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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DONG-EUN · FTUE 최초 사용자 경험 (30편)

10장. 캐릭터 명단과 감각 명단

김동은WhtDrgon. · 10편

10장. 캐릭터 명단과 감각 명단


캐릭터를 사랑하기 전에 등급표로 세우면, 애착보다 거래가 먼저 온다.

첫 화면이 별 등급표와 뽑기 확률표다. 좋아할 얼굴을 고르기도 전에 사람은 누가 비싼지부터 눈으로 셈한다.

앞 장에서 우리는 그 사람이 들어올 세계를 정했다. 이제 그 세계를 처음 통역할 캐릭터를 정한다.

캐릭터가 그래픽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첫 화면은 카탈로그가 된다.

기획 회의에서 캐릭터는 보통 몇 종 만들지, 등급을 어떻게 나눌지, 외형을 누가 그릴지로 다뤄지면서, 화면을 채울 그림이자 사람을 끌어들일 미끼로 취급된다. 이 관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절반만 본 것이다. 캐릭터는 화면을 채우는 그림이기 전에, 사람과 세계 사이에 선 통역자다.

세계관은 추상적이어서, 9장에서 짠 그 세계가 따뜻한지 분주한지는 색과 소리와 분위기로도 전해지지만 캐릭터만큼 빠르고 구체적으로 와 닿지는 않는다. 사람이 가장 먼저 또렷이 만나는 건 세계가 아니라 그 세계에 사는 캐릭터여서, 캐릭터가 폴짝 뛰며 까르르 웃으면 '아, 여긴 안전하고 즐거운 곳이구나'를 알고, 묵직하게 서서 정면을 응시하면 '여긴 무게가 있는 곳이구나'를 안다. 세계가 무엇인지를 사람의 감각으로 옮겨 주는 일, 그게 캐릭터가 첫 화면에서 하는 진짜 일이다. 그래서 캐릭터 명단은 그림 목록이 아니라 통역자 명단이다.

같은 화면을 보고도 다른 곳에서 눈이 멈춘다

가상의 캐릭터 게임으로 들어간다. 첫 화면에 보드라운 토끼, 위엄 있는 용, 도도한 고양이, 이렇게 세 캐릭터가 나란히 등장한다고 하자.

세 사람이 이 화면을 본다. 첫 사람은 보드라운 토끼에서 눈이 멈추는데, 안고 싶고 만지면 폭신할 것 같고 보호해 주고 싶어서다. 둘째 사람은 위엄 있는 용에서 멈추는데, 우러러보게 되고 곁에 두면 어깨가 으쓱해질 것 같아서다. 셋째 사람은 도도한 고양이에서 멈추는데, 쉽게 곁을 안 줄 것 같아서 오히려 길들이고 탐색하고 싶어서다. 같은 화면인데 세 사람의 눈은 다른 곳에 닿았으니,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끌리는 게 아니라 누구는 보호욕에, 누구는 동경에, 누구는 탐색욕에 끌린다.

이게 캐릭터별 감각이라는 것으로, 캐릭터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감각의 종류가 다르다. 보드라움은 보호욕과 애착을 건드리고, 통통 튀는 반응은 장난기와 타이밍의 쾌감을 건드리고, 도도함은 탐색욕과 정복감을 건드리며, 위엄 있는 캐릭터는 동경을, 작고 약한 캐릭터는 돌봄을, 빠른 캐릭터는 속도의 짜릿함을 건드린다. 그러니 캐릭터를 명단에 올릴 때 외형만 적으면 안 되고, 이 캐릭터가 어떤 감각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지를 함께 적어야 한다.

감각을 막연히 두면 명단에 적을 때마다 다른 말이 나오니, 감각을 몇 개의 무리로 묶어 도구로 쓴다. 첫 화면에서 캐릭터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감각은 대개 여덟 무리 안에 드는데, 6장의 8계층이나 7장의 체험자 8종과는 다른 목록이니 헷갈리지 않게 한다. 안고 지키고 싶은 보호·돌봄, 숨은 걸 캐고 알아 가고 싶은 탐색·발견, 우러러보고 내보이고 싶은 동경·과시, 건드려 반응을 끌어내고 싶은 장난·반응, 모아서 내 것으로 삼고 싶은 수집·소유, 빨리 잘하게 되고 싶은 속도·숙련, 말을 주고받고 마음을 나누고 싶은 교감·대화, 위협 없이 머물고 싶은 안전·편안. 여덟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자주 보이는 무리를 묶어 둔 것일 뿐이니, 우리 팀의 명단에서 아홉 번째 무리가 나오면 그대로 추가하면 된다. 수집·소유가 명단에 당당히 있는 게 8장의 경고와 어긋나 보일 수 있는데, 8장이 막은 건 수집이 아닌 마음에 수집의 이름을 붙이는 일이었고 여기의 수집·소유는 정말로 모으고 싶어 하는 사람의 칸이다.

