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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DONG-EUN · FTUE 최초 사용자 경험 (30편)

12장. 콘텐츠별 경험의 유형

김동은WhtDrgon. · 12편

12장. 콘텐츠별 경험의 유형


게임의 재미가 도전이라는 말은, 게이머에게만 절반쯤 맞는 말이다.

앞 장에서 우리는 사용자가 어떤 상태로 오는지를 보고, 첫 화면에서 무엇을 미룰지를 정했다. 미루고 나면 첫 화면이 비는데, 그 빈 곳에 무엇을 먼저 줄 것인가. 답하려면 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기획 회의에서 "무엇을 줄까"를 물으면 대개 수집 기능, 대화 기능, 전투 기능, 꾸미기 기능, 랭킹 기능 같은 기능 목록이 나오고, 기능을 늘리면 줄 게 많아진 것 같다. 그런데 기능 목록과 경험 목록은 같은 게 아니어서, 수집 기능을 넣는다고 수집의 즐거움이 저절로 생기지 않고 대화 기능을 넣는다고 친밀함이 저절로 오지 않는다. 기능은 통로일 뿐이고, 그 통로로 사용자가 실제로 무엇을 겪는지가 경험이다.

그래서 첫 경험을 설계하기 전에 기능이 아니라 경험으로 목록을 다시 짜야 한다. 그 경험을 화면 위에 어떤 버튼과 연출로 옮길지는 13장의 일이니, 여기서는 줄 수 있는 경험의 목록부터 갖춘다. 사람이 콘텐츠에서 겪는 경험은 어떤 종류로 나뉘는가.

같은 게임을 켜도 다른 것을 하러 왔다

가상의 캐릭터 게임으로 들어간다. 세 사람이 같은 게임을 깔았다고 하자. 첫 화면도 같고 줄 수 있는 것도 같은데, 셋이 그 게임을 켜는 이유는 전혀 다르다.

첫 사람은 캐릭터가 예뻐서 깔았다. 그는 캐릭터를 보고 만지고 반응을 끌어내는 그 순간순간이 좋아서, 화면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소리가 경쾌하면 그걸로 만족한다. 둘째 사람은 캐릭터를 모으려고 깔았다. 그는 도감의 빈칸을 채우고 내가 가진 것이 늘어나는 감각을 원해서, 한 칸 한 칸 채워지는 게 그의 즐거움이다. 셋째 사람은 친구가 한다고 해서 깔았다. 그는 캐릭터에도 수집에도 큰 관심이 없고, 친구와 같이 무언가를 하고 자기가 꾸민 걸 보여주고 반응을 받는 게 목적이다. 물론 실제 사람이 이렇게 깔끔하게 갈리지는 않아서, 친구 따라 온 셋째 사람도 들어와 지내다 보면 도감의 빈칸에 물들곤 하지만, 적어도 첫 화면 앞에 선 순간의 셋은 각자 다른 것을 하러 왔다.

셋에게 같은 첫 화면을 똑같이 들이밀면, 적어도 둘은 헛다리를 짚는다. 모으러 온 사람에게 감각적인 연출만 길게 보여주면 그는 "그래서 모으는 건 어디서 하지?"를 묻는다. 보여주러 온 사람에게 혼자 즐기는 수집만 안기면 그는 "같이 하는 건 없나?"를 묻는다. 사람마다 치르고 싶은 경험이 다른데 한 종류만 주면, 나머지는 자기 게 아니라고 느끼고 떠난다.

흔히 첫 화면을 짜다 보면 도전이 없는 재미부터 잘려 나가서, 모으는 손맛도 꾸미는 재미도 캐릭터와 통하는 감각도 "그건 나중에"로 미뤄지고 그 자리에 첫 판 도전 하나만 남는다. 그런데 그렇게 빼버린 셋이 사실은 우리가 데려오려던 사람의 재미였다.

