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DONG-EUN · 세계관설계자 (15편)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1편.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세계관은 콘텐츠 업계에서 가장 자주 쓰이면서 가장 다르게 이해되는 용어다. 누군가는 작품의 배경을, 누군가는 설정집을, 누군가는 IP 전체를 가리켜 세계관이라 부른다. 이 연재는 세계관을 만드는 일을 직업의 기술로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출발점은 하나의 질문이다: 세계관은 스토리와 무엇이 다른가. 1편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용어의 뿌리와 이웃 개념들을 확정한다. 여기서 확정된 단어들은 이후 열네 편에서 다시 설명하지 않고 그대로 쓴다.
1. 세계관의 정의: 가지 않은 길, 열지 않은 문
세계관은 가지 않은 길, 열지 않은 문에 대한 설명이다. 스토리가 비춰주지 않은 곳에 대한 자료이며, 멋진 스토리가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곳에 대한 기록이다. 흥미롭게 본 영화나 드라마를 떠올리면 정의가 선명해진다. 주인공이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궁금할 수 있다. 엑스트라인 정비공의 삶이 궁금할 수 있고, 저 조직원들은 다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화면 구석의 풍경은 어떤 곳인지 더 보고 싶을 수 있다. 스토리는 이 질문들에 답하지 않는다. 답할 의무도 없다. 스토리의 임무는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관은 이 질문들에 답하는 자료의 총체다. 가지 않은 길은 주인공의 선택만이 아니다. 등장하지 않은 인물, 언급만 된 도시, 지나간 전쟁의 전말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질문이 향할 수 있는 모든 곳이 세계관의 잠재 범위다. 그래서 세계관은 화면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세계관은 스토리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법칙과 환경을 담고 있다. 관객은 허무맹랑한 가상의 이야기에서도 일관된 법칙과 일치감을 은연중에 느낀다. 이 감각이 작품의 완성도를 올리고, 화면 밖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설계자에게 이 정의는 작업 범위의 선언이다: 설계자는 카메라가 가지 않는 곳을 만드는 사람이다. 무엇을 비출지는 작가가 정하지만, 비출 수 있는 곳을 마련하는 일은 다른 직무다. 이 연재 전체가 그 직무에 대한 이야기다.
2. Weltanschauung: 철학 용어에서 콘텐츠 용어로
카메라 밖을 가리키는 이 단어의 뿌리는 철학에 있다. 세계관은 독일어 Weltanschauung의 번역어다. Welt는 세계, Anschauung은 관점이다. 철학에서 세계관은 어떤 지식이나 관점을 가지고 세계를 근본적으로 인식하는 방식이나 틀을 뜻한다. 자연에 대한 원리와 함께 주제, 가치, 감정, 윤리까지 포함하는 큰 개념이다. 철학자 딜타이는 세계관을 자연주의, 자유의 관념론, 객관적 관념론의 세 유형으로 나누기도 했다. 콘텐츠 분야는 이 단어를 좁혀서 쓴다. 작품 속 세계에 한정하여, 이 세상은 어디서 왔으며 어떤 역사와 삶을 거쳐왔고 캐릭터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관점이 콘텐츠의 세계관이다. 마법이 있는 세계라면 그 세계는 어떻게 흘러왔고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사는가. 히어로가 있는 세상의 보통 사람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의 체계가 곧 세계관이다. 철학의 세계관이 현실 세계를 향한 틀이라면, 콘텐츠의 세계관은 만들어진 세계를 향한 틀이다. 대상이 다를 뿐 구조는 닮았고, 그래서 번역어의 혼동이 계속된다. 두 용법의 간극을 알아두면 실무에서 소모적인 논쟁을 줄일 수 있다. 철학의 세계관을 기준으로 콘텐츠의 세계관을 비판하는 일도, 그 반대도 서로 다른 단어를 두고 다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연재에서 세계관은 콘텐츠의 용법을 따르며, 상세한 설정의 체계까지 포함하는 넓은 뜻으로 쓴다.
