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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DONG-EUN · FTUE 최초 사용자 경험

01 게임은 안멋져

김동은WhtDrgon. · Chapter 1

1장. 게임은 안 멋져

친구가 휴대폰을 내밀며 말한다. "이 게임 진짜 재밌어, 한번 봐봐."

화면을 본 당신의 첫마디는 무엇일까? 십중팔구 이것이다. "아… 이거 그 게임이랑 비슷하네." 친구는 분명 재밌다는데, 당신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흥미가 식는다. 화면을 더 넘겨보지도 않는다.

"어느 날부터 게임은 안 멋져." 이 말을 들으면 우리는 보통 게임을 탓한다. 요즘 게임은 다 비슷하다고, 양산형이라고, 예전 같은 감동이 없다고. 그러나 정말 그럴까. 게임이 못 만들어진 게 맞을까?

사실은 정반대다. 게임은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하고 화려해져서, 20년 전 게임을 지금 다시 켜 보면 픽셀이 큼직하고 조작이 뻑뻑하게 느껴진다. 지금 게임의 그래픽은 영화에 가깝고, 당신 손 안의 휴대폰은 그 시절 슈퍼컴퓨터보다 빠르다. 객관적인 지표로만 보면, 게임은 분명히 더 멋져졌다.

그런데도 안 멋지게 느껴진다. 왜일까?

답은 게임에 있지 않다. 우리 눈에 있다.

게임이 낡은 게 아니라, 사람들의 첫눈이 너무 까다로워진 것처럼 보인다. 왜 '보인다'고 말하는지는 잠시 뒤에 밝힌다.

첫 몇 분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

먼저 이 문제가 왜 중요한지부터 짚자. 주요 앱마켓과 게임 데이터베이스에는, 세는 기준에 따라 수십만에서 수백만 개에 이르는 게임이 쌓여 있다. 사용자가 큰맘 먹고 그 바다에서 내 게임을 골라 설치해도, 상당수는 첫 화면에서 단 몇 분 만에 떠난다. 게임을 지우는 데는 아무 비용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만 헷갈리고 조금만 지루하면, 손가락 두 번이면 사라지고 다른 무료 게임으로 옮겨간다.

다시 말해 몇 달을 공들인 콘텐츠의 운명이 사용자가 처음 마주한 그 몇 분에서 갈린다. 첫 경험은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다. 멋진 보스전도 공들인 스토리도 정교한 성장 시스템도, 첫 경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사용자에게 닿는다. 그 뒤에 준비한 모든 것이 사용자에게 보일 기회를 얻느냐 마느냐는 첫 경험에 달려 있다. 첫 경험이 바로 그 관문이기 때문이다.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콘텐츠는 세상에 없는 것과 같다.

어느 사용자의 첫 2분

한 장면을 따라가 보자. 퇴근길 지하철, 한 손에 휴대폰을 쥔 사람이 방금 본 광고에 끌려 게임을 하나 깔고, 설치가 끝나 앱을 연다. 회사 로고가 뜨고 스킵이 안 되는 인트로 영상이 흐르는 동안, 옆 사람이 보는 숏폼은 그새 세 개가 지나갔다. 영상이 끝나자 '약관에 동의해주세요'가 뜨고, 그다음은 '계정을 만들어주세요'다. 이 사람은 아직 게임을 단 1초도 하지 못했다.

이 2분 동안 그의 엄지손가락은 내내 화면 아래쪽 '뒤로 가기'와 홈 버튼 위를 맴돈다. 우리가 그를 붙잡을 시간은 길어야 몇십 초인데, 그 사이에 그는 '재밌겠다'가 아니라 '귀찮다'를 먼저 배운다. 우리가 준비한 진짜 재미는 이 2분 너머에 있는데, 사용자는 거기까지 가지 못한다. 첫 경험을 설계한다는 건, 바로 이 2분을 사용자의 편으로 돌려세우는 일이다.

닳아버린 눈

그렇다면 사용자는 왜 그렇게 빨리 떠날까. 앱마켓을 한번 열어 '인기 게임' 목록을 위에서 아래로 훑으면 썸네일이 무섭도록 닮아 있다. 한 게임이 흥행하면 비슷한 모방작이 몇 달 안에 수십 개씩 쏟아지기 때문에, 똑같이 생긴 3매치 퍼즐과 비슷한 구도의 방치형 RPG, '?' 모양으로 약 올리는 광고가 줄줄이 이어진다. 그래서 사용자는 새 게임을 봐도 반사적으로 "또 그거네" 하고 넘긴다.

게임 밖으로 나가면 경쟁은 더 치열하다. 오늘 하루 당신이 손가락으로 넘긴 화면을 떠올려보라. 유튜브 썸네일 수십 장, 숏폼 수십 개, SNS 피드, 웹툰 컷, 쇼핑몰 상세페이지. 그 화면 하나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가장 비싼 데이터를 들여 만든 것으로, 오직 한 가지를 노린다. 한눈에 시선을 붙잡는 일이다. 우리는 매일 수백 번 이 '첫인상 폭격'을 통과한다.

그렇게 단련된 눈에는 웬만한 게 다 익숙해 보여서, 새 게임을 켜도 "아, 이거 그거랑 비슷하네"가 먼저 튀어나온다. 아까 서두에서 "첫눈이 까다로워진 것처럼 보인다"고 했는데, 이제 정확히 말할 수 있다. 새로움의 기준이 까다로워진 게 아니라 익숙함의 바다가 넓어진 것이다. 사용자는 당신의 게임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봐버렸다.

그리고 이 바다는 저절로 줄어들지 않는다. 한 게임이 흥행했을 때 그 문법을 따라 만드는 것은 만드는 쪽에서 보면 검증된 수요에 올라타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라, 모방을 게으름이라고 비난해봐야 모방은 멈추지 않는다. 합리적인 선택들이 쌓일수록 익숙함의 바다는 계속 넓어지고, 그 바다에서 첫눈에 띄어야 하는 우리의 문제는 누가 대신 풀어주지 않는다.