실제로 잘된 콘텐츠는 이 여러 갈래를 한 섬 안에 같이 깔아 둔다.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들여다보면, 같은 게임을 켜도 사람마다 하는 일이 다르다. 누구는 섬을 꾸미고 가구를 배치하는 손맛으로 시간을 보내고, 누구는 박물관의 곤충·물고기·화석 칸을 채우는 수집에 매달리고, 누구는 꾸민 집과 섬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서로 놀러 다니는 데 빠진다(버전·업데이트에 따라 구성은 달라진다). 같은 콘텐츠가 꾸미기의 손맛, 채우는 소유감, 보여주는 과시를 한 섬에 겹쳐 담았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온 사람이든 자기 자리를 찾는다. 다만 이 여러 갈래가 첫 화면에 한꺼번에 펼쳐져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은 기억해 두자. 게임 전체에 깔린 것과 첫 30분에 내미는 것은 다른 문제인데, 이 구분은 이 장의 결론에서 다시 쓴다.

MEJE 아이동월드도 마찬가지다. 강아지 아이동을 꾸미는 같은 화면 앞에서, 어떤 팬은 색을 칠하고 모양을 바꾸는 손맛 자체가 좋고, 어떤 팬은 완성한 아이동을 '내 거'로 갖는 소유가 좋고, 어떤 팬은 꾸민 아이동을 남에게 보여주는 과시가 좋다. 그래서 아이동월드는 꾸미기 하나에 칠하는 손맛과 완성해서 갖는 소유감과 보여주는 과시, 이 세 경험을 다 담는다. 한 콘텐츠 안에 여러 경험이 겹쳐 있다는 걸 알아야, 어느 팬도 헛다리를 짚지 않는다.

경험을 열 가지로 펼친다

경험을 막연히 두면 "재밌게"라는 한 단어로 뭉개지니, 사람이 콘텐츠에서 겪는 경험을 열 가지로 갈라 도구로 쓴다. 첫 경험에서 무엇을 먼저 줄지 고르려면, 줄 수 있는 것들의 이름부터 따로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감각과 발견은 그 순간에 몸으로 닿는 쾌감이다. 감각은 보고 듣고 만지는 즐거움으로, 화면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소리가 경쾌하고 누르면 손끝에 반응이 온다. 음악 게임이나 단순한 터치 놀이가 주로 파는, 이해할 것도 모을 것도 없이 그 자체로 끝나는 경험이다. 발견은 숨은 걸 찾고 예상 밖을 만나는 즐거움으로, 구석을 살피다 뜻밖의 것과 마주치고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탐험의 맛이다.

이해와 선택과 성취는 머리와 손으로 겪는 경험이다. 이해는 몰랐던 걸 알아내고 풀리지 않던 게 풀리는 쾌감으로, 머리를 써서 한 수를 두고 맞아떨어졌을 때 "아하" 하는 퍼즐의 즐거움이 여기 있다. 선택은 어느 길로 갈지 누구 편을 들지 내 손으로 정하는 통제감으로, 같은 결과라도 남이 정해준 것과 내가 고른 것은 다르게 느껴진다. 성취는 못 넘던 벽을 넘고 어제보다 잘하게 되는, 어려운 걸 해냈다는 감각이다. 게임이 가장 많이 파는 경험이고, 도전과 극복이 여기 든다.

소유와 세계와 의식은 갖고 머무는 경험이다. 소유는 모으고 채우고 가지면서 내 것이 늘어나는 감각으로, 수집의 즐거움과 도감을 채우는 만족과 내 캐릭터가 내 것이라는 애착이 여기 든다. 세계는 이야기와 분위기 속에서 내가 그곳의 누구라는 정체성을 갖는, 다른 곳에 들어와 있다는 감각이다. 드라마에 빠지듯 그 세계 안에 머무는 경험이다. 의식은 반복되는 절차에서 오는 안정감으로, 매일 같은 시간에 들러 같은 일을 하는 그 리듬이 일상에 스며든다.

관계와 과시는 사람으로 이어지는 경험이다. 관계는 누군가와 통하고 이어지는 감각으로, 캐릭터가 나를 알아보고 자주 보면 더 따르고 떠나 있으면 보고 싶어 한다. 사람 사이든 캐릭터와의 사이든 마음이 오가는 경험이다. 과시는 남에게 보이고 인정받는 감각으로, 내가 꾸미고 모으고 해낸 것을 드러내 반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여기 닿는다.

