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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10장

MEJE Works · Chapter 10

제10장. 설계서에서 원고까지 - 10가지 결정의 연쇄


빈 문서 앞에 앉기 전에 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미 여러 장에서 그 각각을 다루었습니다. 판돈, 시점, 형식, 분량은 3장에서. Vault 확인은 4장에서. 인물 선택은 5장에서. 소재 발굴은 6장에서. Fun Engine 선택은 8장에서.

이 모든 것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것이 설계서입니다. 설계서는 집필 전에 작성하는 짧은 계획 문서입니다. 원고가 아닙니다. 원고를 쓰기 위한 지도입니다.

이번 강연은 설계서의 구체적인 작성 방법과, 설계서에서 완성된 원고까지의 전체 흐름을 다룹니다. 그 과정에서 10가지 결정이 어떻게 연쇄하는지를 봅니다.


설계서란 무엇인가

설계서는 원고 하나에 대해 집필 전에 확정하는 항목들의 기록입니다. 건축의 설계도와 비슷합니다. 집을 짓기 전에 도면을 그리고, 그 도면을 기준으로 집을 짓습니다. 집을 다 짓고 나서 도면을 그리지 않습니다. 픽사가 〈Toy Story〉를 짤 때 사용한 1쪽 트리트먼트, 헤밍웨이가 한 단편을 시작하기 전 노트북 한 페이지에 썼다는 "한 진실한 문장"의 출발점이 같은 결입니다. 도면이 짧으면 집필이 자유롭고, 도면이 없으면 집필이 헤매게 됩니다.

설계서가 없으면 집필이 탐색이 됩니다. 탐색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100편이라는 규모에서 모든 원고를 탐색으로 쓰면 비효율과 일관성 문제가 생깁니다. 설계서가 있으면 집필이 실행이 됩니다. 무엇을 써야 하는지 알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문서를 엽니다.

설계서는 짧아야 합니다. 설계서를 쓰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면 집필의 리듬이 깨집니다. 10개 항목을 20~30분 안에 작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가지 결정

설계서에 기록하는 10가지 결정을 순서대로 살펴봅니다.

결정 1: 형식 선택

단편소설 / 꽁트 / 만담형 다이얼로그 / 4컷만화 시나리오 중 선택합니다. 선택 이유도 한 줄로 씁니다. "이 소재는 관계 중심이고 두 인물의 대화에서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만담형." 이유를 쓰면 나중에 형식을 검토할 때 근거가 됩니다.

결정 2: 분량 목표

형식에 따른 범위 안에서 구체적인 목표 분량을 정합니다. "단편소설, 약 7,000자" 또는 "꽁트, 2,000~2,500자". 숫자가 있으면 집필 중에 과잉 또는 부족을 조절하기 쉽습니다.

결정 3: 주인공

이 원고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이름과 Tier를 확인합니다. 커버리지 매트릭스에서 이 인물의 현재 상태(기존 원고 수, 기존 형식 분포)를 간략히 메모합니다.

결정 4: 소재

라이브러리 표제(배경/소재/인물/사건/사물/장소) 중 어느 표제에서 출발한 소재인지, 소재가 무엇인지를 한 줄로 씁니다. "장소 표제. 연습실 복도에서 다른 팀 멤버와의 짧은 조우." 간결하게.

결정 5: 판돈

외부 판돈과 내부 판돈을 각각 씁니다. 외부 판돈: "이 조우에서 좋은 첫인상을 주느냐 못 주느냐(명백한 사건은 없음)." 내부 판돈: "처음 보는 세계에서 자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판돈이 너무 약하다고 느껴지면 소재를 재검토합니다. 판돈이 없는 소재는 원고가 되기 어렵습니다.

결정 6: 시점

화자의 위치와 심리 거리를 정합니다. "3인칭 제한, 강명숙의 시점. 심리 거리는 가깝게. 내면 독백 허용." 또는 "만담형이므로 시점은 대화로 처리, 지문은 최소."

결정 7: Fun Engine

다섯 가지 중 이 원고에서 주로 작동할 Fun Engine을 선택합니다. 하나 또는 두 개. "버디 다이내믹 + 역설의 미학. 두 인물의 불균형한 조합 자체가 에너지이고, 강명숙이 예상 외의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역설."