캐릭터 하나를 떠올렸을 때 이 여덟 중 어느 무리가 먼저 켜지는지를 짚으면, 그 캐릭터가 어떤 사람에게 손짓하는지가 한 단어로 잡힌다. 무리끼리 겹쳐 보일 때도 이 '먼저'가 가른다. 보드라운 토끼를 놓고 보면 보호·돌봄과 안전·편안이 같이 켜지는 것 같지만, 작고 약해서 내가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라면 보호·돌봄이고, 크고 푹신해서 내가 안기고 기대고 싶은 마음이 먼저라면 안전·편안이다. 방향이 나에게서 캐릭터로 가면 돌봄이고, 캐릭터에게서 나에게로 오면 편안인 셈이다. 독자도 자기 게임의 캐릭터를 이 중 하나로 짚을 수 있어야 한다. 어느 무리에도 안 들어가는 캐릭터가 있다면, 그 캐릭터는 아직 감각이 정해지지 않은 그림일 뿐이다.

감각이 정해지면 콘텐츠는 따라오는데, 감각이 콘텐츠를 부르기 때문이다. 보호·돌봄의 감각은 꾸미고 보살피고 키우는 콘텐츠를 부르고, 탐색·발견의 감각은 조금씩 곁을 내주는 대화와 하나씩 풀리는 해금을 부르고, 동경·과시의 감각은 모아 두고 남에게 보이는 수집과 프로필을 부르고, 장난·반응의 감각은 톡톡 건드리면 곧장 답이 오는 미니게임과 즉답을 부른다. 무리마다 부르는 콘텐츠가 다르니, 캐릭터의 감각을 정하는 순간 첫 동작으로 무엇을 줄지가 거의 정해진다. 거꾸로 캐릭터의 감각과 콘텐츠가 어긋나면 사람은 묘한 위화감을 느끼는데, 보호해 주고 싶은 보드라운 캐릭터를 다짜고짜 전투에 내보내면 그 캐릭터를 좋아한 사람은 감각이 부른 적 없는 콘텐츠를 받아 마음이 불편하다.

MEJE 아이동월드의 세 캐릭터가 바로 이 명단을 보여준다. 강아지는 보드라운 촉감과 애착의 감각이라 안고 쓰다듬고 보살피는 콘텐츠가 어울리고, 개구리는 통통 튀는 반응과 타이밍의 감각이라 건드리면 반응하고 박자를 맞춰 노는 짧은 놀이가 어울리며, 고양이는 탐색과 발견의 감각이라 구석구석 살피고 숨은 걸 찾고 조금씩 친해지는 콘텐츠가 어울린다. 같은 꾸미기 게임 안에서도 세 캐릭터는 세 종류의 팬에게 세 종류의 손짓을 보낸다.

이 캐릭터를 좋아할 사람은 어디서 왔나

여기서 8장과 9장이 합류한다. 각 캐릭터의 감각을 적었으면 그 옆에 한 칸을 더 붙여, 이 캐릭터를 좋아할 사람은 어디서 살다 온 사람인지를 적는다.

보호욕을 건드리는 보드라운 캐릭터를 좋아할 사람은, 아마 인형에 애착이 깊거나 좋아하는 대상을 매일 챙기던 사람이다. 아이돌 팬이 들고 오는 애착과 일상 동행의 마음이 이 캐릭터에서 만족된다. 탐색과 발견을 건드리는 도도한 캐릭터를 좋아할 사람은, 이야기의 다음을 궁금해하며 한 회씩 넘겨 읽던 웹툰 독자와 가깝다. 조금씩 곁을 트는 캐릭터는 다음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과 결이 같다. 빠르고 짜릿한 반응을 좋아할 사람은 숏폼을 끝없이 넘기던, 즉시성에 길든 사람일 수 있다.

이걸 적어 두면 캐릭터가 그냥 그림이 아니라 입구가 되어, 어느 출신의 사람을 첫 화면에서 잡으려면 어느 캐릭터를 앞세워야 하는지가 보인다. 웹툰 독자를 데려오기로 했다면 첫 화면 가장 앞에 도도하고 탐색을 부르는 캐릭터를 세우는데, 그 캐릭터가 그 사람에게 '여기 당신이 좋아할 만한 게 있다'는 신호를 먼저 보내기 때문이다. 캐릭터는 세계의 통역자이자 특정 출신을 향한 손짓이라, 5장에서 본 선행 유사경험이 여기서 캐릭터별로 갈라진다. 이 캐릭터를 좋아할 사람은 어디서 어떤 경험을 하고 왔는가.