이 열 가지를 외우라는 게 아니라, 우리 콘텐츠가 사용자에게 무엇을 주는지를 한 단어로 부를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수집 기능이 있다"가 아니라 "이건 소유 경험을 준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 경험을 누가 원하는지, 그걸 첫 화면에서 줄지 미룰지가 따라온다.

"재미는 도전과 성취뿐"이라는, 게이머의 상식

경험을 다루는 장이니 게임의 관습 하나를 검문소에 세운다. 관습이라기보다 게이머의 머릿속에 깊이 박힌 상식이다. 게임의 재미는 결국 도전과 성취라는 믿음이다.

게이머에게 게임은 극복하는 것이다. 어려운 적을 이기고, 안 풀리던 판을 깨고, 더 높은 곳에 오르는 그 극복의 쾌감이 게임의 알맹이라고 그는 믿는다. 이 믿음은 근거가 있다. 오랫동안 잘 만든 게임들이 실제로 그 쾌감을 정교하게 다듬어 왔고, 게이머는 그 맛을 알기 때문에 게임을 한다. 도전과 성취는 진짜 경험이고, 잘 설계하면 강력하다.

이 상식이 위험해지는 건 그게 게임이 줄 수 있는 유일한 재미라고 여길 때다. 처음 온 사람의 상당수는 도전하러 오지 않았다. 웹툰을 보던 사람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왔으니 그가 원하는 건 세계와 관계지 극복이 아니고, 캐릭터가 좋아서 온 사람은 그 캐릭터를 갖고 곁에 두고 싶어 왔으니 그가 원하는 건 소유와 관계이며, 친구 따라 온 사람은 같이 놀고 보여주고 싶어 왔으니 그가 원하는 건 과시와 관계다. 이들에게 "첫 판부터 어려운 도전으로 실력을 증명하라"는 첫 화면을 들이밀면, 게이머는 신이 나겠지만 나머지는 자기 자리가 아니라고 느낀다.

이 상식이 일반인에게 치르게 하는 대가는 실패의 경험과 배제감이다. 도전 중심의 첫 화면은 잘하는 사람만 환영해서, 못하는 사람은 첫 판에서 지며 "역시 게임은 나랑 안 맞아"를 확인하고 떠나고, 도전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도전을 강요하면 그는 자기가 틀린 곳에 왔다고 느낀다. 도전과 성취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앞 장의 요금으로 셈해 보면 결론은 더 간단해진다. 도전은 열 가지 경험 중 첫 화면에서 가장 비싼 상품이다. 실패 요금과 자존심이 깎이는 부담을 먼저 치러야만 팔리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감각은 거의 공짜여서, 보고 듣고 만지는 데는 청구서가 거의 붙지 않는다. 그러니 도전이 나쁜 게 아니라 첫 계산대에 올리기엔 너무 비싼 상품이라는 것이고, 비싼 상품은 손님이 이 가게를 믿게 된 뒤에 권하는 법이다. 첫 화면에서 줄 경험은 우리가 데려올 사람이 원하는 경험이어야 하니, 모으러 온 사람에게는 소유를, 이야기를 보러 온 사람에게는 세계를, 보여주러 온 사람에게는 과시를 먼저 준다. 도전은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혹은 다른 경험으로 충분히 머문 사람에게 나중에 내민다. 게임이 도전만 줄 수 있다는 생각은, 게임을 게이머의 것으로만 가두는 생각이다.