여기서 이 책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문장이 나온다.

우리를 방해하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익숙함이다.

그리고 우리도 그 병을 앓는다

더 까다로운 사실이 있다. 이 익숙함의 병을 사용자만 앓는 게 아니라, 만드는 우리도 똑같이 앓는다. 매일 들여다본 우리는 첫 화면에서 아무것도 낯설게 느끼지 못해서, 저 작은 아이콘이 무슨 뜻인지 저 버튼을 왜 눌러야 하는지가 우리에겐 너무 당연하다. 우리는 이미 게임의 모든 규칙과 재미를 알기 때문에, 그것을 모르는 채로 첫 화면을 보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만든 사람은 자기 게임의 첫인상을 결코 처음으로 볼 수 없다. 이 불편한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모든 첫 경험 설계가 출발한다. 그 병이 정확히 어디서 우리 눈을 가리는지는 잠시 뒤, 네 개의 메커니즘으로 하나씩 분해한다.

게임은 이제 '뉴콘텐츠'다

그래서 이 책은 게임을 조금 다르게 부른다. 더 이상 고립된 '게임'이 아니라, 뉴콘텐츠라고. 사용자가 게임에 쓰는 시간은 진공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그 시간은 유튜브를 볼 수도, 숏폼을 넘길 수도, 웹툰을 읽을 수도 있었던 시간이다. 우리 게임의 진짜 경쟁자는 같은 장르의 다른 게임만이 아니라 사용자의 엄지손가락을 두고 다투는 모든 콘텐츠다.

이 사실은 첫 경험의 규칙을 통째로 바꾼다. 사용자는 우리 게임의 첫 화면을 '게임의 기준'이 아니라 '방금 보던 콘텐츠의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숏폼만큼 빨라야 하고, 유튜브만큼 한눈에 들어와야 하며, 웹툰만큼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한다. 게임을 게임으로만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사용자가 실제로 손에 들고 오는 잣대를 놓치고 만다. 이 책의 제목에 '뉴콘텐츠'라는 말이 들어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따라온다. 이 책이 붙잡으려는 사람은 '게이머'가 아니다. 게이머는 자원을 관리하고 어려운 관문을 넘고 목표를 향해 최적의 수를 두는 일에 기꺼이 시간을 쓰는 사람이라, 첫 화면이 조금 불친절해도 어차피 파고들 테니 괜찮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 우리가 정작 점유해야 할 사람은 엔터테인먼트에 더 가까운 일반인인데, 그는 "게임을 하겠다"는 각오로 오는 게 아니라 지하철 한 정거장, 엘리베이터, 커피가 나오는 그 2분을 채울 무언가를 찾다가 흘러들어올 뿐이다.

그래서 일반인은 첫 화면에서 깊이를 묻지 않는다. 그 2분짜리 장면에 대입해보면 그가 따지는 것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지금 바로 시작되나? 3분 안에 한 번은 끝나나? 과금 안 해도 되나?" 이 물음들을 통과하지 못하면, 우리가 빌린 그 2분은 곧장 숏폼에게 되돌아간다. 첫 경험을 설계한다는 건, 게이머를 더 깊이 만족시키는 일이 아니라 일반인의 2분을, 다른 콘텐츠와 다퉈 빼앗아 오는 일이다.

여기서 이 책의 적용 범위를 분명히 해두자. 이 책은 대중 확장을 노리는 게임, 그러니까 게이머 바깥의 사람을 데려와야 하는 뉴콘텐츠를 위한 책이다. 처음부터 코어 게이머만을 노리는 게임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그런 게임에서는 장르 관습이 부담이 아니라 입장권이고, 불친절함이 결함이 아니라 정체성일 수 있으니, 이 책의 처방 일부는 뒤집어 읽어야 한다. 게이머와 일반인이라는 이분법도 임시 가설일 뿐이라, 6장과 7장에서 여러 겹으로 다시 쪼갠다.

그래서 이 책은 일부러 낯설게 쓴다

익숙해서 더 이상 안 보이게 된 것을, 일부러 멈춰 세우고 처음 보는 것처럼 다시 묻는 일. 이것을 낯설게하기라고 한다. 좋은 기획자는 신규 유저를 한 명 데려와 게임을 처음 켜게 하고, 아무 도움도 주지 않은 채 그저 지켜보며 어디서 손가락이 멈칫하는지, 어디서 "이게 뭐지?" 하고 미간을 찌푸리는지를 살핀다. 처음 보는 사람의 눈을 빌려, 우리가 잃어버린 '처음'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이 책은 종이 위에서 그 작업을 한다. 매번 사용자를 옆에 앉힐 수는 없으니, 대신 우리가 매일 쓰면서 다 안다고 착각하는 세 단어를 처음 보는 것처럼 다시 묻는다.

  • 사용자란 누구인가? 정말 한 명인가?
  • 경험이란 무엇인가? 버튼을 누르는 것이 경험인가?
  • 최초란 무엇인가? 첫 순간은 한 번뿐인가?

이 세 단어는 'FTUE(First-Time User Experience, 최초 사용자 경험)'라는 말 안에 숨어 있다. 우리는 이 말을 너무 자주 써서 다 안다고 느낀다. 이 책은 그 착각을 한 겹씩 벗기고, 벗긴 자리마다 당신이 직접 쓸 수 있는 도구를 놓는다.

그런데 낯설게 되물을 것은 단어만이 아니다. 튜토리얼, 퀘스트, 보상, 레벨, 인벤토리 같은 말은 게이머에겐 숨 쉬듯 당연한 상식이지만, 일반인에겐 약속해준 적 없는 낯선 기호일 뿐이다. 노란 느낌표가 '여기 할 일이 있다'는 뜻이라고 아무도 가르쳐준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은 'FTUE'라는 용어만이 아니라, 게임이 오래 물려받은 장르 상식 그 자체까지 처음 보는 눈으로 해체한다. 매 장은 자기 주제에 걸린 게임 관습 한두 개를 골라, "이건 누구나 아는 약속인가, 아니면 게이머만 아는 약속인가"를 다시 묻는다.