뽑기와 등급이라는, 캐릭터를 줄 세우는 관습

캐릭터를 다루는 장이니 게임의 관습 하나를 검문소에 세운다. 캐릭터를 뽑기로 얻게 하고 등급으로 줄 세우는 습관이다.

많은 수집형 게임에서 캐릭터는 뽑기로 주어지고 별 다섯짜리 희귀 캐릭터부터 별 하나짜리 흔한 캐릭터까지 등급이 매겨진다. 이 관습은 어디서 왔나. 희소성으로 가치를 만들고 등급으로 수집의 동기를 만드는 오랜 수집 게임의 설계에서 왔다. 많은 게이머에게 이 틀은 익숙하고 심지어 즐거운데, 낮은 확률을 뚫고 희귀 캐릭터를 얻는 짜릿함과 도감을 등급순으로 채우는 성취감이 따르기 때문이다. 게임 안에서 이 틀은 잘 작동한다.

일반인은 이 약속을 공유하지 않는다. 아이돌 팬에게 자기 최애가 별 하나짜리 흔한 캐릭터라고 등급이 매겨지면, 그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시스템이 값을 매긴 것이기 때문에 그는 모욕을 느낀다. 첫 화면을 열었더니 좋아할 얼굴을 고르기도 전에 별 등급표와 뽑기 확률표부터 깔려 있다면, 그 사람은 누구를 마음에 둘지 정하기 전에 누가 비싼지부터 읽는다. 보드라운 캐릭터에 애착을 쏟으려던 사람이 첫 화면에서 마주하는 게 뽑기 확률표라면, 그는 애착이 시작되기도 전에 거래부터 마주한다. 게이머는 등급을 '모을 동기'로 읽지만 일반인은 '내가 좋아하는 걸 함부로 줄 세우는 무례함'으로 읽으니, 같은 등급 표시가 한쪽에는 재미고 한쪽에는 거부감이다.

이 관습이 일반인에게 물리는 요금은 애착의 단절과 과금 압박이다. 첫 만남에서 좋아할 캐릭터를 고르는 일이 곧 확률과 돈의 문제가 되어 버리면, 캐릭터를 통역자로 만나기도 전에 상품으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본질만 남기고 바꾼다. 첫 경험에서는 캐릭터를 뽑게 하지 말고 만나게 한다. 사람이 끌리는 캐릭터를 직접 고르게 하고 그 캐릭터와 먼저 관계를 맺게 하면서, 등급이라는 줄 세우기 대신 저마다 다른 감각으로 다른 사람에게 손짓하는 옆으로 나란한 명단으로 보여준다. 토끼가 고양이보다 높은 게 아니라 둘이 다른 사람을 향해 있을 뿐이고, 희소성과 수집의 동기가 필요하다면 그건 사람이 이미 캐릭터에 마음을 준 한참 뒤의 일이다. 첫 화면은 애착이 시작되는 곳이지, 값이 매겨지는 곳이 아니다.

요즘은 뽑기에 기대던 장르 안에서도 이 방향으로 돌아서는 게임이 보인다. 「듀엣 나이트 어비스」는 캐릭터와 능력을 뽑기가 아니라 플레이로 얻게 하고, 확률 뽑기는 외형 꾸미기 쪽으로만 남겼다고 알려졌다. 좋아할 대상을 운에 맡기지 않고 손에 쥐여 주는 쪽으로 무게를 옮긴 것이다. 뽑기를 유지하는 게임들도 처음 만나는 자리만은 다르게 다루기 시작했다. 정해진 횟수를 채우면 원하는 상위 캐릭터를 직접 고르는 선택권을 주는 식인데, 운으로 굴리되 좋아하는 대상만은 확실히 손에 들어오게 하는 절충이다. 두 방식의 공통점은 하나다. 사람이 마음을 줄 대상 앞에서는 확률의 벽을 낮춘다. 이 방향을 첫 화면에서 빌린다. 좋아할 캐릭터를 고르는 그 순간만큼은, 확률이 아니라 선택으로 만나게 한다.