출신마다 원하는 경험이 다르다

여기서 9장과 10장이 다시 합류한다. 우리가 데려오기로 한 사람은 빈손으로 오지 않고 자기가 살던 곳에서 길든 경험의 취향을 들고 오는데, 그 취향이 곧 그가 우리 첫 화면에서 먼저 치르고 싶은 경험을 정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던 사람은 서사와 세계를 원해서, 그에게 첫 화면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 세계인지, 내가 그 안에서 누구인지가 먼저 오는 이야기의 입구여야 한다. 조작이나 도전을 먼저 들이밀면 그는 "나는 보러 왔는데"라고 느낀다. 커머스에서 온 사람, 그러니까 쇼핑과 수집에 익숙한 사람은 소유를 원하는데, 무엇을 가질 수 있는지, 어떻게 내 것이 늘어나는지가 그의 관심이라 첫 화면에서 '내 것 하나'가 빨리 생기는 게 중요하다. 숏폼을 끝없이 넘기던 사람은 즉각적이고 짧고 손맛 좋은 감각을 원해서, 그에게 긴 내레이션이나 복잡한 이해를 요구하면 손가락이 먼저 떠난다. 아이돌이나 캐릭터 팬덤에서 온 사람은 최애를 곁에 두고 매일 안부를 묻고 그 관계가 쌓이는, 관계와 소유의 경험을 원한다.

한 화면에 모든 경험을 다 담으려 하면 아무에게도 또렷하지 않다. 그래서 첫 경험에서는 우리가 1차로 데려올 사람의 출신을 보고, 그가 원하는 경험 셋을 골라 화면 맨 앞에 둔다. 드라마 출신을 잡기로 했다면 세계와 서사를, 커머스 출신을 잡기로 했다면 소유를 먼저 준다. 나머지 경험은 빼는 게 아니라 뒤로 둔다. 첫 화면은 우리가 노린 사람의 언어로 말해야 하고, 그 언어가 곧 그가 원하는 경험의 종류다.

같은 논리는 거꾸로도 선다. 이 책이 줄곧 도전과 경쟁을 뒤로 미루라고 말하는 건 1차 인입 대상이 게임 바깥에서 오는 경우의 이야기이고, 만약 우리가 1차로 데려올 사람이 게이머 출신이라면 출신의 논리 그대로 도전과 수집 경쟁을 오히려 앞세워야 한다. 하드코어 액션의 후속작이 첫 화면에서 감각과 의식부터 내밀면 그 게이머는 물러졌다고 느끼고 떠난다. 미루기는 교리가 아니라 출신을 따라가는 계산이어서, 무엇을 앞세울지는 언제나 데려올 사람이 정한다.

▶ 내 화면에 대입하는 세 가지

  1. 도전만 재미로 깔고 있지 않나.
  2. 일반인이 찾아올 경험 유형을 첫 화면이 보여주나.
  3. 우리 핵심 재미가 첫 화면 안에 있나. 셋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그 화면은 게이머 한 명만 부르고 나머지를 돌려보내고 있다.

그래서, 첫 30분에 줄 경험 셋을 고른다

"기능을 무엇무엇 넣을까"라는 질문은 이제 내려놓아도 된다. 경험으로 목록을 다시 짜고 나면 물을 것은 "어떤 경험을 먼저 치르게 할까" 하나로 줄어든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 콘텐츠가 줄 수 있는 경험을 열 가지로 짚어 보는 것이다. 그중 우리가 1차로 데려올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경험 셋을 골라 첫 30분 안에 또렷이 맛보게 하고, 나머지 일곱은 빼는 게 아니라 미룬다. 앞에서 동물의 숲을 칭찬해 놓고 이제 와 셋만 고르라니 충돌처럼 들린다면, 시간축을 가르면 된다. 게임 전체에는 동숲처럼 여러 경험을 깔아 두되, 첫 30분의 진열대에는 셋만 올린다는 말이다. 나머지 일곱은 창고에 두었다가 사용자가 이 가게의 단골이 된 뒤에 하나씩 진열대로 꺼낸다. 첫 화면에서 열 가지를 다 보여주려 하면 사용자는 무엇을 하러 온 곳인지 모른 채 떠나지만, 셋만 또렷하면 적어도 그 셋을 원하던 사람은 "여기 내 자리가 있다"를 느낀다.