이 책을 덮을 때, 당신이 갖게 될 것

막연한 다짐은 설계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은 막연함을 하나씩 손에 잡히는 것으로 바꾼다. 끝까지 따라오면 당신은 이런 것들을 갖게 된다. 한 명인 줄 알았던 '사용자'를 여러 겹의 정체성으로 분해한 지도, 우리 세계로 누구를 데려올지 표시한 이민 지도, 사용자가 처음 만나는 100개의 첫인상 목록, 그리고 그 모든 결정을 '무엇을 높일 것인가' 하나로 묶은 계기판. 막연함이 목록이 되고, 목록이 설계가 된다. 그것이 이 책의 전부다.

이 책을 읽는 법

본문은 읽는 글이다. 복잡한 표나 체크리스트, 빈칸을 채우는 워크시트는 본문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책 뒤(부록)에 따로 모았다. 당신이 본문에서 할 일은 단 하나, 각 장 끝의 **「설계 노트」**를 채우는 것뿐이다. 한 장씩 차근차근 채우다 보면, 마지막 장에 이르러 그 칸들이 차곡차곡 모여 당신만의 FTUE 설계서가 된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은 정답표가 아니다. 당신의 게임에 맞는 답은 당신만 안다. 이 책이 주는 것은 답이 아니라 빠뜨리지 않고 차근차근 밟아갈 순서다.

그러니 이렇게 정리하고 시작하자. 게임이 안 멋져진 게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첫 경험이 그만큼 어려워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초보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너무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 어떤 경험을 처음으로 만들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문제 제기다. 이제 그 적, 익숙함이 어떻게 우리 눈을 가리는지 메커니즘으로 쪼갠다.

먼저 한 가지를 더 분명히 해두자. 무지와 익숙함 중에 무엇이 더 위험할까? 직관적으로는 모르면 못 하니 무지가 더 위험해 보이지만, 첫 경험을 설계하는 입장에서는 정반대다. 무지는 차라리 다루기 쉽다. 모르는 사람은 배우려 하기 때문이다. 설명하면 듣고, 막히면 묻고, 천천히 따라온다.

정말 까다로운 상대는 이미 안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그는 배우려 하지 않으니, 학원에 처음 온 학생이 아니라 팔짱 끼고 "어디 한번 보자" 하는 사람에 가깝다. 한눈에 "아, 이거 알아"라고 판단하고, 그 판단이 틀려도 두 번 다시 보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의 게임 앞에 선 사람은 대부분 이쪽이다. 그 익숙함이 정확히 어디서 우리 눈을 가리는지, 네 개의 메커니즘으로 하나씩 분해한다.

메커니즘 1. 전문가의 저주: 우리에게 당연한 것이 사용자에겐 안 보인다

게임 개발 현장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큰 게임 회사일수록 출시 전에 굳이 외부 신규 유저를 불러 '플레이테스트'를 하는데, 그 자리에서 개발자에게는 '누가 봐도 당연한' 시작 버튼이나 다음 단계 표시를 처음 온 테스터가 끝내 못 찾고 헤맨다. 개발자는 모니터 뒤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저기, 화면 한가운데 저렇게 큰 버튼이 있는데 왜 못 보지?" 하지만 테스터에게 그것은 수많은 그래픽 중 하나일 뿐이다. 개발자에게만 그것이 또렷한 '버튼'으로 보인다. 그가 그 버튼을 수천 번 눌러봤기 때문이다. 내부 사람의 눈으로는 첫인상을 결코 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회사는 굳이 처음 보는 눈을 빌려온다.

이것을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라고 부른다. 한번 알아버리면, 모르는 상태가 어떤 느낌인지 상상할 수 없게 되는 현상이다. (한 심리학 실험에서, 머릿속 노래의 리듬을 손가락으로 두드려 들려준 사람들은 듣는 이의 절반쯤이 곡을 맞힐 거라 예상했지만 실제 정답률은 2.5%에 그쳤다. 내 머릿속의 노래는 남에게 그저 불규칙한 두드림으로만 전달된다.)

게임을 만드는 우리가 정확히 이 상태다. 우리 머릿속에는 게임 전체가 완성되어 흐르고 있어서 첫 화면의 작은 아이콘 하나도 우리에겐 또렷한 의미지만, 처음 켠 사용자에게 그것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일 뿐이다. 기억하자. 만든 사람은 자기 게임의 첫인상을 결코 처음으로 볼 수 없다.

메커니즘 2. 보이지 않는 디자인: 잘 될수록 안 보인다

게임을 하다 메뉴가 어디 있는지 한참 헤맸던 기억, 아이콘이 무슨 기능인지 몰라 일단 이것저것 눌러봤던 기억. 이런 건 누구나 바로 알아챈다. 나쁜 디자인은 우리를 짜증나게 하므로 금방 눈에 띈다.

그런데 정말 잘 만든 디자인은 정반대다. 좋은 디자인은 스스로 주목을 끌지 않으면서 우리를 돕는다. 디자이너 도널드 노먼이 말한 결도 이와 같다. 잘 만든 문은 우리가 "밀까, 당길까"를 고민조차 하지 않게 하는데, 너무 자연스러워서 문이 거기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토스나 카카오로 친구에게 돈을 보낼 때를 떠올려보라. 너무 쉬워서 막상 "왜 이렇게 쉽지?"를 설명하라고 하면 말문이 막힌다. 매끄러웠기 때문에, 그 매끄러움을 만든 수많은 설계 결정이 우리 눈에 하나도 안 보였다.

