보신 분들이 아실 겁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7단계는 앞 단계의 산출물을 소비하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집필 과정에서 새로 만들어진 표제어는 Vault로 돌아가 등록됩니다. 새로 등장한 인물 표기는 6단계 다국어 글로서리로 환류됩니다. 7단계가 진행될수록 Vault가 성장합니다. 100편이 완성되는 시점에는 처음 시작할 때보다 훨씬 두껍고 촘촘한 사전이 남아 있습니다.

이 환류가 라이브러링 강연고와 본 강연고가 단순히 순서가 다른 두 강연고가 아니라 서로를 살찌우는 두 작업임을 보여 줍니다.

100편은 수량 목표가 아니다

이 강연고의 제목에 들어 있는 숫자 100을 두고 한 가지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100편은 목표 수량이 아닙니다.

100편은 방법론입니다.

설정집과 룰북이 세계의 규칙과 역사를 설명한다면, 일상단면 시나리오 100편은 그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100인의 직업·하루·관계를 보여 줍니다. 설명된 세계와 보여진 세계는 다릅니다. 독자는 설명으로 세계를 이해하지만, 이야기로 세계를 믿습니다. 설정집을 읽으면 이 세계에 어떤 직업이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를 보여 주는 시나리오 한 편을 읽으면, 독자는 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체감하게 됩니다.

100편이 쌓이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팬이 이 IP에 처음 접근했다고 합시다. 주인공 한 명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 이야기 안에서 잠깐 등장한 조연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 조연의 시나리오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그 조연이 일하는 공간이 나옵니다. 그 공간을 무대로 한 다른 편이 또 있습니다. 이렇게 링크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이 세계를 알아가게 됩니다. 마치 옵시디안 Vault의 wikilink를 따라가는 방식과 같습니다. 단편의 링크가 팬덤의 탐색 경로가 됩니다.

이것이 100편의 진짜 기능입니다. 단편 하나하나가 이 세계의 한 창문입니다. 100개의 창문이 열리면 독자는 이 세계가 자신이 보지 못한 곳에서도 계속 살아간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그 믿음이 팬덤입니다.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 미디어 연구자·《컨버전스 컬처Convergence Culture》 저자)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한 이야기 세계가 여러 플랫폼에 걸쳐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방식으로 확장되는 서사 전략)이라는 개념에서 이것을 이렇게 설명한 바 있습니다. 한 IP의 팬덤이 성장하려면 팬이 자기 IP를 여러 방향에서 탐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어느 방향으로 들어가도 세계의 일관성이 유지되고, 어느 창을 열어도 이 세계의 이야기가 있다는 신뢰가 쌓여야 한다고. 100편의 일상단면 시나리오는 그 탐색 경로의 100개 입구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소설이 아니라 기록의 질감

100편의 시나리오를 쓴다고 했을 때 또 하나의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각 편이 소설처럼 써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가 이 작업에서 지향하는 질감은 소설보다 오히려 기록에 가깝습니다.

TRPG를 아시는 분이라면 NPC 히스토리라는 개념이 익숙할 겁니다. TRPG 마스터가 룰북 한 장 정도에 적어 두는 조연 NPC의 배경 서사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사건을 겪었고,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간결하고 구체적으로 적어 둔 것. 그것을 읽은 플레이어가 그 NPC와 마주쳤을 때, 그 NPC가 하나의 인물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밀도. 이 질감이 저희가 지향하는 것입니다.

기록의 질감이 소설의 질감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소설은 독자가 이야기 안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설계됩니다. 기록은 독자가 이야기를 통해 세계의 실체를 확인하도록 설계됩니다. 전자는 경험이 우선이고, 후자는 신뢰가 우선입니다.

저희가 기록의 질감을 지향하는 이유는 IP 운영의 논리에서 나옵니다. 100편이 모두 소설적 몰입을 최우선으로 설계된다면, 100편 전체를 읽지 않는 한 이 세계의 넓이가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록의 질감으로 쓰인 한 편은 짧게 읽혀도 "이 세계에는 이런 인물이 이런 위치에 있구나"를 전달합니다. 한 편 한 편이 세계관 사전의 한 페이지처럼 작동합니다. 그것이 Vault와 시나리오의 연결 고리입니다.