셋을 고를 때 기준이 하나 더 있다. 아이동월드의 꾸미기가 보여줬듯 기능 하나가 경험 셋을 나르기도 해서, 칠하는 감각과 갖는 소유와 보여주는 과시가 꾸미기라는 한 통로로 같이 온다. 그렇다면 첫 30분 설계의 최소 단위는 기능이 아니라 경험이고, 기능 목록과 경험 목록을 가로세로로 펼쳐 놓고 보면 한 기능이 여러 경험 칸을 채우는 기능이 눈에 들어오는데, 첫 화면의 일순위는 바로 그 기능이다.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같은 요금을 청구하면서 더 많은 경험을 나르기 때문이다.

이 결정은 측정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소유 경험을 먼저 주기로 했다면 사용자가 첫 30분 안에 '내 것'을 손에 넣는 비율을 보는데, 그 비율이 낮으면 우리가 의도한 경험이 실제로는 도착하지 못했다는 신호다. 다른 유형도 대신 재 주는 수치를 하나씩 둘 수 있어서, 세계를 걸었다면 내레이션과 컷신을 끝까지 보는 비율(스킵률을 뒤집은 수치)을, 관계를 걸었다면 한 번 만난 캐릭터를 다시 찾아와 만지는 비율을 본다. 어떤 경험을 첫 화면에 걸었는지와 사용자가 실제로 그 경험에 닿았는지를 나란히 놓아 보자. 우리가 약속한 것과 전한 것의 차이가 숫자로 드러난다. 정량은 우리가 주려던 경험과 실제로 준 경험의 거리를 비춘다.

참고 콘텐츠

이 장의 개념이 드러나는 다른 매체의 사례.

비디오게임

  • 모여봐요 동물의 숲 : 같은 게임에서 누구는 박물관 수집, 누구는 섬 꾸미기, 누구는 친구 방문에 빠진다. 한 콘텐츠에 여러 경험이 겹쳐 있다.
  • 디스코 엘리시움 : 전통적 전투가 아예 없고 24개 스킬의 판정과 대화 트리, 머릿속 생각을 채워 가는 사고 캐비닛으로만 진행해, 이해·세계·선택 경험만으로 RPG가 성립함을 보인다.
  • 쿠키 클리커 / 어드벤처 캐피탈리스트 : 누르면 숫자가 오르는 단순 반복이 매일 들러 확인하는 리듬이 되어, 도전이나 서사 없이 의식과 소유의 감각만으로 사람을 붙드는 방치형의 전형이다.

기기 UX / 가전

  • 다마고치 : 먹이고 씻기고 매일 들여다보는 돌봄만으로 16픽셀 생물에게 애착이 생기는 '다마고치 효과'로, 도전 없이 관계와 의식(매일의 안부)만으로 사람을 붙든다.

일반 앱 / 팬덤

  • K팝 팬덤 : 같은 그룹을 두고 누구는 포토카드를 모으고(소유), 누구는 음원 스트리밍과 음반 구매에 매달리고, 누구는 콘서트·팬미팅에 가고, 누구는 팬 콘텐츠를 만들어 알려, 한 대상에 소유·관계·과시 경험이 겹친다.

나머지 참고 콘텐츠는 이 글 끝의 '12장 부록'에 모아 두었다(단행본에서는 부록 D로 묶인다).


설계 노트 ▶ 직접 해보기

우리 콘텐츠가 줄 수 있는 경험을 열 가지(감각·이해·선택·성취·소유·관계·세계·의식·과시·발견) 옆에 펼친다. 각 경험에 우리 게임이 그걸 어디서 주는지 한 줄로 적는다. 줄 데가 없는 경험은 빈칸으로 둔다.

다 적었으면 1차로 데려올 사람의 출신을 떠올려, 그가 살던 곳에서 길든 경험이 이 열 가지 중 무엇이었는지 짚는다. 드라마 출신이면 세계, 커머스 출신이면 소유 하는 식으로 그 경험에 동그라미를 친다.