게임에서도 똑같다. 우리가 '명작'이라 부르는 게임의 첫 튜토리얼은 대개 튜토리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슈퍼마리오의 첫 화면에는 '오른쪽으로 가시오'라는 안내문이 없는데도, 마리오가 화면 왼쪽 끝에 서 있고 오른쪽의 빈 공간과 블록, 곧 만나게 될 적과 보상이 사용자를 오른쪽으로 이끈다. 플레이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가는데, 화면 구성 자체가 말없이 길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잘 만든 가르침은 가르치는 티가 나지 않아서, 우리는 그 첫 화면을 보고도 "여긴 별 설계가 없네" 하고 무심히 지나친다. 정작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부분을 말이다.

여기서 첫 경험 설계자가 마주하는 역설이 나온다. 잘 된 FTUE일수록 분석하기 어렵다. 우리가 사랑하는 게임의 첫 5분을 떠올려보면 무엇이 그렇게 좋았는지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데, 좋았기 때문에 안 보인 것이다. 그러니 좋은 첫 경험을 베끼려고 그 게임을 백 번 켜봐야 정작 중요한 건 안 보이고, 우리는 평소 매끄럽게 지나가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멈춰 세워야만 한다. 이 책이 굳이 '낯설게하기'를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메커니즘 3. 사용자는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

세 번째와 네 번째가 이 장의 결론을 만든다. 먼저 세 번째. 한때 게임은 오락실에 가야, 콘솔을 사야, PC방에 가야 만날 수 있는 고립된 매체였다. 그 시절 게임의 첫 화면은 세계로 들어가는 거의 유일한 입구였고, 비교할 다른 화면이 별로 없었으니 사용자는 그 앞에서 비교적 빈손이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게임은 더 이상 고립된 매체가 아니다. 사용자는 당신의 게임을 켜기 직전까지 유튜브의 빠른 컷 편집, 숏폼의 즉시성, SNS의 좋아요, 웹툰의 세로 스크롤, 쇼핑몰의 비교와 후기, 그리고 수십 개의 다른 게임을 통과해 왔다. 그가 가진 이 모든 경험이 당신의 첫 화면을 미리 판단한다.

이것을 이 책은 뉴콘텐츠 상대성이라고 부른다. 당신의 게임은 진공 속에서 평가되지 않는다. 사용자가 방금 떠나온 다른 매체들과 나란히 놓여 비교된다. 구체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

  • 로딩이 3초만 걸려도 사용자는 답답해한다. 틱톡은 손가락을 떼는 순간 다음 영상이 나오기 때문이다.
  • 시작하자마자 뜨는 회원가입 화면은, 쇼핑몰 결제창처럼 차갑게 평가된다. "굳이 가입까지 해야 해?"
  • 스킵 안 되는 30초짜리 인트로 영상은, 숏폼에 길든 눈에 30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익숙함에는 반가운 뒷면도 있다. 그것은 공짜로 빌려 쓸 수 있는 자산이기도 하다. 사용자가 이미 아는 ▶ 재생 버튼, '당겨서 새로고침', 하트 모양 좋아요를 그대로 가져다 쓰면, 우리는 그걸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용자가 알아서 안다.

예를 들어 게임 로비에서 화면을 아래로 당겼을 때 새로고침이 되게 해두면, 사용자는 단 한 줄의 설명도 없이 그 동작을 해낸다. SNS와 메일 앱이 이미 그의 손가락에 가르쳐둔 동작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모양 하나가 설명 한 단락을 통째로 대신하는 이 솜씨는, 5장에서 도감 화면 사례로 자세히 해부한다.

게임 밖에도 같은 솜씨가 있다. 듀오링고는 언어 학습 앱이면서도 회원가입을 맨 앞에 세우지 않는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데, 앱을 열면 가입창 대신 짧은 첫 문제부터 풀게 하고 계정 만들기는 사용자가 한 번 맛을 본 뒤로 미룬다. 시작 비용을 뒤로 미루고 첫 재미를 앞으로 당기는 이 순서가, 처음 온 사람의 손가락을 붙잡는다. 게임의 첫 화면도 똑같은 질문 앞에 선다. 가입과 약관을 앞에 둘 것인가, 첫 재미를 앞에 둘 것인가.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적은 익숙함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채 통과시킨 익숙함이다. 검문을 거쳐 빌리기로 결정한 익숙함은 자산이 되고, 검문 없이 흘러들어온 익숙함은 우리 눈을 가리는 적이 된다. 무엇을 빌리고 무엇을 새로 줄지, 이 결정이 첫 경험 설계의 절반이다. (이 자산을 다루는 법은 5장에서 본격적으로 펼친다.)

메커니즘 4. 장르의 저주: 게임 장르도 익숙함의 감옥이다

지식의 저주는 우리 게임 안에서 한 번 더, '장르의 저주'로 되풀이된다. RPG를 만드는 기획자에게 머리 위 노란 느낌표는 설명이 필요 없는 약속이다. "저기 가서 말 걸면 할 일을 준다"가 한눈에 읽힌다. 하지만 그 약속을 배운 적 없는 일반인에게 느낌표는 광고 배지나 안 읽은 알림처럼 보여서, 누르면 결제창이라도 뜰까 봐 오히려 피한다. 기획자가 '맥락'으로 읽는 퀘스트 마커를 일반인은 '화면의 소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느낌표만이 아니다. 레벨이라는 숫자가 커지면 강해진다는 약속, 인벤토리라는 가방이 어딘가에 있다는 약속, 빨간 물약은 체력이고 파란 물약은 마나라는 약속까지, 게임은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관습의 사전을 통째로 전제하고 첫 화면을 짠다. 이 사전은 게임판 전체가 공유하는 자산이라서 누구도 자기가 그것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는데, 바로 그래서 위험하다. 전문가의 저주가 한 사람의 머릿속 문제라면, 장르의 저주는 업계 전체가 집단으로 앓는 저주라 플레이테스트 한 번으로는 잡히지 않고, 같은 사전을 공유한 동료가 검수해도 걸러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화면 속 한 요소를 멈춰 세울 때마다 "이건 누구나 아는 약속인가, 아니면 게이머만 아는 약속인가"를 함께 묻고, 매 장의 해체 작업에 이 질문을 끼워 넣는다.