이 교차점에서 업계가 가장 흔히 쓰는 답이 하나 더 있다. 튜토리얼 연출 뽑기, 곧 첫 뽑기에서 정해진 캐릭터나 높은 확률의 상위 캐릭터가 나오도록 미리 짜 둔 첫 가챠다. 수익 모델 때문에 첫 세션에 뽑기를 넣어야만 하는 독자라면 이 관행을 이 장의 언어로 해부해 둘 필요가 있다. 잘 쓰면 만남에 뽑기의 옷을 입힌 차선이 된다. 어차피 정해진 만남이라면 연출의 두근거림만 빌려 오고, 나온 캐릭터와 곧장 관계를 맺게 이으면 되는 것이다. 못 쓰면 운인 척하는 선택이 되고 마는데, 고정인 걸 숨긴 채 확률극을 연기하면 선택의 애착도 운의 짜릿함도 주지 못하고, 나중에 모두가 같은 캐릭터를 받았다는 걸 알게 된 사람에게는 첫 만남의 특별함마저 연출이었다는 뒷맛만 남는다. 그러니 첫 뽑기를 꼭 넣어야 한다면 둘 중 하나를 정직하게 골라야 한다. 만남을 연출한 것이면 만남답게 그 캐릭터와의 관계로 곧장 잇고, 운의 짜릿함을 팔 것이면 그 뽑기를 첫 화면이 아니라 마음이 이미 붙은 뒤로 미룬다.

뽑기와 등급 옆에 검문할 관습이 하나 더 있다. 캐릭터를 성능으로만 보는 습관이다. 게임 기획에서 캐릭터는 흔히 효율 유닛으로 다뤄진다. 공격력이 얼마인지, 회복량이 얼마인지, 어느 조합에 끼우면 효율이 몇 퍼센트 오르는지 따지는 부품으로 본다. 이 관습은 잘 짜인 전투 설계에서 왔고, 숙련된 게이머는 캐릭터를 성능으로 읽는 데 익숙하다. 좋은 유닛과 나쁜 유닛을 가리는 일 자체가 그에게는 놀이다. 처음 온 사람에게는 그런 약속이 없다. 그에게 캐릭터는 효율 유닛이 아니라 관계의 대상이다. 보드라운 캐릭터를 안고 싶어서, 도도한 캐릭터와 친해지고 싶어서 멈춰 선 사람에게 "이 캐릭터는 효율이 낮다"고 알려 주는 건, 그가 막 마음을 주려던 상대를 깎아내리는 말로 들린다. 게이머는 성능표를 '고를 근거'로 읽지만, 일반인은 '내가 좋아하려던 걸 평가절하하는 참견'으로 읽는다. 이 관습이 일반인에게 물리는 요금은 관계의 단절이다. 관계가 시작되기도 전에 성능이 먼저 끼어들면, 첫 만남은 만남이 아니라 비교가 된다. 본질만 남기고 바꾼다. 첫 화면에서 캐릭터는 성능으로 소개하지 않고 성격과 감각으로 소개한다. 강한 캐릭터가 아니라 안고 싶은 캐릭터로, 효율 좋은 캐릭터가 아니라 자꾸 말 걸고 싶은 캐릭터로 소개한다. 성능은 사람이 그 캐릭터와 이미 한편이 된 뒤에, 함께 무언가를 해 나갈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 내 화면에 대입하는 세 가지

  1. 첫 화면이 좋아할 대상을 먼저 고르게 하나, 아니면 등급부터 보여주나.
  2. 우리 캐릭터가 세계를 사람의 감각으로 옮기는 통역자 노릇을 하나, 그냥 그림으로 걸려 있나.
  3. 보고 만지고 싶은 감각이 첫 화면에 깔려 있나, 별과 확률 숫자가 먼저 깔려 있나. 등급보다 얼굴이, 숫자보다 감각이 먼저 보이면, 애착이 거래보다 앞선다.

그래서, 명단부터 감각까지 한 줄로 잇는다

캐릭터를 통역자로 보고 나면 첫 경험에서 짤 명단의 모양이 바뀌어, 캐릭터마다 네 가지를 잇게 된다. 이름과 역할, 어떤 감각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지, 그 감각에 어울리는 콘텐츠, 그리고 이 캐릭터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다.

이 네 가지가 한 줄로 이어지면 첫 화면에 누구를 앞세울지가 정해져서, 우리가 1차로 데려올 이민 후보가 좋아할 감각의 캐릭터를 앞에 세우고 그 캐릭터에 어울리는 콘텐츠를 첫 동작으로 준다. 그러면 명단이 흩어진 그림 목록이 아니라 출신과 감각과 콘텐츠가 꿰인 하나의 지도가 되고, 놀라운 새 경험과 편안한 익숙한 경험의 조화도 여기서 시작된다. 캐릭터의 감각은 그 사람이 살던 곳에서 익숙하던 것이되 그걸 만나는 방식은 새로워야 하는데, 그 균형의 설계는 14장에서 다시 다룬다.