이제 동그라미 친 것을 포함해 첫 30분에 줄 경험 셋을 고르고, 그 셋을 사용자가 첫 30분 안에 맛보도록 첫 화면의 동선을 짜며, 셋 밖의 경험은 '미룸' 칸으로 옮긴다. 동선을 짤 때는 한 기능이 여러 경험 칸을 채우는 기능부터 앞에 세운다. 이 작업이 부록 B의 콘텐츠별 경험 유형표와 첫 30분 우선 경험 목록으로 자라난다.

고른 셋 안에 데려올 사람이 원하는 재미가 없다면, 도전 하나로 화면을 채우려던 손을 멈춰라.

한 줄 요약: 기능 목록과 경험 목록은 같지 않다. 사람이 콘텐츠에서 겪는 경험은 감각·이해·선택·성취·소유·관계·세계·의식·과시·발견의 열 가지로 갈린다. 같은 게임을 켜도 사람마다 원하는 경험이 다르고, 그 차이는 출신에서 온다. 드라마 출신은 세계를, 커머스 출신은 소유를, 숏폼 출신은 감각을 원한다. 게임의 재미가 도전과 성취뿐이라는 건 게이머의 상식이지, 처음 온 사람의 기대가 아니다. 다음 장: 줄 경험을 정했으면, 그 경험을 화면 위에 어떻게 드러낼지가 남는다. 하트 버튼은 인정을, 보상 팝업은 성취를 가리킨다. 그런데 표시를 그려 넣는다고 경험이 생기지는 않는다. 다음 장에서 버튼이 상징하는 것과 실제 경험 사이의 거리를 해부한다.


12장 부록: 참고 콘텐츠 모음

이 모음은 기능 목록과 경험 목록이 같지 않다는 이 글의 논점, 그리고 사람이 콘텐츠에서 겪는 경험이 감각·이해·선택·성취·소유·관계·세계·의식·과시·발견의 열 가지로 갈려 같은 콘텐츠를 켜도 사람마다 다른 경험을 하러 온다는 논점을 여러 매체에서 확인하기 위해 모은 사례집이다. 사례는 매체별로 묶었고, 항목마다 끝에 '살펴볼 점'을 달아 설계자가 무엇을 관찰하면 좋은지 적었다. 읽는 요령은 하나다. 각 사례에서 한 콘텐츠가 열 유형 중 몇 칸을 채우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어느 칸으로 갈라져 들어가는지를 센다.

비디오게임

  • 마인크래프트 : 같은 세계를 두고 누구는 건축에, 누구는 생존과 탐험에, 누구는 회로(레드스톤) 연구에 빠져 경험이 갈라지고, 아예 건축 전용의 크리에이티브 모드와 생존 모드를 따로 두어 그 갈림을 공식화했다. 살펴볼 점: 모드 선택이 곧 '어떤 경험을 치르러 왔는가'라는 질문이라는 것, 한 세계가 여러 경험을 품으려면 무엇을 갈라 줘야 하는지 본다.
  • 스타듀 밸리 : 2016년작에서 3년차에 받는 할아버지의 평가는 누적 소득, 박물관 수집, 스킬, 주민과의 우정, 공동체 센터 복원처럼 서로 다른 칸에 점수를 주어, 농사로만 가든 수집으로만 가든 관계로만 가든 같은 인정에 닿는다. 살펴볼 점: 평가 체계 자체가 여러 경험 유형을 동등하게 세는 드문 사례라는 것, 우리 게임의 평가표가 어느 유형만 세고 있는지 본다.
  • 심즈 : 살림 꾸미기(소유), 인간관계(관계), 인생 이야기 만들기(세계·선택)로 갈려, 승리 조건 없는 모래상자가 사람 수만큼의 경험으로 나뉜다. 살펴볼 점: 승리 조건이 없을 때 사람들이 각자 무엇을 하러 오는지가 가장 깨끗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본다.
  • 데스 스트랜딩 : 2019년작은 배달이 핵심이고, 한 사람이 놓은 도로·다리·집라인을 다른 사람들이 함께 쓰는 비동기 협력을 전면에 세워, 전투(성취)가 아니라 연결(관계)로 게임을 끌었다. 살펴볼 점: 장르의 기본값이던 경험을 빼고 다른 유형을 주연으로 세워도 게임이 성립한다는 것을 본다.
  • EVE 온라인 : 2003년부터 이어지는 우주 MMO에서 채굴, 제조·교역, 탐사, 해적·전투가 모두 직업으로 성립해, 전투가 유일한 기여 수단이 아니라 경제 전체가 사람마다 다른 경험으로 갈린다. 살펴볼 점: 경험 유형마다 별도의 직업을 마련해 주면 한 세계가 여러 부류의 사람을 동시에 입주시킨다는 것을 본다.
  • 파이널 판타지 14 : 같은 게임 안에 전투로 경험치를 얻지 않는 '손의 사도'(제작)와 '땅의 사도'(채집) 직업이 따로 있어, 전투를 안 하고 제작·채집·하우징·글래머만으로 머무는 사람의 몫이 마련돼 있다. 살펴볼 점: 전투를 안 하는 사람의 칸을 직업 체계 차원에서 공식화한 설계를 본다.
  • 포켓몬 GO : 2016년에 나온 위치 기반 게임으로, 같은 앱을 켜도 누구는 도감 채우기와 색이 다른 개체 모으기(소유), 누구는 레이드·대전(성취), 누구는 산책과 모임(관계·의식)을 하러 온다. 살펴볼 점: 한 앱에 겹친 경험들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게 갈라져 있는지, 어느 경험으로 들어와도 첫 화면이 막지 않는지 본다.
  • 그란 투리스모 : 경주(성취)가 핵심처럼 보이지만, GT 스포트(2017)부터 들어간 스케이프스 사진 모드와 도색·튜닝으로 차를 꾸미고(감각·소유) 찍어 보여주는(과시) 사람이 따로 있다. 살펴볼 점: 레이싱이라는 한 장르 안에서도 승부 밖의 경험이 두꺼운 층을 이룬다는 것을 본다.