▶ 내 화면에 대입하는 세 가지

  1. 이 첫 화면은 게이머의 눈에 멋진가, 일반인의 눈에 읽히는가?
  2. 우리가 익숙함을 멋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3. 처음 본 사람이 3초 안에 "이게 뭔지"를 알아채는가? 셋 다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면, 첫 화면은 아직 만든 사람의 눈으로만 멋지다.

그래서, FTUE는 '첫 조작'이 아니라 '첫 판단'의 설계다

결론은 메커니즘 3과 4가 준다. 사용자는 빈손으로 오지 않으니 첫 판단을 설계해야 하고, 그 손에 들린 것 가운데 게이머만의 사전은 검문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메커니즘 1과 2는 우리가 그 결론을 번번이 놓치는 이유를 설명한다. 우리는 보통 FTUE라고 하면 튜토리얼, 안내 화살표, 손가락 모양 가이드처럼 "처음에 조작을 어떻게 가르칠까"를 떠올린다. 그런데 사용자가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는 조작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판단을 끝낸 상태라는 게 보인다. 그리고 그 판단이 일어나는 순간을 우리는 보지 못한다. 전문가의 저주가 우리 눈을 가리고, 잘 된 설계일수록 눈에 안 띄기 때문이다.

스토어에서 스크린샷 세 장을 넘겨보고는 "노잼이네" 하며 깔지도 않고, 어렵게 설치를 끝냈어도 화려한 첫 화면을 딱 3초 보고는 "복잡해 보이네" 한마디와 함께 그냥 앱을 닫는다. 첫 로딩 화면의 분위기만 보고 "아, 양산형이구나" 판단해버려서, 우리가 공들여 만든 튜토리얼은 시작조차 되지 못한다.

같은 장르의 두 게임을 나란히 떠올려보자. 한쪽은 켜자마자 스킵 안 되는 회사 로고가 뜨고 30초짜리 인트로 영상이 흐른 다음 약관 동의와 회원가입이 기다리는데, 다른 한쪽은 켜는 즉시 캐릭터 한 마리가 화면에 폴짝 나타나 바로 만져볼 수 있다. 두 게임의 본편이 똑같이 재밌더라도, 사용자의 '첫 판단'은 이미 갈렸다. 앞쪽은 판단할 기회를 스스로 30초 뒤로 미뤘지만 그 30초를 사용자가 기다려줄 의무는 없고, 뒤쪽은 그 30초 안에 이미 좋은 인상을 심었다. 첫 판단을 설계한다는 건, 바로 이 30초를 누구의 편으로 만들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다.

실제로 클래시 로얄은 긴 설명보다 초반부터 실전형 전투를 빠르게 맛보게 하는 대표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온보딩 세부는 버전마다 바뀌지만, 규칙을 다 알려주기 전에 재미를 먼저 한 입 주는 방향은 일관된다. 사용자의 첫 판단을 "오, 재밌네" 쪽으로 기울여두는 것이다.

한 가지를 더 짚어두자. 이 첫 판단은 절대평가가 아니라 비교평가다. 사용자는 우리 게임을 그 자체로 채점하는 게 아니라, 방금 보던 것과의 차이로 채점한다. 그렇다면 첫 화면을 다듬기 전에 먼저 정할 것이 하나 있다. 우리 게임이 어떤 콘텐츠 옆에 놓일지를 먼저 정하라. 광고를 숏폼 피드에 태우면 비교 상대는 숏폼이고, 스토어 추천 목록에 놓이면 비교 상대는 옆자리의 다른 게임이며, 친구의 손에 들려 건네지면 비교 상대는 그 친구의 호들갑이다. 비교 상대가 달라지면 같은 첫 화면도 다르게 채점되니, 첫 판단의 설계는 첫 화면 설계 이전에 비교군 설계에서 시작한다. 사용자가 우리에게 도착하기까지의 그 길목은 3장에서 문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난다.

그러므로 FTUE의 핵심은 '첫 조작'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그 앞에서 일어나는 '첫 판단'을 설계하는 일이다.

조작법은 그다음 문제다. 판단이 "별로"로 끝나면, 그 뒤의 모든 설계는 보여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흔한 착각

"우리 게임은 새로우니까 다 설명해야 한다."

새로움은 설명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오히려 설명이 길어질수록 사용자는 "복잡하네"라는, 가장 익숙한 판단으로 빠져버린다. 새로움은 느끼게 하는 것이지 알려주는 것이 아니므로, 빌릴 수 있는 익숙함은 빌려서 설명을 줄이고 정말 새로운 단 한 가지만 또렷하게 느끼게 하라.

참고 콘텐츠

이 장의 개념이 드러나는 다른 매체의 사례.

비디오게임

  •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1-1 : 안내문 없이 화면 배치만으로 사용자를 오른쪽으로 걷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표본이다(배치로 가르치는 솜씨의 상세는 2장 참고 콘텐츠).
  • 하프라이프 : 컷신 없이 트램 탑승 자체를 조작 가능한 도입부로 두어, 카메라를 뺏지 않고 둘러보게 하며 세계를 각인시킨다. 인트로 영상을 강요하는 대신 첫 순간부터 통제권을 쥐여주는 첫 판단 설계를 참조한다.

현실 업무 절차

  • 사용성 테스트 / 플레이테스트 : 내부자 눈으로는 첫인상을 못 본다는 현장 관행. 전문가의 저주에 대한 대응이다.

일반 앱

  • 토스·카카오 간편송금 : 익숙한 패턴을 빌려 첫 진입 마찰을 보이지 않게 지운다.

기계장치 / 가전 UX

  • 노먼의 문(Norman Doors) : 밀까 당길까 고민하게 만드는 나쁜 어포던스. 좋은 설계는 그 고민 자체를 없앤다.