그래서 이 장을 덮기 전에 자기 게임에 던질 질문은 하나다. 우리 첫 화면 맨 앞에 선 캐릭터는, 우리가 1차로 데려오기로 한 그 사람에게 손짓하고 있는가, 아니면 엉뚱한 사람을 부르고 있는가. 나중에 어느 캐릭터에서 사람이 가장 오래 머무는지를 보면 이 질문의 답이 숫자로 돌아오겠지만, 답이 나오기 전에도 명단을 보며 한 번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의도한 후보와 캐릭터가 보내는 손짓이 어긋나 있다면, 첫 화면은 우리가 통역하려던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이 검산은 거꾸로도 돌릴 수 있다. 이미 첫 동작이 정해져 있는 라이브 게임이라면, 그 콘텐츠가 부르는 감각을 거꾸로 짚은 다음 첫 화면 맨 앞 캐릭터의 감각과 대조해 보면 된다. 첫 동작은 장난·반응의 미니게임인데 간판 캐릭터는 보호·돌봄의 보드라움이라면, 화면이 한 손으로는 부르고 다른 손으로는 밀어내는 중이다. 보드라운 캐릭터를 다짜고짜 전투에 내보내는 위화감을 앞에서 봤는데, 같은 어긋남이 우리 첫 화면에 숨어 있는지는 이 대조 한 번이면 드러난다.

참고 콘텐츠

이 장의 개념이 드러나는 다른 매체의 사례.

비디오게임

  • 듀엣 나이트 어비스 : 출시판에서 캐릭터와 무기 뽑기를 통째로 빼고 모든 캐릭터를 플레이로 얻게 했으며, 과금은 능력치 없는 외형 꾸미기로만 남겼다고 알려졌다. 좋아할 대상을 운에 맡기지 않고 손에 쥐여 준다.
  • 뽑기 게임의 초보자 선택권 : 원하는 별 다섯 캐릭터를 직접 고르는 천장(원신 연대기 기원), 원하는 상시 5성을 골라 일정 횟수 안에 확정으로 얻는 초보자 선택 배너(명조)처럼, 좋아할 대상만은 확률 밖에서 손에 쥐여 주는 절충이 늘었다.
  • 포켓몬 스타팅 3종 : 이상해씨·파이리·꼬부기가 풀·불·물로 옆에 나란히 놓이고, 등급이 아니라 무엇에 끌리는지의 선택으로 만난다. 무엇을 고르느냐가 곧 플레이어 성향으로 회자될 만큼 또렷한 갈림이다.
  • 원신의 첫 동료 엠버 : 게임을 시작하면 무료로 주어지는 밝고 다정한 궁수가 첫 동료로 붙어, 능력치보다 먼저 세계의 환대하는 분위기를 사람에게 옮긴다. 첫 캐릭터가 세계의 통역자 노릇을 한다.
  • 다마고치 : 능력치로 줄 세우지 않고 먹이고 놀아 주고 치우는 보살핌만으로 애착이 생겨, 사람이 화면 속 존재에 정을 붙인다. 보호·돌봄의 감각이 콘텐츠를 부르는 본보기다.

나머지 참고 콘텐츠는 이 글 끝의 '10장 부록'에 모아 두었다(단행본에서는 부록 D로 묶인다).


설계 노트 ▶ 직접 해보기

우리 게임의 첫 화면에 세울 캐릭터를 셋에서 다섯 정한다. 각 캐릭터에 대해 네 줄을 적는다.

이 캐릭터의 이름과 한 줄 역할. 이 캐릭터가 끌어당기는 감각 하나(보호·돌봄, 탐색·발견, 동경·과시, 장난·반응, 수집·소유, 속도·숙련, 교감·대화, 안전·편안 중에서). 그 감각에 어울리는 첫 콘텐츠 하나. 이 캐릭터를 좋아할 사람이 살다 온 곳 하나.

이 네 줄을 적었으면 한 줄을 더 적는데, 이 캐릭터를 성능이 아니라 감각으로 설명하는 한 문장이다. "공격력 높은 딜러"가 아니라 "안으면 폭신하고 자꾸 챙겨 주고 싶은 아이"처럼, 능력치 대신 사람이 느낄 감각으로 옮긴 이 한 문장이 첫 화면에서 그 캐릭터를 어떻게 내보일지를 정한다. 다 적었으면 1차로 데려올 이민 후보가 좋아할 캐릭터에 동그라미를 치는데, 그게 첫 화면 맨 앞에 설 통역자다.