3. 유니버스: 스토리를 품은 시공간
콘텐츠의 세계관과 거의 같은 자리에서 쓰이는 말이 유니버스universe다. 유니버스는 스토리를 품은 곳이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스타워즈 같은 대작들은 각자의 유니버스를 가진 것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유니버스는 대작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떤 이야기든 그 이야기가 벌어지는 시공간을 가지며, 그 시공간이 곧 그 작품의 유니버스다. 업계에서는 세계관, 유니버스, 세계, 월드 같은 말들이 뒤섞여 쓰인다. 영어권에서는 용도에 따라 worldview, campaign setting, universe, canon, fanon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worldview는 인식의 틀에, universe는 시공간 그 자체에 무게가 실린 말이다. 이 구분은 알아둘 가치가 있지만, 실무에서 매번 가려 쓰기는 어렵다. 나는 세계관과 유니버스를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시공간으로서의 세계와 그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은 실무에서 한 덩어리로 다뤄지기 때문이다. 세계를 만들면 관점이 생기고, 관점을 정리하면 세계가 구체화된다. 계약서와 기획서에서 어느 단어를 쓸지는 조직마다 다르지만, 한 문서 안에서는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안전하다. 단어가 오가는 문서일수록 정의 조항이 필요하다. 이 연재에서도 두 단어를 구분 없이 쓴다. 다만 뒤에 나올 캐넌과 파논은 유니버스와 지위가 다른 개념이므로 섞어 쓰지 않는다. 유니버스가 장소라면 캐넌은 그 장소에 대한 공인된 기록이다.
4. 스토리와 세계관의 전도 관계
유니버스와 스토리의 관계에는 방향이 있다. 보통의 스토리에서 시공간은 사건을 위해 존재한다. 결투 장면을 위해 부두가 등장하고, 이별 장면을 위해 공항이 등장한다. 사건이 주인이고 시공간이 종이다. 세계관은 거꾸로다. 세계관은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시공간에 대한 내용이다. 부두가 먼저 있고, 그 부두의 물류와 이권과 조직이 있고, 그래서 그곳에서 결투가 일어날 수 있다. 시공간이 주인이고 사건은 그 위에서 발생하는 결과다. 전도는 서술의 분량에서도 드러난다. 스토리는 부두를 한 문장으로 소비하지만, 세계관은 부두의 조수 시간표까지 적을 수 있다. 무엇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두 작업은 정반대로 답하고, 이 답이 문서의 목차까지 바꾼다. 이 주종의 역전이 두 작업의 방향을 가른다. 작가는 사건에 필요한 만큼만 배경을 소환한다. 필요 없는 배경은 쓰지 않는 것이 좋은 작법이다. 설계자는 반대로 사건이 아직 없는 시간과 장소까지 만든다. 지금 어떤 사건에도 쓰이지 않는 부두의 창고 목록이 설계자에게는 정당한 작업물이다. 같은 재료를 다뤄도 주종 관계가 다르면 다른 직무다. 이 방향의 차이를 모르면 두 직무는 서로를 오해한다. 작가의 눈에 설계자는 쓸데없는 것을 만드는 사람으로 보이고, 설계자의 눈에 작가는 세계를 소모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둘 다 틀렸다. 방향이 다른 것이지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다. 두 방향이 만나는 지점에서 작품이 나온다.
5. 배경설정과 세계관: 종속된 그릇과 탄생의 기반
방향의 차이는 배경설정과 세계관의 차이로 이어진다. 스토리 창작에서 배경설정은 이야기를 이루는 사건의 배경에 한정된다. 이야기에 종속되어, 이야기라는 무형의 것이 담기는 그릇의 역할을 한다. 그릇은 내용물에 맞춰 준비된다. 이야기가 끝나면 그릇의 역할도 끝난다. 세계관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지지만 지위가 다르다. 세계관은 이야기에 종속되지 않고, 오히려 이야기 또는 새로운 시나리오가 탄생하는 기반이 된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도 세계관은 남아 다음 이야기를 받칠 수 있다. 그릇은 소모품이고 기반은 자산이라는 차이다. 회계에 견주면 배경설정은 비용으로 처리되고 세계관은 상각되며 남는 자산이다. 투자와 관리의 기준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둘은 본디 같은 것이다. 어떤 작품의 배경설정을 모아 정리하고 확장하면 세계관이 되고, 세계관에서 한 이야기에 필요한 부분만 잘라내면 배경설정이 된다. 그래서 두 단어는 자주 혼용되고, 혼용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지위를 혼동할 때 생긴다. 배경설정만 있는 작품에 세계관 확장을 요구하면 기반 없이 증축하는 일이 되고, 세계관이 있는 작품을 배경설정 수준으로 관리하면 기반을 방치하는 일이 된다. 지금 다루는 문서가 그릇인지 기반인지를 판별하는 것이 관리의 첫 단계다. 판별 기준은 간단하다: 이 문서로 다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가. 시작할 수 있다면 기반이고, 이 이야기의 이해에만 쓰인다면 그릇이다.