나머지 참고 콘텐츠는 이 글 끝의 '1장 부록'에 모아 두었다(단행본에서는 부록 D로 묶인다).


설계 노트 ▶ 직접 해보기

이 장에서는 설계 노트를 두 칸 채운다. 시선의 방향이 정반대다.

첫째 칸. "내가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 콘텐츠의 10가지."

종이 한 장을 꺼내(또는 부록 A의 빈칸에), 우리 게임에서 "이건 누가 봐도 알겠지" 하고 설명을 생략한 것들을 적어보자. 시작 버튼이 어디 있는지, 캐릭터를 어떻게 고르는지, 첫 화면이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이든 좋으니, 방금 그 방에 들어온 손님(처음 켠 사용자)에게는 하나도 당연하지 않을 수 있는 것 10개를 적어라. 그리고 그 10개 중 게이머 상식에서 온 것(퀘스트 마커, 레벨, 인벤토리처럼 다른 게임을 해봐야 아는 것)에 따로 표시하라. 그게 이 책이 집중해서 해체할 항목이고, 이 목록이 이 책 전체에서 당신이 싸울 상대다.

둘째 칸. "사용자가 우리 게임을 보기도 전에, 다른 데서 이미 익숙해진 것 20가지."

이번엔 시선을 정반대로 뒤집는다. 우리 장르·화면·조작·보상을 두고, 사용자가 유튜브·숏폼·SNS·웹툰·다른 게임에서 이미 '안다고 느끼는' 것들을 적어라. 예를 들어 "세로 스크롤은 웹툰에서 익숙하다", "캐릭터 뽑기는 다른 게임에서 봤다"처럼. 그리고 각 항목 옆에 한 글자만 표시하라. 그대로 빌려 쓸 것은 '빌', 일부러 깨야 할 것은 '깰'. 표시 옆에 한 가지만 더 물어라. "이건 게이머만 아는 약속인가?" 게이머만 아는 것이라면, 일반인에겐 빌려 쓸 익숙함이 아니라 새로 설명해야 할 부담이다. 이 목록이 5장에서 '선행 유사경험 차용표'로 자라난다.

한 줄 요약: 게임이 안 멋져진 게 아니라, 우리 눈이 익숙함에 닳았다. 사용자도, 만드는 우리도. 그 익숙함은 전문가의 저주(만든 우리가 못 본다)·보이지 않는 디자인(잘 된 건 안 보인다)·뉴콘텐츠 상대성(사용자가 빈손이 아니다)·장르의 저주(게이머만의 사전을 모두의 상식으로 착각한다), 이 넷으로 우리 눈을 가린다. 그래서 FTUE는 첫 조작이 아니라 첫 판단의 설계다. 다음 장: 우리가 안다고 가장 착각하는 단어부터 해체한다. "FTUE는 튜토리얼이다"라는 착각, 그리고 FTUE·NUX·OOBE·UX는 어떻게 다른가.


1장 부록: 참고 콘텐츠 모음

이 모음은 1장의 논점, 곧 익숙함이 사용자와 만드는 사람의 눈을 함께 가리고 승부가 첫 조작 이전의 첫 판단에서 갈린다는 이야기를, 게임 바깥의 매체까지 넓혀 확인하는 사례들이다. 비디오게임·보드게임, 영상·콘텐츠, 출판·만화·음악, 모바일·앱·서비스, 오프라인·일상의 다섯 갈래로 묶었다. 본문이 꺼낸 네 가지 메커니즘(전문가의 저주, 보이지 않는 디자인, 뉴콘텐츠 상대성, 장르의 저주)과 '첫 판단의 설계'라는 결론을 옆에 두고, 사례마다 어느 메커니즘의 증거인지 짚으며 읽으면 좋다.

비디오게임·보드게임

  • 포털 : 밸브가 2007년에 내놓은 1인칭 퍼즐 게임으로, 초반 시험실의 연쇄 자체가 튜토리얼이라 규칙을 강요 없이 플레이로 체득시키고, 안내 음성(글라도스)마저 세계관의 일부로 녹아 있다. 살펴볼 점: 가르치는 구간이 본편과 구분되지 않으면 사용자의 첫 판단이 '공부'가 아니라 '재미'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시험실 하나하나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다크 소울 / Getting Over It : 다크 소울(2011)은 첫 보스 데몬을 빈약한 장비로 만나게 두고, 방 왼쪽 문으로 도망쳐 본 무기를 챙긴 뒤 다시 오게 짠다. Getting Over It(2017)은 실수 한 번에 진행을 통째로 잃는 추락을 아예 정체성으로 내건다. 둘 다 '친절한 튜토리얼'이라는 익숙함을 일부러 깨는 반례다. 살펴볼 점: 불친절이 결함이 아니라 입장권이 되는 것은 코어 사용자를 노릴 때라는 본문의 적용 범위 단서와 함께, 어떤 사용자가 이 첫 경험을 도전장으로 읽는지 관찰한다.
  • 메가맨(록맨) 컷맨 스테이지 : 1987년 첫 록맨의 스테이지 선택 화면에서 커서가 기본으로 놓이는 입문용 구간으로, 좁은 길목의 적과 사다리 배치로 강요 없이 이동과 점프, 사격을 연습시킨다. 살펴볼 점: 안내문 대신 적과 지형의 배치로 가르치는 보이지 않는 튜토리얼과 함께, 선택 화면의 기본값 하나가 첫 경험의 경로를 미리 정해 두는 솜씨를 본다.
  •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그레이트 플래토 : 2017년작의 시작 지역을 본편의 축소판으로 만들고, 사당 네 곳에서 핵심 능력 네 가지를 모두 얻어야 패러글라이더를 받아 밖으로 나가게 하되, 어디로 갈지만 알려주고 어떻게 갈지는 묻지 않는다. 살펴볼 점: 닫힌 시작 지대가 강제 훈련소처럼 느껴지지 않게 하는 장치가 무엇인지, 경로의 자유와 목표의 또렷함이 어떻게 공존하는지 뜯어본다.
  • 하프라이프 2 레이븐홀름 : 2004년작에서 중력건을 막 손에 넣은 직후의 한 구역을 폭발통과 톱날, 좀비로 채워, 설명 없이 '환경을 무기로 던지는 법'을 손이 먼저 익히게 한다. 살펴볼 점: 새 기제를 텍스트 대신 무대 배치로 가르칠 때 소품 하나하나가 어떻게 연습 문제 노릇을 하는지 본다.
  • 글룸헤이븐 / 팬데믹의 튜토리얼 시나리오 : 룰북을 다 읽히는 대신 규칙 일부만 쓰는 입문 시나리오로 첫 판을 바로 시작하게 해, 플레이하면서 규칙을 익히게 한다. 살펴볼 점: 규칙서라는 설명을 줄이고 첫 판이라는 체험을 앞당기는 순서 바꾸기가, 보드게임에서도 같은 처방으로 통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 아케이드 어트랙트 모드(데모 화면) : 동전이 들어오지 않는 동안 기계가 스스로 플레이 시연과 하이스코어 표를 반복해 띄워, 지나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세운다. 살펴볼 점: 조작이 시작되기 전에 보여주기만으로 첫 판단을 거는, 가장 오래된 '플레이어블 광고'의 원형으로 읽을 수 있다.
  • 스팀 넥스트 페스트 : 출시 전 게임들의 데모를 한데 모아 며칠 동안 무료로 돌려보게 하는 스팀의 정기 행사로, 개발사는 발매 전에 첫 몇 분의 반응과 위시리스트 추이를 미리 확인한다. 살펴볼 점: 첫 판단이 구매 앞으로 당겨져 있을 때는 데모의 첫 화면이 사실상 스토어 페이지 노릇을 한다는 것, 그래서 데모의 첫 5분이 본편보다 먼저 채점된다는 것을 본다.