동그라미가 안 쳐질 때가 진짜 신호다. 1차 후보가 좋아할 감각의 캐릭터가 명단에 없다면 길은 셋인데, 가장 싼 길은 기존 캐릭터 하나의 감각을 재정의해 그 후보 쪽으로 돌려세우는 것이다. 외형이 같아도 첫 동작과 말투가 바뀌면 감각이 바뀐다. 그걸로 안 되면 그 감각의 캐릭터를 새로 만들고, 새로 만들 여력마저 없다면 8장으로 돌아가 1차 후보 선정 자체를 다시 본다. 어느 쪽을 고칠지 정하지 않은 채 첫 화면부터 그리는 게 최악이다.

이 명단이 부록 B의 캐릭터 명단표와 감각 매트릭스로 자라난다. 첫 화면에서는 그 캐릭터를 등급으로 줄 세우지 말고, 좋아할 사람이 먼저 만나게 한다.

한 줄 요약: 캐릭터는 화면을 채우는 그림이기 전에 세계와 사람 사이의 통역자다. 캐릭터마다 끌어당기는 감각이 다르고, 그 감각에 어울리는 콘텐츠가 다르고, 그 캐릭터를 좋아할 사람의 출신이 다르다. 이 넷을 한 줄로 이으면 첫 화면에 누구를 앞세울지가 정해진다. 캐릭터를 뽑기와 등급으로 줄 세우면, 애착이 시작되기 전에 거래가 먼저 온다. 다음 장: 누구를, 어느 세계로, 어떤 캐릭터로 맞을지 다 정했다. 이제 그 사람이 첫 화면 앞에 선 '상태'를 본다. 그는 집중하고 있지 않고, 시끄러운 곳에 있고, 다른 콘텐츠를 포기하며 여기 왔다. 경험에는 요금이 있다. 그 요금 이야기로 넘어간다.


10장 부록: 참고 콘텐츠 모음

이 모음은 캐릭터가 화면을 채우는 그림이기 전에 세계를 사람의 감각으로 옮기는 통역자라는 이 글의 논점, 그리고 캐릭터마다 끌어당기는 감각이 여덟 무리(보호·돌봄, 탐색·발견, 동경·과시, 장난·반응, 수집·소유, 속도·숙련, 교감·대화, 안전·편안)로 갈려 서로 다른 사람을 부른다는 논점이 게임 바깥에서도 똑같이 작동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모은 사례집이다. 본문 절에 실은 핵심 사례에 더해 나머지를 비디오게임부터 오프라인까지 매체별로 묶었고, 항목마다 끝에 '살펴볼 점'을 달아 설계자가 그 사례에서 무엇을 관찰하면 좋은지 적었다. 읽는 요령은 하나다. 각 사례에서 사람들이 능력이나 등급이 아니라 어떤 감각 때문에 그 캐릭터 앞에 멈추는지를 본다.

비디오게임

  • 오버워치 : 2016년에 나온 팀 슈터로, 같은 명단을 봐도 누구는 방패로 앞을 막아 주는 묵직한 탱커에, 누구는 한 방을 노리며 빠르게 파고드는 딜러에, 누구는 아군을 살리는 지원가에 끌린다. 역할마다 플레이 감각이 달라서, 동경·과시의 묵직함과 속도·숙련의 짜릿함과 보호·돌봄의 보람이 같은 화면에서 서로 다른 사람을 부른다. 살펴볼 점: 우리 명단의 캐릭터들이 감각을 서로 나눠 맡고 있는지, 아니면 전부 한 감각을 다른 옷으로 입고 있는지 본다.
  • 발로란트 요원 선택 : 라이엇의 전술 슈터(2020)에서 요원은 타격대(듀얼리스트)·감시자(센티넬) 같은 역할군으로 나뉘는데, 정면 교전을 즐기는 사람은 타격대에, 함정을 깔고 뒤를 지키며 상대를 약 올리길 좋아하는 사람은 감시자에 끌린다. 등급이 아니라 플레이 결로 제 캐릭터를 고른다. 살펴볼 점: 역할군의 이름이 성능 수치가 아니라 행동의 결을 가리킨다는 것, 처음 고르는 화면이 '무엇이 센가'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놀고 싶은가'를 묻게 되어 있는지 본다.
  • 동물의 숲 주민들 : 전투 능력치가 아예 없는 주민 수백 명이 게으름·발랄·새침 같은 여덟 성격 유형과 말투만으로 나뉘어, 사람마다 챙기고 싶은 주민이 갈린다. 강한 주민이 아니라 자꾸 말 거는 주민이 기억에 남는다. 살펴볼 점: 능력 칸이 없는 명단에서도 교감·대화의 감각만으로 최애가 생긴다는 것, 성격 유형의 가짓수가 곧 부를 수 있는 사람의 가짓수라는 것을 본다.
  • 스타듀밸리 주민들 : 2016년에 나온 농장 게임에서 주민과의 관계는 전투·농사 능력과 무관하게 선물과 마음 이벤트로만 깊어져, 사람마다 친해지고 싶은 주민과 결혼 상대가 갈린다. 효율 유닛이 아니라 관계의 대상이다. 살펴볼 점: 관계 콘텐츠가 효율과 분리되어 있을 때 사람이 캐릭터를 부품이 아니라 상대로 대한다는 것을 본다.
  • 팀 포트리스 2의 클래스 실루엣 : 2007년작의 아홉 클래스는 검은 실루엣만으로 구분되도록 체형과 자세가 다듬어져, 헤비는 안 넘어질 듯한 큰 덩치로, 스카웃은 빠르지만 약해 보이는 가는 다리로 성격과 플레이 감각을 예고한다. 개발사가 실루엣 식별을 미술 방향의 원칙으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다. 살펴볼 점: 설명 글 없이 외형만으로 그 캐릭터가 어느 감각(속도·숙련인지 안전·편안인지)을 부르는지 읽히는가를 본다.
  • 스플래툰 오프 더 훅(펄과 마리나) : 스플래툰 2(2017)의 진행자 듀오로, 시끄럽고 직설적인 펄과 차분하고 기술적인 마리나가 정반대 결로 짝을 이뤄 팬마다 끌리는 쪽이 갈린다. 한 화면, 다른 곳에서 눈이 멈춘다. 살펴볼 점: 둘을 우열 없이 나란히 세웠기 때문에 갈림이 다툼이 아니라 취향이 된다는 것을 본다.