6. 캐넌Canon과 파논Fanon
기반이 되는 문서에는 공인이 필요하다. 캐넌canon은 공식으로 인정된 설정, 곧 세계의 정본이다. 원래 종교의 정경을 뜻하는 말이었고, 셜록 홈즈 팬들이 코난 도일이 직접 쓴 작품들을 캐넌이라 부르면서 콘텐츠 용어가 됐다. 파논fanon은 팬fan과 캐넌canon의 합성어로, 팬덤이 널리 합의한 비공식 설정을 뜻한다. 공식 문서 어디에도 없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사실처럼 통용되는 설정들이 파논이다. 둘의 관계에는 구조가 있다. 캐넌은 권리자의 배타적 결정권 위에 서고, 파논은 캐넌이 답하지 않은 공백에서 자란다. 캐넌이 촘촘할수록 파논의 자리는 줄고, 캐넌이 성길수록 파논은 풍성해진다. 다만 성긴 캐넌은 파논끼리의 충돌도 함께 키운다. 어느 파논이 맞는지 판정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판정 근거의 제공이 캐넌의 실질적인 기능이다. 파논이 공식 작품에 채택되어 캐넌으로 승격되는 일도 있고, 새 캐넌이 기존 파논을 부정해 팬덤과 충돌하는 일도 있다. 승격도 충돌도 세계가 살아 있다는 신호다. 죽은 세계에는 파논이 자라지 않는다. 설계자는 이 구조의 관리자다. 캐넌의 등재와 개정을 통제하는 동시에, 파논을 관찰해 세계에 대한 수요를 읽는다. 파논이 몰리는 자리는 팬들이 이야기를 원하는 자리다. 그래서 공백은 실패가 아니라 설계의 대상이다. 어디를 채우고 어디를 비워둘 것인가. 이 질문은 연재 후반의 방법론에서 다시 다룬다.
7. 캠페인 세팅: TRPG가 먼저 정리한 개념
캐넌을 문서 상품으로 먼저 완성한 분야가 있다. 테이블탑 롤플레잉 게임TRPG이다. TRPG는 진행자와 참가자들이 규칙과 주사위로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놀이이며, 여러 회에 걸쳐 이어지는 플레이 묶음을 캠페인campaign이라 부른다. 캠페인 세팅campaign setting은 그 캠페인들이 벌어지는 세계의 자료집이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의 포가튼 렐름 같은 세팅집에는 지리, 국가, 종족, 신앙, 역사, 경제가 정리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문서가 특정 스토리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진행자가 어떤 모험을 굴려도 견디도록 만들어진, 스토리 없이 세계만 담은 상품이다. 그리고 이 상품은 수십 년째 시장에서 팔린다. 세계관 작업이 막연한 창작이 아니라 규격을 가진 산출물이 될 수 있다는 증거가 여기에 이미 있다. 세팅집에는 목차가 있고, 항목의 형식이 있고, 판본의 개정 이력이 있다. 누가 써도 참조할 수 있게 만들어진 문서 규격이다. 규격의 힘은 교체 가능성에 있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세계는 이어진다. 감으로 쥐고 있는 세계는 담당자와 함께 사라지고, 세팅집은 그 위험을 규격으로 막은 사례다. 이 연재가 지향하는 산출물의 원형도 캠페인 세팅에 가깝다. 다만 TRPG 밖의 매체들은 각자 다른 요구를 가지므로, 그 규격을 그대로 가져오는 대신 원리를 가져온다. 원리는 셋이다: 스토리로부터의 독립, 항목의 규격화, 개정 이력의 관리.