영상·콘텐츠

  • 업(Up) '결혼 생활' 오프닝 : 2009년작이 대사 한 줄 없이 약 4분 반 동안 칼과 엘리의 평생을 음악과 몽타주로 압축해, 도입부만으로 관객의 감정을 사로잡는다. 살펴볼 점: 설명 없이 느끼게 하는 첫인상 설계의 표본으로, 정보보다 정서를 먼저 건네는 순서를 본다.
  • 월-E(WALL·E) 도입부 : 2008년작이 초반 20분가량을 사실상 대사 없이 무성영화처럼 끌고 가며, 동작과 소리와 연출만으로 황폐한 지구라는 세계와 주인공의 성격을 전한다. 살펴볼 점: 설명을 빼고 보여주기만으로 첫인상을 거는 방식이 어디까지 가는지, 그 빈자리를 지루하지 않게 채우는 것이 무엇인지 본다.
  • 레이더스(인디아나 존스) 콜드 오픈 : 1981년작이 주인공이 누구인지 설명하지 않은 채 신전 함정 통과와 굴러오는 거대 바위 탈출, 경쟁자 벨로크에게 유물을 빼앗기는 장면만으로 인물을 각인시킨다. 살펴볼 점: 설명 없이 행동만으로 첫 판단을 설계하는 법과, 실패 장면조차 인물의 매력으로 바꾸는 솜씨를 본다.
  • 헐리우드 '첫 10분 법칙'·콜드 오픈 관습 : 첫 장면에서 관객을 붙잡지 못하면 끝이라고 보는 업계 통념으로, 각본 작법서들이 첫 10분 안의 사건 배치를 따로 가르칠 만큼 규범으로 굳어 있다. 살펴볼 점: 첫 판단의 마감 시한을 업계 전체가 공유 규범으로 정해 둔 경우로, 게임의 첫 세션 설계와 시한의 길이만 다를 뿐 구조가 같다.
  • 드라마 콜드 오픈(브레이킹 배드 등) : 타이틀 전 한 장면으로 채널을 돌리기 전에 몰입시키는 관습인데, 브레이킹 배드(2008)는 사막에 추락한 RV와 속옷 차림의 월터처럼 콜드 오픈을 독립된 단편처럼 키웠다. 살펴볼 점: 첫 장면이 정보 전달보다 갈고리 역할에 무게를 둘 때, 무엇을 설명하지 않은 채 남겨 두는지 본다.
  • 넷플릭스 자동 재생·인트로 건너뛰기 : 다음 화 자동 재생과 '인트로 건너뛰기' 버튼이 기다림을 금기로 만드는 시청 습관을 인터페이스로 굳혔다. 살펴볼 점: 한 서비스의 편의 기능이 다른 모든 콘텐츠가 통과해야 할 새 기준선이 되는, 뉴콘텐츠 상대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본다.
  • 넷플릭스 작품 썸네일 개인화 : 같은 작품에 여러 장의 썸네일을 두고 시청 이력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골라 보여주는 시스템을 공식 기술 블로그로 공개한 바 있는데, 첫인상 한 장이 시청 결정을 좌우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살펴볼 점: 같은 콘텐츠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첫 화면을 다르게 거는, 첫 판단의 개인화 사례로 본다.
  • 유튜브 광고의 5초 건너뛰기 : 5초가 지나면 건너뛸 수 있는 광고 형식이 표준이 되면서, 광고 문법 자체가 첫 5초 안에 브랜드와 갈고리를 거는 쪽으로 재편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살펴볼 점: 시청자가 떠날 권리를 쥐는 순간부터 첫 몇 초의 설계가 장르 전체의 문법을 바꾼다는 것을 본다.