필름 애니메이션

  • 토이 스토리 : 같은 장난감을 두고 인물마다 다른 의미를 매기며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관객도 모험으로 보는 아이와 우정·상실로 보는 어른으로 갈린다. 살펴볼 점: 한 화면이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경험으로 도착하게 겹쳐 쓰는 법을 본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2001년작을 아이는 신들의 세계를 헤매는 모험(발견·세계)으로 보고, 어른은 노동과 돈과 성장의 우화(이해)로 읽는다. 살펴볼 점: 같은 장면이 두 관객층에게 다른 유형의 경험을 동시에 주는 겹쳐 쓰기를 본다.
  • 픽사 인사이드 아웃 / 업 : 아이는 알록달록한 모험과 캐릭터(감각·발견)로 즐기고, 어른은 슬픔의 수용과 상실의 정서(세계·이해)로 받는다. 살펴볼 점: 두 층의 경험이 서로를 가리지 않게 배치된 구성을 본다.

문학

  • 어린 왕자 : 같은 텍스트를 아이는 별을 도는 모험(발견)으로, 어른은 길들임과 이별의 관계·상실로 읽어, 한 권이 독자에 따라 다른 경험으로 도착한다. 살펴볼 점: 어느 독자층도 배제하지 않으면서 층마다 다른 경험을 주는 텍스트의 두께를 본다.

실사 TV / 드라마

  • 동일 IP의 시청 동기 분화 : 누구는 서사를, 누구는 인물 관계를, 누구는 세계관 고증을 보러 같은 작품을 본다. 살펴볼 점: 시청 후기와 팬 활동(클립 편집, 설정 정리, 인물 분석)이 경험 유형의 분포를 보여 주는 공짜 데이터라는 것을 본다.

음악

  • 같은 플레이리스트의 다른 청취 : 스포티파이에서 같은 곡 묶음을 누구는 집중용·배경용으로 흘리고(감각·의식), 누구는 새 아티스트 발굴로 파고들며(발견), 누구는 함께 만드는 협업 리스트로 나눠 듣는다(관계·과시). 살펴볼 점: 한 음원이 듣는 방식에 따라 여러 경험으로 갈린다는 것, 기능 하나(재생)가 경험을 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본다.