결정 8: 세계관 신호 계획

A 기준을 충족할 도입부의 세계관 신호를 미리 계획합니다. "첫 두 문단에 케이팝K 내부 호칭 체계 또는 연습실 복도의 특정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결정 9: 신체 앵커 계획

B 기준을 충족할 주요 신체 앵커를 미리 선택합니다. Vault의 인물 신체 기록을 참조합니다. "강명숙의 긴장 신호: 왼손 엄지손톱 뜯기. 도입부 또는 전환점에서 한 번."

결정 10: 착지 방향

E 기준의 착지 유형과 방향을 미리 설정합니다. "정지 착지. 조우가 끝난 후 강명숙이 혼자 서 있는 복도 장면. 마지막 문장은 신체 앵커로." 착지를 미리 알면 그것을 향해 원고를 쓸 수 있습니다.


설계서 템플릿

실제로 사용하는 설계서 형식입니다.

## 설계서 - [원고 제목 또는 임시 코드]
작성일: YYYY-MM-DD

### 결정 1. 형식 선택
형식: [ 단편소설 / 꽁트 / 만담형 / 4컷 ]  
이유: 

### 결정 2. 분량 목표
약 [  ]자

### 결정 3. 주인공
이름: 
Tier: [ 1 / 2 / 3 ]  (1=핵심, 2=중간, 3=배경)
현재 원고 수: 

### 결정 4. 소재
표제 출처: [ 배경 / 소재 / 인물 / 사건 / 사물 / 장소 ]
소재 요약: 

### 결정 5. 판돈
외부:
내부:

### 결정 6. 시점
화자:
심리 거리:

### 결정 7. Fun Engine
주: 
보: (선택)
실행 계획: 

### 결정 8. 세계관 신호 계획
도입부 계획: 

### 결정 9. 신체 앵커 계획
인물 고유 앵커:
배치 계획 (도입/전환/착지):

### 결정 10. 착지 방향
유형: [ 정지 / 행동 / 대화 ]
착지 방향:
마지막 문장 아이디어:

### Vault 확인 (집필 전 체크리스트)
확인 항목: [ 배경 / 소재 / 인물 / 사건 / 사물 / 장소 ]
새로 추가할 Vault 항목 예상: 

이 템플릿을 전부 채우는 데 20분이 넘으면 안 됩니다. 각 항목은 한 두 줄이면 충분합니다. 설계서는 메모이지 논문이 아닙니다.


설계서에서 원고로

설계서가 완성되면 원고를 씁니다. 설계서를 열어 두고 집필합니다. 집필 중에 설계서를 참조합니다.

집필의 흐름은 세 단계입니다.

1단계. 도입부 (전체의 약 15~20%).

A 기준(세계관 신호)와 B 기준(신체 앵커)의 첫 번째 설치. 형식에 따라 단편소설은 첫 두 문단, 꽁트는 첫 세 문장, 만담형은 첫 세 교환, 4컷은 컷1에서 이 두 가지를 확보합니다.

도입부에서 판돈의 씨앗도 심습니다. 외부 판돈의 존재를 독자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합니다.

2단계. 전개부 (전체의 약 65~70%).

Fun Engine이 작동하는 구간입니다. 선택한 Fun Engine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전환점에서 신체 앵커를 배치합니다. 인물의 내면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몸의 변화로 드러냅니다.

F 기준(숫자 장면화)은 전개부에서 자연스럽게 배치됩니다. 세계관의 수치나 규모를 감각화하는 세부를 전개부 중간에 넣습니다.

3단계. 착지부 (전체의 약 10~15%).

E 기준을 충족하는 착지. 설계서에서 계획한 착지 유형을 실행합니다.

마지막 신체 앵커(B 기준)와 착지(E 기준)를 동시에 충족하는 마지막 장면 또는 문장.

D 기준(화자 이름): 원고 전체에서 주인공 이름이 최소 한 번 명시됐는지 확인합니다.


집필 중에 설계서를 바꿔도 되는가

집필하다 보면 설계서와 다르게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허용합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MUST PASS 기준(B, E)은 변경 불가입니다. 집필 중에 신체 앵커를 없애거나 착지를 포기하면 안 됩니다. "B와 E 기준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금지입니다.