출판·만화·음악

  • 소설의 첫 문장 '훅'(예: 모비딕 "Call me Ishmael") : 첫 줄에서 독자를 붙잡는 작법 전통이 길어, 유명한 첫 문장들이 따로 회자될 정도다. 살펴볼 점: 표지에서 첫 줄로, 첫 줄에서 첫 장으로 이어지는 단계마다 독자가 책을 덮는 이유가 다르다는 데까지 보면 3장의 깔때기 독해와 만난다.
  • 팝송의 '훅'과 짧아진 인트로 : 도입 몇 초에 귀를 잡는 설계는 오래된 작법인데, 스트리밍·숏폼 시대에 인트로가 더 짧아지고 후렴이 앞으로 당겨졌다고 알려져 있다. 살펴볼 점: 매체의 집계 방식(스트리밍 재생 기준)이 콘텐츠의 첫 부분 설계를 바꾸는 인과를 본다.
  • 소년 점프식 독자 앙케트 문화 : 독자가 매주 좋아하는 작품을 적어 보내면 그 순위가 잡지 내 게재 순서와 연재 존속을 정하고, 하위권 작품은 자주 연재가 끊긴다. 전직 편집자의 증언으로는 3주 만에 중단을 가늠하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살펴볼 점: 첫 화 반응이 곧 생존이 되는 구조에서 작가들이 1화에 무엇을 쏟아붓는지가, 첫인상의 무게를 그대로 보여준다.
  • 웹툰 1화 무료 + 세로 스크롤 : 첫 화를 무료로 풀어 진입 비용을 0으로 만들고, 손에 익은 세로 스크롤로 읽는 법을 배울 필요 자체를 지운다. 살펴볼 점: 가격의 익숙함(무료)과 조작의 익숙함(스크롤)을 동시에 빌려, 첫 판단의 마찰을 양쪽에서 줄이는 짜임을 본다.
  • 웹소설 '1화 이탈'과 빠른 도입(회빙환·사이다) : 첫 화 도입부에서 독자를 붙잡는 작법이 정석으로 통해, 회귀·빙의·환생처럼 독자가 이미 아는 출발점을 빌려 설명을 건너뛰고 통쾌한 전개를 앞당긴다. 살펴볼 점: 독자의 선행 경험(장르 문법)을 빌려 도입을 압축하는 솜씨로, 5장의 차용 논의와 곧장 이어진다.

모바일·앱·서비스

  • 틱톡 '게스트로 계속하기' : 영상부터 보여주고 로그인은 상호작용이 필요한 시점에야 요구해, 시작 비용을 뒤로 미루고 첫 재미를 앞으로 당긴다(듀오링고의 가입 미루기는 2장 참고 콘텐츠). 살펴볼 점: 진입 절차의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 첫 판단이 '귀찮다'에서 '재밌다'로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본다.
  • 하이퍼캐주얼 게임의 광고 사전 테스트 : 모바일 하이퍼캐주얼 업계에서는 게임을 다 만들기 전에 광고 영상부터 여러 벌 만들어 설치 단가를 재고, 반응이 좋은 소재만 본편으로 개발하는 관행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살펴볼 점: 첫 판단(광고 한 컷)이 제품보다 먼저 채점되는 극단 사례로, 본문이 말한 비교군 설계가 업계에서는 이미 공정으로 굳어 있다는 것을 본다.

오프라인·일상

  • 연극의 오프닝 장면 : 막이 오르는 첫 순간에 객석을 장악하도록 첫 그림과 첫 소리를 공들여 짠다. 살펴볼 점: 스킵도 일시정지도 없는 매체조차 첫 순간을 승부처로 삼는다는 것, 도망갈 수 없는 관객에게도 첫인상이 이후의 관람 태도를 정한다는 것을 본다.
  • 신입 온보딩 첫날 : 첫날의 환대와 장비·자리의 준비 상태가 신입의 잔류와 몰입을 가른다고 인사 분야에서 통용된다. 살펴볼 점: 조직도 첫 경험을 설계한다는 것, 첫날 점심을 누구와 먹는지 같은 작은 배치가 첫 판단을 만든다는 것을 본다.
  • 애플 언박싱(OOBE) : 뚜껑이 천천히 떨어지도록 공기압까지 계산해 틈을 설계했다고 업계에 회자된다. 살펴볼 점: 제품 이전에 '여는 순간'의 첫인상까지 공들이는 설계로, 첫 경험의 시작점을 제품 화면보다 앞으로 당겨 잡는 시야를 본다.
  • 가전의 '플러그 앤 플레이' : 꽂으면 바로 작동해 매뉴얼을 읽을 필요를 지우는 설계가, 보이지 않는 디자인을 일상에서 구현한다. 살펴볼 점: 잘 될수록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는 역설을, 설명서 없이 쓰기 시작한 가전을 떠올리며 확인한다.
  • 이케아 효과 : 직접 조립한 가구를 사람들은 같은 완제품보다 더 높게 치고, 한 실험에서는 자기가 조립한 물건에 더 큰 값을 매겼다. 살펴볼 점: 사용자가 손을 댄 첫 경험이 애착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첫 화면을 '보여주기'에서 '만져보게 하기'로 바꾸는 근거가 된다.
  • 첫인상 0.1초 실험 : 심리학자 윌리스와 토도로프의 2006년 연구에서, 사람들은 낯선 얼굴을 0.1초만 보고도 신뢰성과 호감 같은 판단을 내렸고 더 오래 보여줘도 그 판단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 살펴볼 점: 첫 판단이 숙고가 아니라 반사에 가깝다면, 첫 화면은 설득문이 아니라 한눈에 읽히는 인상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결론이 따라온다.
  • 백화점 1층의 향수·화장품 매장 : 백화점이 입구 층에 향수와 화장품을 모아 두는 배치는 업계의 오랜 관습으로, 들어서는 순간의 향과 화사함이 매장 전체의 첫인상을 정한다고 회자된다. 살펴볼 점: 공간에도 첫 화면이 있다는 것, 첫 접점에 무엇을 둘지가 업종을 가리지 않는 설계 문제라는 것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