그렇다고 이야기적 쾌감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기록의 질감 위에서도 판돈(인물이 이 이야기 안에서 잃을 수 있는 것)은 있어야 합니다. 신체 앵커(인물의 몸을 텍스트에 닻처럼 고정하는 구체적 감각 묘사)는 있어야 합니다. 엔딩은 감각으로 닫혀야 합니다. 이 기준들에 관해서는 2회에서 한꺼번에 펼쳐 드립니다.

형식을 선택한다는 것

본 강연고의 시나리오는 형식이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프로젝트와 소재에 맞게 네 가지 형식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기본은 단편소설 형식입니다. 서술과 대화가 섞인 산문, 6,00010,000자 사이로, 한 인물의 감각과 내면이 깊이 들어가야 하는 소재에 적합합니다. 짧고 빠른 소재는 꽁트가 정직합니다. 1,5003,500자의 단막 희극 스케치로, 일상의 아이러니나 직업적 부조리에 어울립니다. 두 인물의 관계와 말의 질감이 핵심이라면 만담형 다이얼로그가 맞습니다. 2,5006,000자에 지문과 대사만 있어, 내면 서술 없이 행동과 대사로 모두 드러내야 하는 형식. 이미지로 포착되는 한 장면이 핵심이라면 4컷만화 시나리오가 가장 짧은 형식이고, 컷당 200500자로 시그니처 행동 한 가지가 한 컷에 들어가도록 짭니다.

이 형식 선택이 왜 중요한가. 형식은 소재의 성격을 가장 잘 살려내는 그릇입니다. 꽁트 소재를 단편소설로 억지로 늘리면 소재가 묽어집니다. 깊은 내면 묘사가 필요한 소재를 4컷 시나리오로 압축하면 소재가 사라집니다. 소재에 맞는 형식을 고르는 눈이 집필의 첫 번째 능력입니다. 3회에서 이 선택의 기준을 자세히 다룹니다.

100편 안에서 이 네 형식이 섞이는 것을 저희는 권합니다. 같은 형식으로만 100편을 쓰면 독자의 리듬이 단조로워집니다. 소재의 성격에 따라 형식이 달라지면, 100편의 집합이 하나의 컬렉션으로서 다양성을 갖게 됩니다.

인물 팬덤과 세계관 팬덤

통상적 의미의 팬덤은 한 인물에 대한 사랑입니다. 주인공 A를 좋아하고,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굿즈를 모으는 것. 이 팬덤은 A가 사라지면 약해집니다. IP 운영의 관점에서 더 강하고 오래 가는 팬덤은 인물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팬덤입니다. 마블 유니버스를 떠올려 보면 됩니다. 어떤 팬은 아이언맨을, 어떤 팬은 블랙 위도우를, 어떤 팬은 아무도 모르는 조연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인물은 다르지만 같은 세계를 공유합니다. 그 세계가 살아 있다는 믿음이 팬덤을 유지합니다. 100편의 일상단면 시나리오는 그 믿음을 쌓는 도구이고, 앞 절의 탐색 메커니즘이 그 믿음의 작동 방식입니다.

두 손으로 짓는 작업

이 작업도 라이브러링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손으로만 끌기엔 무겁습니다. 100편의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쓴다면, 설계·집필·검수·개작을 모두 합쳐 몇 달이 걸립니다. 그 시간 안에 Vault도 관리하고 캐릭터 시트도 갱신하고 커버리지 매트릭스도 추적하는 일을 병행해야 합니다.

저희도 그 부담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 강연고도 라이브러링 강연고와 같은 관점에서 AI 작업 동료와의 협업을 본문에 적극적으로 노출합니다.

다만 협업의 결은 라이브러링과 조금 다릅니다. 라이브러링은 1,500개의 표제어를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작업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반면 스토리텔링100은 편 하나하나가 서사 판단을 요구합니다. 이 편의 판돈이 충분한가. 이 엔딩이 감각으로 닫히고 있는가. 이 신체 앵커가 세 번 이상 변주되고 있는가. 이 판단들은 기계가 대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 강연고의 AI 작업 동료 활용은 다음과 같이 구분됩니다.

위임 가능한 부분: 소재 발굴의 기계적 경로(커버리지 매트릭스 공백 추출, Vault 랜덤 추출), 집필의 초고 생성, 자가 검수의 자동화 항목(신체 앵커 위치 감지, 엔딩의 추상 선언 패턴 탐지, 분량 체크).