나머지 항목은 변경 가능합니다. 형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Fun Engine을 교체할 수 있습니다. 착지 유형(정지/행동/대화)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단, "착지 유형을 변경"하는 것과 "E 기준을 포기"하는 것은 다릅니다. 유형이 바뀌어도 착지 자체는 있어야 합니다. 단, 변경 이유를 설계서에 메모합니다. "전개 중에 버디 다이내믹이 아닌 역설의 미학이 더 자연스럽게 나왔음. Fun Engine을 교체."

이 메모가 있으면 나중에 원고를 검토할 때 그 결정이 임의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계서와 QA의 관계

원고를 완성한 후 QA(품질 점검)를 합니다. 6대 품질 기준 각각을 체크합니다. 이때 설계서가 기준점이 됩니다.

설계서에서 계획한 것이 원고에서 실현되었는가. 계획한 세계관 신호가 도입부에 있는가. 계획한 신체 앵커가 설계 위치에서 작동하는가. 계획한 Fun Engine이 전개부에서 돌아가는가. 계획한 착지 유형이 실행되었는가.

설계서와 원고를 대조하는 QA는 직관적 QA보다 체계적입니다. "왠지 아쉽다"가 아니라 "결정 9에서 정지 착지로 계획했는데 실제 원고는 과잉 설명 엔딩이 됐다. 수정 필요." 이렇게 피드백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QA 결과에서 자주 실패하는 결정이 있으면, 설계 단계에서 그 결정에 더 집중합니다. "매번 착지에서 요약 엔딩이 나온다"면, 결정 9를 작성할 때 더 구체적으로 계획합니다.


케이팝K 사례: 설계서 작성 시연

강명숙의 꽁트를 쓴다고 합니다. 설계서를 실제로 작성해 봅니다.

결정 1. 형식: 꽁트. 이유: 이 소재는 짧고 강한 아이러니가 핵심.

결정 2. 분량: 약 2,200자.

결정 3. 주인공: 강명숙. Tier 1. 기존 원고 3편(단편소설 2, 만담형 1). 꽁트 처음.

결정 4. 소재: 장소 표제. 팬 사인회장 대기실에서 후배 멤버와 짧은 시간.

결정 5. 판돈: 외부: 없음(명백한 외부 결과 없음). 내부: 7년차 선배로서의 자의식.

결정 6. 시점: 3인칭 강명숙 시점. 심리 거리 가까움.

결정 7. Fun Engine: 역설의 미학. 7년차 선배가 신입에게서 예상 밖의 방향으로 배우거나 무너지는 구조.

결정 8. 세계관 신호: 첫 문장에 팬 사인회 고유 절차 또는 케이팝K 내부 용어 포함.

결정 9. 신체 앵커: 강명숙의 긴장-이완 신호. 도입부에 긴장 신호, 착지에 이완 신호.

결정 10. 착지: 행동 착지. 후배가 떠난 후 강명숙이 하는 아주 작은 행동 하나.

Vault 확인: 강명숙 인물 기록, 사인회장 장소 기록, 후배 멤버 인물 기록.

이 설계서를 완성하는 데 15분이면 됩니다. 이제 꽁트를 씁니다. 설계서가 있으면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할지 알고 있고, 어디에서 끝낼지 알고 있습니다.


10장이 전하는 것

설계서는 집필의 전처리입니다. 전처리를 충분히 하면 집필 자체는 더 빠르고 더 완성도 높게 됩니다. 10가지 결정을 미리 내리고 원고를 쓰면, 집필 중에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로 막히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100편이라는 규모에서 설계서 작성의 습관은 전체 프로젝트의 속도와 품질을 동시에 높입니다. 원고 하나하나를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는 것. 그것이 설계서가 만드는 차이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참조 작가 시스템을 다룹니다. 어떤 작가의 어떤 기술을 어떤 소재에 적용하는가. 외국 작가와 한국 작가의 조합이 어떻게 서로를 보완하는가.


- 본문 / 라이브러리 기반 스토리텔링100 강연고 10회 / 2026-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