필름 애니메이션

  • 인사이드 아웃의 감정 캐릭터들 : 2015년작에서 기쁨이는 별 모양에 노랑, 슬픔이는 눈물방울에 파랑, 소심이(두려움)는 곤두선 신경 한 가닥처럼 가늘게, 제작진이 색과 형태로 감정 하나씩을 즉시 읽히게 빚었다고 알려져 있다. 외형이 곧 그 캐릭터가 건드리는 마음이다. 살펴볼 점: 우리 캐릭터의 형태와 색이 의도한 감각을 한눈에 전하는지, 형태를 가리고 봐도 성격이 남는지 본다.
  • 업(Up)의 칼과 러셀 : 2009년작은 고집 센 노인 칼을 사각형으로, 천진한 소년 러셀을 동그라미로 빚어, 능력 설명 없이 두 형태의 대비만으로 두 사람을 곧장 읽게 한다. 살펴볼 점: 형태 언어가 성격을 통역하는 가장 싼 수단이라는 것을 본다.
  • 미니언즈 / 토토로 : 능력 설명이 한 줄도 없는데 보드라움과 장난기만으로 보호·돌봄과 장난·반응의 감각을 곧장 건드린다. 살펴볼 점: 캐릭터 소개에서 스펙을 지웠을 때 무엇이 남아 사람을 끄는지 본다.

문학

  • 곰돌이 푸의 친구들 : 느긋한 푸, 겁 많은 피글렛, 통통 튀는 티거, 우울한 이요르처럼 같은 숲의 캐릭터들이 저마다 다른 기질로 다른 독자에게 손짓한다. 성능이 아니라 성격으로 기억된다. 살펴볼 점: 기질의 스펙트럼이 곧 독자의 스펙트럼이라는 것, 우리 명단의 기질 폭이 어느 만큼인지 본다.

실사 TV / 드라마

  • 앙상블 캐스트의 '최애' 갈림 : 같은 드라마를 봐도 시청자마다 마음이 머무는 인물이 다르고, 제작진이 밀던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 신드롬을 일으키는 일도 흔하다. 살펴볼 점: 인기가 분량이나 설정이 아니라 인물의 결을 따라간다는 것, 사람들이 어느 인물 앞에 멈추는지가 곧 감각 명단의 실측치라는 것을 본다.
  • 세서미 스트리트 : 1969년에 시작된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한 무대의 인형들이 감각을 나눠 맡는다. 엘모는 어린 시청자와 눈을 맞추는 교감·대화를, 쿠키 몬스터는 건드리면 터지는 장난·반응을, 빅 버드는 크고 어수룩해서 챙겨 주고 싶은 보호·돌봄을 맡아, 연령과 기질이 다른 아이들이 각자 제 통역자를 만난다. 살펴볼 점: 한 세계에 통역자를 여럿 두되 감각이 겹치지 않게 배치하는 법을 본다.
  • 펭수 : EBS '자이언트 펭TV'(2019)의 펭귄 연습생으로, 어린이 채널에서 출발했지만 막힘없이 할 말을 하는 성격 덕에 정작 어른 직장인들의 팬덤이 붙었다고 회자된다. 살펴볼 점: 캐릭터가 부르는 사람은 기획서의 대상 칸이 아니라 캐릭터의 감각이 정한다는 것, 의도한 출신과 실제로 모인 출신이 어긋났을 때 그 어긋남이 보내는 신호를 본다.