사람이 반드시 결정해야 하는 부분: 소재의 방향 결정, 판돈의 합격선 판단, Fun Engine의 작동 여부 판단, 최종 검수와 마스터 승인, 캐릭터 시트 정합성 판단.

이 두 부분의 경계를 매 회에서 다시 그어 보이겠습니다. 14회를 따라오시면 이 경계를 직접 갖게 됩니다.

자매 강연고와의 관계

본 강연고에는 두 자매 강연고가 있습니다.

〈라이브러링〉은 Vault를 짓는 작업을 다룹니다. 흩어진 IP 자료를 4단계 절차로 옵시디안 키워드 클라우드로 변환하는 작업입니다. 본 강연고의 집필이 시작되기 위해 먼저 완성되어야 하는 작업입니다. 아직 그 강연고를 읽지 않으셨다면, 본 강연고를 먼저 따라오셔도 되지만, 〈라이브러링〉을 함께 읽으시면 Vault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왜 그 구조로 만들어지는지가 더 잘 보입니다.

〈신규 캐릭터 빌드〉는 한 인물을 처음부터 빚는 작업을 다룹니다. 시드(아이디어 한 줌)에서 시작해 트라우마·직업·피지컬·관계망이 갖추어진 캐릭터 시트를 완성하는 12단계를 14회에 걸쳐 안내합니다. 본 강연고의 주인공들이 거기서 빚어집니다. 그 강연고의 산출물인 캐릭터 시트가 이 강연고에서는 집필의 1차 진실 공급원이 됩니다.

세 강연고가 만나는 곳이 있습니다. 〈라이브러링〉이 세계를 짓고, 〈신규 캐릭터 빌드〉가 인물을 빚고, 〈스토리텔링100〉이 그 세계와 인물을 이야기로 살립니다. 이 세 단계가 함께 가야 한 IP의 자산이 완성됩니다.

자매 강연고를 아직 읽지 않으셨다 해도 본 강연고는 따라오실 수 있습니다. 자매 강연고의 산출물이 등장할 때마다 짧게 설명을 붙여 두겠습니다.

14회의 지도

앞으로 14회의 흐름을 한 번 펼쳐 두겠습니다. 오늘 1회는 자세를 잡았고, 2회는 6대 품질 기준 전체를 펼치고, 3회는 시나리오의 뼈대 네 가지(판돈·시점·형식·분량)를 다룹니다. 46회는 라이브러리가 집필 입력이 되는 부분으로, Vault와 집필의 인터페이스(4회), 캐릭터 시트에서 소재 끌어내기(5회), 소재 발굴 네 갈래(6회). 79회는 집필의 도구로 신체 앵커(7회), Fun Engine 다섯 동력(8회), 엔딩 착지·숫자 장면화(9회). 10~12회는 설계·집필·검수로 설계서에서 원고까지(10회), 참조 작가 시스템(11회), 자가 검수와 마스터 검수(12회). 13·14회는 100편의 운영과 마무리로 커버리지 매트릭스·연작 관리(13회), 5년 운영의 실전 교훈과 마지막 인사(14회). 각 회는 자기완결적으로 읽히도록 짜 두었으나, 순서대로 따라오시면 작업의 결이 더 깊이 보입니다.

그 커서를 다시 바라보면

처음의 풍경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왼쪽 창에는 Vault가 떠 있고, 오른쪽 창에는 캐릭터 시트가 열려 있고, 가운데 창에는 깜박이는 커서가 있습니다.

이제 그 커서 앞에 무엇이 있는지가 조금 달라 보이기 시작했을 겁니다. 빈 문서가 아닙니다. Vault 안의 표제어 1,200개가 소재 후보로 대기 중이고, 캐릭터 시트 100인이 주인공 후보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표제어를 꺼낼지, 어떤 인물이 오늘 이 편의 주인공인지, 어떤 형식으로 그 소재를 담을지만 결정하면 커서는 움직입니다.

그 결정의 논리를 본 강연고가 14회에 걸쳐 함께 들여다봅니다. 다음 회에서는 그 결정으로 만들어진 편이 합격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기준, 즉 6대 품질 기준 전체를 지도로 한 번에 펼쳐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그 커서를 한 번 바라보고 다음 회에서 뵙겠습니다.


- 본문 / 라이브러리 기반 스토리텔링100 강연고 1회 / 2026-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