8. 본말전도: 낭비와 사치와 불필요함이 필수인 작업
세팅집의 두께가 말해주는 사실이 하나 있다. 세계관 작업은 본말이 뒤집힌 작업이라는 점이다. 이야기는 스스로를 뼈대와 목적으로 삼아 설정setting을 필요한 만큼, 과하지 않게 사용한다. 좋은 작가일수록 설정을 아껴 쓴다. 세계관은 반대로 아직 사용되지 않은 것들을 만든다. 목적이 불분명하고 범위도 명확하지 않은 채, 매우 폭넓은 분야를 디테일하게 다루게 된다. 이야기에서 한 줄 스쳐 지나가는 백동화 한 닢에, 그 가치와 제조와 유통에 대한 몇 배 분량의 디테일이 붙는다. 화폐를 파면 광산이 나오고, 광산을 파면 노동과 세금이 나온다. 한 개의 사물이 산업과 제도를 연쇄적으로 소환하는 것이고, 이 연쇄가 세계에 밀도를 만든다. 이 본말전도를 통해 세계관은 스스로 점차 구체화되고 범위를 넓혀간다. 여기서 판별 기준 하나가 나온다. 만일 필요한 만큼의 세계관만 정확하게 요구된다면, 그 일은 세계관 작업이 아니라 자료조사와 세팅 작업이다. 세계관은 낭비와 사치와 불필요함을 필수요소로 가진다. 지금 안 쓰는 창고 목록이 다음 작품의 무대가 되고, 버려질 뻔한 디테일이 팬덤의 놀이터가 된다. 낭비가 회수되는 시점은 예측할 수 없지만, 회수될 자리를 만들어둘 수는 있다. 그러므로 설계자는 낭비를 변명하지 않아야 한다. 대신 낭비를 관리해야 한다. 어디까지 낭비할지를 정하는 기술이 뒤에서 다룰 방법론의 핵심이다.
9. 설정놀음Conworlding과 세계화World-building
낭비를 관리하지 못한 작업에는 이미 이름이 붙어 있다. 설정놀음이다. 영어권에는 가상 세계를 구축하는 취미를 가리키는 콘월딩conworlding이라는 말이 있고, 같은 활동의 격식 있는 이름으로 월드빌딩world-building, 우리말로 세계화가 있다. 놀음이라는 접미어에는 자조와 폄하가 섞여 있다. 쓰이지 않을 설정을 끝없이 쌓는 일, 이야기 없이 지도와 연표만 자라는 일에 대한 경계다. 그 경계는 정당하다. 다만 이 단계는 부끄러운 일탈이 아니라 필연적인 과도기다. 게임 시나리오 기획자와 월드 크리에이터들이 늘 하던 일이 게임 바깥으로 확장되는 중이고, 확장기의 작업은 어디서나 놀음처럼 보인다. 새 직무는 언제나 기존 직무의 취미처럼 보이는 시기를 지난다. 게임 기획이 그랬고 UX 디자인이 그랬다. 명칭이 정리되지 않은 분야에는 직무 기술서도 없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어느 회사에서는 시나리오 기획자, 어느 회사에서는 세계관 담당자, 어느 팀에서는 그냥 설정 잘 아는 사람으로 불린다. 호칭이 다르면 업무 범위와 평가 기준도 제각각이 된다. 채용 공고를 쓸 수 없는 직무는 조직에 자리를 얻지 못하고, 자리가 없으면 후임도 없다. 그래서 용어의 위계를 세우는 일이 직업화의 첫 단추다. 놀음과 작업을 가르는 기준은 앞에서 이미 나왔다: 산출물이 다음 이야기의 기반이 되는가, 그리고 그 낭비가 관리되고 있는가.
10. CT화: 문화기술이 되어야 하는 이유
놀음이 직업이 되려면 기술이 되어야 한다.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은 콘텐츠 제작의 노하우를 재현 가능한 기술로 정리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리로 치면 손맛을 레시피로 옮기는 일이다. 개인의 감에 있던 것을 절차와 규격으로 옮겨, 다른 사람이 배우고 반복할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다. 세계관의 중요성은 이제 투자의 중요 요소가 될 만큼 커졌다. 그러나 중요하니까 많은 돈과 인력을 들여야 한다는 말로는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중요하다는 주장과 일을 맡길 수 있다는 신뢰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신뢰는 산출물에서 나온다. 말로 설명되는 전문성은 검증할 수 없지만, 문서로 제출되는 전문성은 검증할 수 있다. 검증할 수 있어야 값을 매길 수 있다. 좋든 싫든 유니버스 디자이너의 역할을 맡게 됐다면, 지금은 전달 가능한 산출물의 형태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전달 가능하다는 것은 받은 사람이 검색하고 인용하고 검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산출물이 쌓여야 작업의 견적이 나오고, 견적이 나와야 직무가 정규화된다. 견적이 있어야 발주가 있고, 발주가 있어야 시장이 선다. 저작물IP을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하는 흐름 속에서 세계관 작업이라는 업무는 이미 생겨나고 있다. 그 업무를 지휘할 유니버스 디자이너가 전문직업으로 서려면, 세계관 작업의 특징들이 문화기술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앞서 해본 사람의 시행착오를 공유해 디딤돌을 놓는 것, 그것이 이 연재의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