보드게임

  • 카탄 : 자원 모으기(소유), 길 잇기(성취), 협상(관계)이 한 판에 겹쳐 사람마다 다른 재미를 쥔다. 살펴볼 점: 겹친 경험들이 서로 맞물려(자원을 모으려면 협상해야 한다) 따로 놀지 않는 결합을 본다.
  • 디센트 / 글룸헤이븐 : 전투 성취형과 이야기 진행형 플레이어가 같은 테이블에 공존한다. 살펴볼 점: 같은 규칙으로 노는 동석자끼리도 치르는 경험이 다르다는 것, 한 테이블이 곧 여러 경험의 교차로라는 것을 본다.

테마파크 / 공간 체험

  • 디즈니랜드 : 같은 공원에서 누구는 놀이기구의 성취를, 누구는 캐릭터와의 관계를, 누구는 분위기와 세계에 머무는 시간을 산다. 살펴볼 점: 입장권 한 장이 사람마다 다른 경험의 입장권이 된다는 것, 동선이 그 갈림을 막지 않게 짜였다는 것을 본다.

일반 앱 / 팬덤

  • 인스타그램 : 누구는 과시(피드 꾸미기), 누구는 관계(메시지), 누구는 발견(탐색 탭)을 하러 같은 앱을 연다. 살펴볼 점: 하단 탭 하나하나가 사실상 경험 유형의 입구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본다.
  • 레고 / 레고 빌딩 앱 : 만드는 손맛(감각), 완성품의 소유, 전시와 과시가 한 활동에 담긴다. 살펴볼 점: 기능은 '조립' 하나인데 나르는 경험이 셋이라는 것, 한 기능이 여러 경험 칸을 채우는 본보기를 본다.
  • 유튜브 : 같은 앱을 누구는 강의와 다큐로 배우러(이해), 누구는 구독 채널의 근황을 보러(관계), 누구는 잠들기 전 배경 소리로(감각·의식), 누구는 알고리즘이 물어 오는 뜻밖의 영상으로(발견) 연다. 살펴볼 점: 첫 화면(홈 피드)이 사람마다 다른 경험의 입구로 조립된다는 것, 우리 첫 화면은 누구의 입구인지 본다.
  • 스트라바 : 달리기·자전거 기록 앱인데, 기록 경신(성취), 새 코스 개척(발견), 구간 순위와 쿠도스라는 호응(과시·관계), 매일 같은 시간의 운동(의식)이 GPS 기록이라는 기능 하나에 겹쳐 실린다. 살펴볼 점: 한 기능이 여러 경험 칸을 채우는 본보기, 첫 30분에 앞세울 기능을 고르는 기준을 본다.

오프라인·일상

  • 야구장 직관 : 같은 경기를 누구는 전력 분석과 기록으로 보고(이해), 누구는 응원가와 먹거리의 분위기로 즐기고(감각·의식), 누구는 동행과의 시간으로 삼고(관계), 누구는 유니폼과 굿즈를 모은다(소유·과시). 살펴볼 점: 경기라는 한 콘텐츠가 관중석에서 여러 경험으로 갈린다는 것, '재미는 승부'라는 가정이 야구장에서도 절반만 맞는다는 것을 본다.
  • 등산 : 같은 산을 누구는 정상 인증을 위해(성취·과시), 누구는 풍경과 공기를 위해(감각), 누구는 동행과 이야기하러(관계), 누구는 매주 같은 코스를 도는 리듬으로(의식) 오른다. 살펴볼 점: 콘텐츠(산)는 하나인데 오르는 이유가 사람 수만큼 갈린다는 것, 입구에서 어느 이유도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본다.
  • 독서 모임 : 같은 책이 혼자 읽을 때는 이해와 세계의 경험이고, 모여 떠들 때는 관계의 경험이며, 서평과 인증으로는 과시의 경험이 된다. 살펴볼 점: 콘텐츠 자체가 아니라 콘텐츠를 둘러싼 활동이 경험 유형을 바꾼다는 것, 우리 게임 둘레에 어떤 활동의 켜를 둘 수 있는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