음악

  • 아이돌 그룹의 '최애' 갈림 : 같은 무대를 봐도 보컬에, 댄스에, 다정함에, 무대 장악력에 끌려 멤버가 갈리고, 그룹 전체의 인기와 멤버별 팬덤이 따로 굴러간다. 살펴볼 점: 순위표가 아니라 저마다 다른 매력이 저마다 다른 사람을 부른다는 것, 캐릭터 명단의 원형이 무대 위에 이미 있다는 것을 본다.

만화 / 코믹북

  • 소년 만화의 캐릭터 인기투표 : 주간 연재 만화의 독자 인기투표에서는 가장 센 캐릭터가 아니라 마음을 건드린 캐릭터가 1위에 오르고, 주인공이 조연에게 밀리는 일도 드물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살펴볼 점: 성능과 인기가 다른 축이라는 것을 숫자로 보여 주는 드문 장치라는 것, 우리 게임에서 이 두 축을 따로 잴 수 있는지 본다.

웹툰

  • 캐릭터성으로 끄는 웹툰 : 첫 화에서 능력치나 세계관 설명이 아니라 표정과 분위기, 말버릇으로 독자가 좋아할 인물을 먼저 만나게 한다. 살펴볼 점: 첫 화에 캐릭터의 어떤 감각이 먼저 등장하는지, 정보보다 끌림이 먼저 오게 짜였는지 본다.

테마파크 / 공간 체험

  • 디즈니 파크의 캐릭터 그리팅 : 공원 곳곳에서 좋아하는 캐릭터를 직접 골라 만나러 가고, 인기 캐릭터 앞에 줄이 서지만 그 줄은 등급표가 아니라 각자의 마음이 만든 줄이다. 살펴볼 점: 만남이 거래보다 먼저 설계되어 있다는 것, 캐릭터와의 첫 접점이 '뽑기'가 아니라 '찾아가기'라는 것을 본다.

캐릭터 IP / 굿즈

  • 산리오의 마이멜로디와 쿠로미 : 온순한 사랑스러움의 마이멜로디와 짓궂은 엣지의 쿠로미가 정반대 결로 서로 다른 팬을 부르고, 해마다 열리는 캐릭터 인기투표에서 둘 다 상위권을 다툰다고 알려져 있다. 살펴볼 점: 인기 순위가 갈려도 그게 우열이 아니라 결의 차이로 읽히게 만드는 IP 운영을 본다.
  • 카카오프렌즈의 라이언 : 2016년에 합류한 갈기 없는 수사자 캐릭터로, 능력 설정 없이 묵묵하고 듬직한 결 하나로 단숨에 간판이 됐다고 알려져 있다. 같은 명단에서 어피치가 장난·반응 쪽을 맡는 동안 라이언은 안전·편안을 맡는다. 살펴볼 점: 한 IP 안에서 캐릭터마다 감각을 나눠 맡겨 서로 다른 사람을 부르는 분담, 그리고 그 감각이 이모티콘과 굿즈라는 콘텐츠를 불러오는 흐름을 본다.

오프라인·일상

  • 에버랜드의 판다 푸바오 : 2020년에 국내에서 태어난 판다로, 묘기나 희소 등급이 아니라 사육사와의 교감 장면이 퍼지면서 신드롬급 애착을 모았다고 회자된다. 사람들은 푸바오의 능력이 아니라 돌봄받고 돌보는 장면 앞에 멈췄다. 살펴볼 점: 보호·돌봄의 감각이 돌봄의 장면이라는 콘텐츠를 타고 애착으로 자라는 경로, 캐릭터 게임의 첫 화면이 보여줄 것이 스펙표인지 돌봄의 순간인지 본다.

일반 앱

  •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의 클리피 : 오피스 97부터 들어간 종이클립 도우미로, 교감·대화의 감각을 노렸지만 묻지 않은 참견으로 작업에 끼어들어 미움을 샀고, 2000년대 초 판부터 기본에서 꺼진 끝에 사라졌다. 살펴볼 점: 캐릭터를 세운다고 통역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 캐릭터의 감각과 실제 행동이 어긋나면 통역자가 소음이 된다는 반례를 본다.